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주드 시미온의 기고글인 '교회는 불완전한 제도와도 계속 소통하고 협력해야 한다'(The Church must continue to engage with imperfect institutions)를 7월 26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주드 시미온은 필로이 글로벌의 최고경영자(CEO)이자 난민 하이웨이 파트너십의 핵심 리더십팀에서 활동하고 있다. 필로이 글로벌은 구호와 이주, 재정착 지원을 통해 박해받는 소수 공동체가 겪는 인도주의적 공백에 대응하며, 강제 이주민을 향한 연대와 화합, 지원을 확산하는 데 힘쓰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오는 7월 28일 유엔 난민협약이 제정 75주년을 맞는 가운데, 기독교인들은 중요한 질문 앞에 서 있다.
제도와 기관이 무능해지고 무감각해지며 신앙 공동체의 관심사에서 멀어질 때, 우리는 그들과의 관계를 끊고 물러서야 하는가. 아니면 계속 참여하며 목소리를 내야 하는가.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이 국제기구에 깊은 좌절감을 느낀다. 조직이 갈수록 관료화되고 정치화되며 개혁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일 때, 철수는 합리적인 대응처럼 보일 수 있다. 유엔과 같은 기구들이 더 이상 설립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노골적으로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기독교인이 이러한 참여를 포기할 경우, 그 결과는 결코 가볍지 않다.
난민 보호에 새겨진 기독교적 유산
올해는 국제 난민 보호의 초석이 된 1951년 난민협약이 제정 75주년을 맞는 해다.
이 협약은 인종과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이라는 신분, 정치적 견해 등을 이유로 박해를 피해 떠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틀을 마련했다.
이러한 원칙은 성경적 가치와 깊이 맞닿아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나그네를 환대하고, 연약한 이들을 보호하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모든 사람의 존엄을 지키라고 거듭 명한다.
난민협약은 1948년 채택된 세계인권선언과 같은 흐름 속에서 발전했다. 세계인권선언은 엘리너 루스벨트(Eleanor Roosevelt), 찰스 말릭(Charles Malik), 르네 카생(René Cassin) 같은 지도자들의 영향을 받았다. 이들이 보여준 인간 존엄과 취약계층 보호에 대한 헌신은 유대-기독교적 신념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이들의 노력은 오늘날까지 전 세계 수백만 명을 보호하는 국제적 제도의 토대가 됐다.
1951년 난민협약은 유엔의 후원 아래 여러 국가의 정부 대표들이 협상해 채택한 문서다. 이 과정에서 기독교인과 기독교 단체들도 협약의 기본 원칙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교회들은 국제문제교회위원회(CCIA)와 국제선교협의회(IMC) 같은 기구를 통해 초안 작성 과정 전반에 걸쳐 도덕적 리더십과 실무적 전문성을 제공하며 난민 보호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목소리 없는 이들을 위해 말하다
성경은 신자에게 고통받는 사람을 단지 돌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의 고통을 심화시키는 제도와 구조에 맞서라고 요구한다.
잠언 31장 8~9절은 “너는 말 못하는 자와 모든 고독한 자의 송사를 위하여 입을 열지니라… 빈궁하고 궁핍한 자를 신원할지니라”고 명한다.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도 나치 독일이 득세하던 시기에 이와 같은 취지로 말했다.
“교회는 불의의 수레바퀴 아래 깔린 희생자들의 상처를 싸매는 데 그쳐서는 안 됩니다. 수레바퀴 자체에 쐐기를 박아 멈춰 세워야 합니다.”
난민과 실향민, 박해받는 소수자를 염려하는 기독교인에게 이는 인도주의적 지원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뜻이다. 적극적인 옹호와 대변이 필요하다.
법과 정책, 제도가 수백만 명의 취약한 사람들의 삶을 좌우하는 상황에서, 기독교인은 그러한 결정이 내려지는 공론장에 머물 책임이 있다.
폭력과 분쟁, 종교적 박해를 피해 달아난 수많은 사람이 오늘날 세계의 강제실향민 대열에 속해 있다. 동시에 많은 국가가 망명과 난민 보호에 대해 갈수록 폐쇄적이고 제한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교회가 공적인 대변자의 자리에서 물러날 때, 자신을 변호해 줄 누군가가 가장 절실한 사람들은 중요한 목소리를 잃게 된다.
실향민이 된 기독교인과 종교적 소수자, 개종자, 박해받는 공동체는 의사결정권자에게 접근할 기회가 매우 제한적이다. 그들을 대신해 목소리를 내줄 대변자도 많지 않다.
불완전한 세상에서의 신실한 참여
난민협약이 채택된 지 75년이 지났지만, 난민 보호를 담당하는 기관들은 결코 완전하지 않다.
그들은 정치적 압력과 상충하는 이해관계, 복잡한 현실적 난관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애초부터 완전한 제도와만 관계를 맺도록 부름받은 것이 아니다.
진정한 질문은 국제기구가 언제나 올바르게 행동하느냐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기독교인이 그 자리에 남아 정직하게 말하고, 용기 있게 대변하며, 연약한 사람들을 위해 정의를 추구할 의지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긍휼을 품은 이웃이자 신실한 옹호자가 되도록 부름받았다.
정책 입안자와 정부, 국제기구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참여할 때, 우리는 인간의 존엄과 종교의 자유, 정의와 보호라는 원칙이 세계 난민 대응의 중심에 자리 잡도록 도울 수 있다.
많은 사람이 공론장에서 등을 돌리고 물러서는 시대다.
바로 이때 기독교인에게는 삶의 터전을 잃고 박해받으며 잊힌 이들을 위해 갈라진 틈에 서서 방벽을 막아설 거룩한 기회가 주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