파괴의 대물림을 끊고 은혜의 핏줄을 잇다: 그리스도 안에서 세워가는 ‘새로운 유산’

케이틀린 호크. ©Christian Post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케이틀린 호크의 기고글인 '3대에 걸친 두려움과 중독의 악순환, 하나의 선택으로 끊다'(3 generations, one choice: Breaking a cycle of fear and addiction)를 8월 16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케이틀린 호크는 미국 테네시주 녹스빌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이자 강연자, 피트니스 및 축구 코치, 부동산 중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정체성이 새롭게 되는 과정을 통해 삶의 근본적인 변화를 경험한 뒤, 다른 이들이 정신과 육체, 영혼과 영적 삶 전반에서 자유를 누리도록 돕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당신은 다음 세대를 위해 어떤 유산을 남기고 있는가.

우리 대부분은 이 질문에 답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느끼는 순간이 되어서야 비로소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삶을 스쳐 가는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남긴다. 그것은 선한 영향일 수도 있고, 반대로 누군가를 오래 붙잡아 두는 상처와 파괴적인 패턴일 수도 있다.

우리는 거의 모든 것보다 ‘나 자신’을 우선시하는 문화 속에 살고 있다. 하지만 ‘유산(legacy)’은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요구한다. 그것은 우리 자신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세워가도록 부른다. 어쩌면 살아 있는 동안 그 열매를 다 보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묵묵히 다음 세대를 위해 씨앗을 심는 삶이다.

필자는 이 사실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알고 있다. 필자의 삶 역시 한때 파괴적인 유산을 남기는 방향으로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필자는 마약과 알코올, 유해한 관계의 굴레에 갇혀 있었고, 그런 삶을 바꾸려는 의지도 거의 없었다. 필자의 선택은 사랑보다 순간적인 욕망과 충동에 이끌렸고, 삶의 방향은 점점 죄와 깨어짐을 향해 기울어갔다. 필자는 어린 시절 기독교인 부모에게 입양돼 넘치는 사랑을 받으며 자랐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언젠가 친어머니와 비슷한 삶을 반복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설명하기 어려운 두려움이 늘 자리하고 있었다.

친어머니는 필자를 임신했을 당시 19살의 미혼모였고, 생부는 낙태를 권했다. 주변의 여러 압박과 만류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임신을 유지하고 필자를 입양 보내기로 선택했다는 사실에 필자는 지금도 하나님께 감사한다. 어머니가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됐음에도 필자를 위해 ‘생명’을 선택했다는 사실 자체가 필자에게는 하나의 아름다운 유산으로 남아 있다.

친어머니가 구체적으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모두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필자를 품고 있던 그 몇 달 동안 그녀의 삶이 깊은 고통과 불안 속에 있었으리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다. 그렇기에 자신의 시련 한가운데서도 끝내 생명을 선택했던 그 용기에 필자는 더욱 깊은 존경심을 갖게 된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필자는 친어머니와 거의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됐다. 19살,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쌍둥이를 임신한 것이다. 쌍둥이의 아버지는 필자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어주지 못했고 결국 관계를 떠났다. 그것이 상처가 아니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필자는 자신이 깊은 상처를 안고 있었던 것처럼 그 사람 역시 자신만의 상처와 싸우고 있었음을 이해하게 됐다. 당시 주변의 적지 않은 사람들은 가장 쉬운 탈출구라며 낙태를 권하기도 했다.

하지만 필자가 생명을 선택하고 쌍둥이를 낳아 사랑이 넘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에 입양 보내기로 결정했을 때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 필자는 한 가지 강한 깨달음을 얻었다. 친어머니의 삶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한 사람을 계속 선택하고, 익숙하다는 이유로 파괴적인 습관을 반복한다면 필자의 딸들 역시 같은 패턴을 물려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이 필자가 ‘유산’이라는 말의 의미를 진지하게 이해하기 시작한 출발점이었다.

마음을 새롭게 하면서 삶의 방향이 달라지다

삶을 바꾸기 위해서는 단순히 “앞으로는 다른 선택을 하겠다”고 결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필자는 성경이 말하는 사랑이 무엇인지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오랫동안 필자가 사랑이라고 불러왔던 것은 건강한 사랑이 아니라 순간적인 짜릿함과 감정의 고조를 좇는 삶 속에서 심하게 왜곡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매일 성경 말씀을 묵상하며 마음이 새롭게 되도록 하는 일을 삶의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 가운데 하나로 삼았다. 물론 그것은 단번에 모든 것을 해결하는 마법 같은 과정이 아니었다. 너무 오랫동안 ‘정상’이라고 믿어왔던 거짓된 생각과 습관을 하나씩 무너뜨리는 길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

이 시기에 건강한 사랑이 실제로 어떤 모습인지 배워가던 필자는 남편 브랜든(Brandon)을 만났다. 그는 한결같고 성실하며 겸손한 사람이었다. 필자가 오래전부터 바라야 했던 모든 것을 갖춘 진실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의 그 변함없음이 처음에는 필자를 두렵게 했다.

