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자리에서 만난 하나님의 은혜
죽음의 문턱에서 복음의 사명자로 세워지다
67년, 세계를 향한 변함없는 복음의 발걸음
민족복음화운동본부(총재 이태희 목사)가 주최한 2027년 8천만민족복음화대성회를 위한 오산리기도성회가 있었다. 그곳에서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위치한 라운드락장로교회의 허봉랑 선교사를 만났다. 온라인을 통해 허 선교사의 메시지를 종종 듣곤 하였다.
허봉랑 선교사는 89세의 고령에도 미국과 대한민국을 오가며 누구보다도 왕성하게 복음 전파 사역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67년 동안 전 세계를 다니며 1만 5천 회가 넘는 부흥회를 인도하는 등 쉼 없이 부흥회를 인도해 왔다. 현재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위치한 라운드락장로교회의 담임 김광석 목사는 허 선교사의 아들로 세계예수교장로회 총회장을 역임하였다.
허봉랑 선교사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불교적 전통이 깊은 가정환경에서 보냈다. 당시에는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짙었기에 전통적인 가치관 속에서 성장하였다. 매우 극심한 가난과 질고 속에서 방황하다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체험하고 복음을 접하게 되었다. 그 경험은 그의 삶을 변화시키는 전환점이 되었으며, 이후 복음 전파와 선교 사역에 헌신하는 하나님의 사역자로 살아가게 되었다.
무엇보다 그녀의 가정은 작은아버지가 사찰의 주지 스님이었던 만큼, 불교 신앙과 전통을 매우 엄격하게 지키는 분위기였다. 방학 때마다 작은아버지가 계신 사찰을 방문하면 부처 앞에 절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이처럼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에는 불교적 가치관과 문화, 그리고 우상숭배의 환경 속에서 깊은 영향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불교적 가정환경에서 성장한 허봉랑 선교사의 청소년기는 방황과 고난의 연속이었다. 무엇보다 그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가난이었다. 강원도 태백의 탄광촌에서 계속되는 빈곤과 삶의 고통은 그의 마음에 깊은 절망을 안겨 주었고, 한때는 삶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극단적인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극심한 가난과 삶의 고통 속에서 허봉랑 선교사는 한때 승려의 길을 선택하려고 결심하기도 했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찰에 들어가 스님이 되고자 할 만큼 깊은 절망과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와 은혜 가운데 미션스쿨에 입학하면서 그의 삶은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뜻하지 않은 미션스쿨 진학은 신앙을 접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의 인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허봉랑 선교사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것은 성경과의 만남이었다. 학교 교육과정에 따라 성경을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의무적으로 성경을 공부했지만, 신구약 성경 말씀을 깊이 접하고 묵상하는 과정에서 점차 변화가 일어났다. 그동안 믿어왔던 불교 신앙과 우상숭배의 모순을 깨닫게 되었으며,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확고한 신앙을 갖게 되었다. 허봉랑 선교사가 참된 예수님의 제자로 세워지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회개와 치유의 은혜를 경험하게 하셨다.
22세 무렵 그에게 여러 불치병이 찾아왔다. 위암, 폐결핵, 심장병, 척추골수염 등 무려 7가지 불치병으로 고통 받았으며, 의학적으로도 회복이 어렵다고 여겨질 만큼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있었다. 병원에서는 더 이상 회복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며 사실상 시한부 선고를 내렸다. 죽음만을 기다리는 절망적인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 절박한 순간, 학창시절 학교에서 접했던 성경 말씀과 하나님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기도를 시작했다. 어린 시절 불교 가정에서 성장하며 사찰에서 부처 앞에 절하고 우상을 숭배했던 지난날을 돌아보며 눈물로 회개하였다.
이후 허봉랑 선교사는 자신의 생명을 걸고 하나님께 서원기도를 드렸다. “이 죄인을 살려 주신다면 남은 평생 나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오직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살겠다”는 고백과 함께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결단을 올려드렸다.
그렇게 간절히 부르짖으며 기도하던 중 성령의 강력한 임재를 경험하였고, 온몸을 감싸는 뜨거운 은혜의 체험을 하게 되었다. 허 선교사는 이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치유하심을 경험했다고 고백한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성령의 강한 임재를 체험하는 가운데 오랜 시간 자신을 괴롭히던 질병의 고통이 사라졌고, 이후 다시 받은 검사에서 의료진들도 놀랄 만큼 회복된 상태를 확인하게 되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경험한 이 치유 사건은 허 선교사의 인생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20대 초반에 체험한 하나님의 은혜는 그를 복음 전파의 사명자로 세웠고, 하나님께 드린 서원대로 치유 받은 이후부터 자신의 삶을 복음 전하는 일에 헌신하게 되었다. 그 후 허봉랑 선교사는 전국을 다니며 말씀을 전하는 부흥사의 길을 걸으며, 하나님의 은혜와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로 평생을 헌신하게 되었다.
그녀는 65년이 넘는 세월 동안 미국 오스틴을 비롯해 전 세계 1만 5천회 이상 넘는 집회에서 자신의 치유와 회복의 간증을 전하며, 병들고 상처받은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소망을 전하고 있다.
현재 89세인 허 선교사는 미국과 한국, 일본 등 세계 각지를 오가며 국제적인 부흥 사역을 이어가고 있다. 구순을 앞둔 나이에도 변함없이 복음 전파에 헌신하는 그의 사역과 간증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영적 감동과 도전을 주고 있다.
9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허봉랑 선교사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그는 미국 오스틴을 중심으로 한국, 뉴욕, 시카고, 일본 등 세계 각지를 오가며 장거리 이동도 마다하지 않고 국제적인 부흥 사역을 이어가고 있다.
단상에 선 순간 그의 모습에서는 고령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단상에서 힘 있게 선포되는 말씀은 청년 못지않은 열정으로 가득하며, 듣는 이들에게 깊은 감동과 도전을 준다.
오산리기도원에서 전한 허 선교사의 메시지는 많은 성도들에게 살아 있는 믿음의 증언으로 다가왔다. 20대 초반 죽음의 위기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 치유를 경험한 이후, 67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결같이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해 온 그의 삶은 큰 귀감이 되고 있다.
그의 헌신적인 여정은 나이나 환경을 넘어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끝까지 붙드는 믿음의 본을 보여주며, 오늘날 많은 성도들에게 새로운 도전과 영적 각성을 일으키고 있다.
“오직 복음, 오직 교회, 오직 천국”이라는 한 가지 사명을 품고 작은 가방 하나만 들고 전 세계를 누비는 허봉랑 선교사의 모습에서 깊은 영적 도전을 받았다.
그의 삶을 통해 더 이상 환경과 나이를 핑계 삼아 사명을 미루지 말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평생 복음 전파를 위해 헌신하며 지금도 영적 파수꾼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허 선교사의 모습은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믿음과 헌신의 본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묵묵히 사명을 감당하는 모든 사역자들과 성도들을 응원하고 축복한다.
최선(崔宣) 박사(Ph.D)
신문·방송 칼럼니스트
SBCM KOREA 대표
OCU대학교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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