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성공회(Church of England) 총회(General Synod)에서 헌신적이고 친밀한 동성 간 관계를 기독교 신앙과 양립 가능한 것으로 인정하자는 결의안이 최종 부결됐다.
영국 크리스천투데이(CT)에 따르면, 이번 안건은 헬렌 킹(Helen King) 교수가 발의한 의원 발의안(Private Member's Motion)으로, “헌신적이고 신실하며 친밀한 동성 간 관계를 맺는 것에는 근본적인 반대 이유가 없으며, 그러한 관계는 기독교 제자도와 충분히 양립할 수 있음을 총회가 확인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헬렌 킹 교수가 직접 토론에 참석하지 못하면서, 머리얼 로빈슨(Muriel Robinson) 교수가 대신 결의안을 소개했다. 그는 이번 안건이 “다른 신학적 입장을 배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원칙에 관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로빈슨 교수는 “이것은 성경 자체를 둘러싼 논쟁이 아니다”라며 “우리는 성경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다양한 방식들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이 결의안의 기초”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이번 결의안이 올해 초 출범한 ‘동성 관계 및 결혼’ 관련 새 실무그룹의 논의를 앞당기거나 결과를 미리 정하려는 시도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앞서 영국성공회는 ‘사랑 안에서 살아가기(Living in Love and Faith·LLF)’ 논의가 종료된 이후 새로운 실무그룹을 구성했다. 이와 함께 주교단(House of Bishops)은 동성 커플 축복 예배를 독립적인 예식으로 도입하려면 정식 법적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입장을 인정한 바 있다.
로빈슨 교수는 “이번 토론이 지난 5년간 영국성공회를 지배했던 LLF 논쟁의 재연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며 “이 결의안은 지난 2월 총회 결정을 뒤집거나 결혼의 정의를 바꾸려는 시도가 결코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성직자의 복지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지만, 성소수자(LGBTQ+) 성직자와 평신도, 교인들 가운데는 교회에서 철저히 무시당하고 낙담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며 “총회가 그들의 관계와 소명을 인정하고, 사랑과 신실함 속에 살아가는 한 쌍의 사람으로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반대 측은 이번 결의안을 “목회적으로 적절하지 않으며 모호한 안건”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친밀함(intimacy)’이라는 표현이 지나치게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요크 교구의 제이크 매딘(Jake Madin) 목사는 “이 결의안은 현재 영국성공회의 결혼 교리와 양립할 수 없다”며 “성직자들은 바로 그 교리를 수호하겠다고 서약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토론 과정에서 결의안은 “영국성공회 안에는 양심에 따라 형성된 다양한 신학적 견해가 존재하며, 여기에는 동성 관계를 긍정하는 입장과 이를 거부하는 입장 모두가 포함된다”는 내용으로 대폭 수정됐다.
그러나 도싯(Dorset) 지역 랜턴교회(Lantern Church)의 마이크 터프널(Mike Tufnell) 목사는 원안과 수정안 모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어느 안이 통과되더라도 영국성공회의 역사적 신앙고백과 분명히 배치되는 메시지를 전달하게 될 것”이라며 “지금과 같은 시점에 이런 안건을 다루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며, 이제 막 출범한 새 실무그룹의 신뢰 회복 노력까지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우리는 가능한 한 말하는 바를 그대로 의미하고, 의미하는 바를 그대로 말해야 한다. 그것이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라며 “지난 5년간의 모호함과 분노, 갈등 끝에 왜 또다시 같은 일을 반복하려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옥스퍼드 교구 평신도 대표인 헬렌 킹(Helen King)도 원안과 수정안 모두에 반대하며 이번 논의를 “끝없이 반복되는 ‘그라운드호그 데이(Groundhog Day)’”에 비유했다.
그는 “현재 교회가 좋은 상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다음 회기를 위한 작업이 이미 진행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이 결의안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며 “또다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과거의 교훈을 배우지 못한 채 현재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키지 말자”고 호소했다.
복음주의 성향의 본 로버츠(Vaughan Roberts) 목사도 지난 2월 총회에서 제안했던 “완전히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다시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서로 동의하지 않을 것이며 앞으로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고, 중간 지점에서 만날 수도 없다. 두 입장을 동시에 인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다음 회기에서 진전이 있으려면 그 현실부터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교회는 ‘승자독식’의 길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정직한 새로운 길을 찾을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버밍엄 교구의 마이클 볼랜드(Michael Volland) 주교 역시 수정안에 우려를 표했다.
그는 “영국성공회의 공식 결혼 교리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서로 다른 신학적 견해를 모두 ‘정당한(legitimate)’ 것으로 인정하는 것은 혼란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며 “개인이 각자의 견해를 가질 수는 있지만, 이를 모두 정당한 입장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현장 목회에서 모호함과 혼란을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종 표결에서 수정안은 총회 3개 의결기구(주교원·성직자원·평신도원) 모두의 과반 찬성을 얻지 못해 부결됐다. 성직자원과 평신도원에서는 찬성을 받았지만, 주교원에서는 반대 14표, 찬성 11표, 기권 4표로 부결되면서 최종 채택에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