필자는 감정의 극단적인 롤러코스터와 끊임없는 불안정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그래서 브랜든이 보여주는 평범함과 안정감은 오히려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와 함께 있을 때 경험하는 평안이 ‘지루함’이 아니라 ‘지혜’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의도적인 노력과 치열한 내면의 싸움이 필요했다.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된 새로운 혈통

이 경험을 통해 필자는 중요한 진리 하나를 배웠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면, 누구도 가족의 과거 선택에 영원히 묶여 살아갈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길을 선택할 수 있다. 단순히 표면적인 습관 몇 가지를 고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대를 거쳐 깊이 뿌리내린 파괴적인 패턴마저 끊어낼 수 있다. 물론 그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통해 할 수 있는 가장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일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이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이런 묵직한 의미가 담겨 있다. 중독과 수치심,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자신에게 해로운 사람을 반복해서 선택하는 습관을 단지 익숙하다는 이유로 운명처럼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그 모든 고통을 다음 세대까지 물려주는 대신, 자신의 세대에서 끝낼 수 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자신이 죽은 뒤에도 계속 살아 숨 쉬는 거룩한 유산을 세울 수 있다.

모든 씨앗에는 추수할 때가 있다

필자는 지금 내리는 선택들이 장차 맺을 모든 열매를 살아 있는 동안 직접 보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씨앗의 본질이다. 두려움으로 심든 믿음으로 심든, 모든 씨앗에는 시간이 지난 뒤 나타날 결과가 들어 있다.

다른 사람들이 가을의 열매만 바라보고 있을 때 우리에게 실제로 주어진 선택은 단순하다. ‘지금 무엇을 심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친어머니의 삶에서 이어진 불안정함과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는 두려움의 굴레를 더 이상 반복하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필자의 자녀들이 그 위에 삶을 세워갈 수 있도록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혈통(bloodline)’을 선택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도 이와 닮아 있다. 하나님은 언제나 모든 것을 단숨에 완성하시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천천히, 씨앗처럼 일하신다. 다른 무언가를 그 위에 세우기 전에 성품이 먼저 깊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시간을 허락하신다.

즉각적인 결과에 익숙한 현대 문화에서는 이러한 방식이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오래 남는 유산은 대부분 이런 인내의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다.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힘

변화는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상황이 저절로 나아지기를 바란다고 해서 찾아오는 것도 아니다. 유산은 막연한 희망만으로 세워지지 않는다. 어느 순간에는 그 희망에 분명한 의지와 결단을 더해야 한다. 수 세대 동안 통제 없이 이어져 온 오래된 패턴과 맞서 싸우겠다는 결심이 필요하다.

진정한 변화는 동기 부여가 저절로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내 안의 모든 것이 포기하라고 외치는 순간에도 앞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겠다는 선택을 수없이 반복할 때 만들어진다.

어떤 날에는 사정없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뒤에도 다시 일어서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에서 자신의 신앙을 경주를 준비하는 운동선수의 훈련에 비유한다. 단지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향해 실제적인 절제와 노력을 기울이는 삶을 말한다.

필자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마음속에 떠올리는 그림도 바로 이것이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흘리는 땀방울이야말로 진짜다. 다른 사람은 알아채지 못하는 작고 조용한 선택들조차 결국 우리가 어떤 사람으로 형성되고 있는지를 결정한다.

당신은 어떤 유산을 남기고 있는가

진짜 질문은 당신이 유산을 ‘남길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다. 우리는 이미 유산을 남기고 있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내리는 수많은 선택을 통해 지금 이 순간에도 다음 세대에 무엇인가를 전하고 있다.

해로운 옛 습관 대신 말씀을 선택하는 조용한 순간, 다음 세대에 넘겨주지 않고 자신의 세대에서 끝내기로 한 파괴적인 패턴,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삶의 방향을 조금씩 바꾸고 있는 묵묵한 영적 훈련이 모두 유산을 만들어간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비전을 분명히 붙잡고 계획을 세우며 끝까지 달려가라. 오늘 우리가 심는 씨앗은 언젠가 다른 누군가가 먹고 성장할 열매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지금 내리는 선택은 현재의 삶에만 머물지 않고 아직 오지 않은 세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끝까지 붙들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우리 뒤에 올 사람들을 위해 과연 어떤 유산을 세워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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