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J.존의 기고글인 ‘정치가 우리를 실망시킬 때, 우리는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Where do we turn when politics dissapoints?)을 7월 30일(현지시각) 게재했다.
J. 존은 목사, 연사, 방송인,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개인 팟캐스트인 ‘J.John Podcast’를 운영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선거가 치러진다.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한다. 약속이 쏟아지고 기대감이 높아진다. 지지자들은 환호하고, 비판자들은 불만을 터뜨린다. 평론가들은 저마다 전망과 해석을 내놓는다.
그리고 아주 잠깐, 마침내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내 현실이 찾아온다. 이것은 냉소주의가 아니다. 역사가 반복해서 보여준 익숙한 순리일 뿐이다.
모든 세대는 올바른 지도자와 정당, 정책만 있다면 사회의 가장 깊은 문제들을 마침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유혹에 빠진다. 우리는 정치에 안보와 번영, 정의와 안정을 기대한다.
어느 정도는 이해할 만한 일이다. 정치는 중요하다. 의회와 정부의 결정은 학교와 병원, 지역사회와 경제, 그리고 일상생활의 수많은 영역에 실제적인 영향을 미친다.
좋은 정부는 분명 축복이다. 반대로 나쁜 정부는 우리로 하여금 더욱 간절히 기도하게 한다. 그러나 정치가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인간의 가장 깊은 소망까지 짊어지도록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정치적 실망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문제는 정치 자체라기보다, 정치가 해낼 수 없는 일까지 해주기를 기대하는 인간의 마음에 있다.
정부는 법을 만들 수는 있지만 사람을 선하게 만들 수는 없다. 제도를 개선할 수는 있지만 이기심을 뿌리 뽑을 수는 없다. 도로를 건설할 수는 있어도 인격을 세울 수는 없다. 경제적 번영을 확대할 수는 있지만 참된 평화를 보장할 수는 없다.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한 번도 단순히 정치적인 문제였던 적이 없다. 그것은 언제나 인간 자신에 관한 문제였다.
작가 G.K. 체스터턴(G.K. Chesterton)은 “세상의 문제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의 대답은 놀라울 만큼 간결했다: “선생님, 바로 저 자신입니다.” 이 한마디는 수많은 정치 논쟁의 핵심을 꿰뚫는다.
세상의 가장 깊은 문제는 단지 ‘저 밖’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 안’에도 있다. 바로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다. 성경은 이 점에서 놀라울 만큼 현실적이다. 성경은 모든 인간이 결함을 지닌 존재라고 가르친다. 따라서 인간이 세운 모든 제도 역시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기업과 학교, 교회와 정부 모두 마찬가지다. 인간이 모이는 곳에는 언제나 인간의 한계와 죄성이 뒤따른다. 인생에서 비교적 안전하게 세울 수 있는 전제 하나가 있다. 바로 인간이 개입된 일이라면 언젠가는 실망도 따라온다는 것이다. 이는 정치인 역시 예외가 아니다.
정치에 참여하되 정치인을 숭배하지 말라
그렇다고 기독교인이 사회와 정치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기독교인은 사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투표하고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정의를 추구하고 약자를 보호하며 공공의 삶에 선한 영향을 끼쳐야 한다. 성경은 권세를 가진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을 숭배하라고 명한 적은 없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기록했다: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시 146:3) 이는 사회로부터 도피하라는 명령이 아니다. 잘못된 대상에 궁극적인 신뢰를 두지 말라는 경고다.
정치는 중요하지만, 정치를 구원자로 삼는 순간 심각한 문제가 시작된다. 투표함은 중요하다. 정치적 실망이 그토록 뼈아프게 느껴지는 이유도 아마 거기에 있을 것이다.
우리는 종종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오직 하나님만이 감당하실 수 있는 소망의 무게를 정치인들에게 지운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그들이 완전한 안정감을 제공해 주기를 기대한다. 또한 인간 본성 깊숙이 뿌리내린 문제를 해결하고, 이 땅에 낙원과 같은 질서를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어떤 총리도, 대통령도, 의회나 정당도 그런 일을 해낸 적이 없다. 앞으로도 해낼 수 없을 것이다.
환상 없는 참된 소망
기독교 신앙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종류의 소망을 제시한다. 그것은 현실을 외면하는 낙관주의가 아니다. 세상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면서도 절망하지 않는, 환상 없는 참된 소망이다.
기독교 신앙은 궁극적인 확신을 다른 곳에 두면서도 세상에 진지하게 참여하도록 우리를 부른다. 우리의 소망은 여론조사에 닻을 내리지 않는다. 선거 결과로 보장되지도 않는다.
다우닝가와 웨스트민스터, 워싱턴과 브뤼셀, 모스크바와 뉴델리, 베이징을 비롯한 어떤 지상의 권좌를 누가 차지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소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닻을 내리고 있다.
총리는 바뀐다. 정부도 바뀌고 정책도 변한다. 여론도 끊임없이 요동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히 13:8). 이 진리는 기독교인에게 독특한 관점을 제공한다.
우리는 정치에 함몰되지 않으면서도 깊은 관심을 가질 수 있다. 강하게 반대하면서도 무례해지지 않을 수 있다. 정치에 맹목적인 믿음을 걸지 않으면서도 변화를 위해 성실하게 일할 수 있다. 불확실성을 마주하면서도 소망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어쩌면 이것이 불안이 커져가는 오늘의 세상이 가장 필요로 하는 태도일 것이다.
더 큰 분노가 아니라 더 깊은 반석
세상에 필요한 것은 더 큰 분노가 아니다. 더 심한 진영주의나 깊은 절망도 아니다. 분노는 때때로 관객을 찾아 헤매는 감정의 폭발에 불과하다. 유행처럼 번지는 냉소주의 역시 지금까지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깊은 반석과 더 굳건한 소망, 더 위대한 확신이다.
그렇다면 정치가 우리에게 실망을 안겨줄 때 우리는 어디를 바라봐야 하는가? 냉소주의가 아니다. 절망도 아니고 끝없는 좌절도 아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바라본다. 그분은 한 번 하신 약속을 결코 어기지 않으신다. 그분의 성품은 변하지 않고, 지혜는 완전하며, 사랑은 한결같다. 그분이 품으신 뜻은 그 무엇도 꺾을 수 없다.
모든 선거는 정치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그리고 모든 실망은 정치가 결코 궁극적인 해답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정치인은 때때로 우리를 고개 젓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신뢰해도 되는지 의심하게 만드신 적이 없다.
역사는 궁극적으로 정치인의 손에 달려 있지 않다. 역사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기쁜 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