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이 일어난 지 76년이 됐다. 그 날의 포성은 멈추었으나 핵무기를 가진 북한의 도발 야욕까지 사라진 건 아니다. 76년 전 저들이 저질렀듯이 언제든 이 땅에서 전쟁이 재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비무환의 안보 태세를 더욱 튼튼히 해야 할 때다.
6.25 전쟁은 역사적으로 대한민국, 특히 한국교회와도 떼려야 뗄 수 없다. 일제 강점기에서 겨우 벗어나 자유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한 지 채 2년도 안 돼 이 체제를 파괴하려는 공산주의자들의 기습적인 침략을 받았다. 자유 민주주의를 파괴할 목적으로 저질러진 전쟁이다.
북한 공산군이 탱크를 몰고 휴전선을 넘는 남침을 남행한 시간은 주일 날 새벽이었다. 북한군이 쳐들어왔다는 소식에 놀란 사람들이 옷가지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피난길에 오르던 그 시간에도 많은 교회가 피난을 미룬 채 주일예배를 드렸다.
기록에 따르면 6월 25일, 아침 북한군이 서울 미아리고개를 넘던 그 시간에 서울 영락교회는 11시 30분에 주일 낮 예배를 드렸다. 영락교회 35년사에는 그날 예배 분위기를 "북괴군의 남침 보도를 들은 교인들이 불안한 마음 금할 길이 없었으나 교우들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 4천여 명이 모여 예정대로 예배를 드렸다"고 기록했다.
한국교회는 정처 없이 떠난 피난 길에서도 주일이면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리고 전쟁 통에 부모와 가족을 잃고 버려진 고아들을 돌보는 일을 시작했다. 고 한경직 목사를 비롯해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복음 전파와 함께 사회구제 활동에 나서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힘썼다.
전쟁이 남긴 상처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군인만 수십만 명이 사망하고 민간인 피해까지 합치면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전 국토가 초토화되고 1천만 명이 넘는 이산가족이 생겨났다. 그런데 한국교회가 이 전쟁을 잊어선 안 될 이유가 있다. 공산주의자들이 한국교회에 저지른 잔혹한 악행의 흔적이다.
맥아더 사령관의 인천 상륙작전으로 퇴각하던 인민군들은 공산주의를 반대하던 교회와 성도들을 무참히 살해하고 도주했다. 대표적인 예가 전남 염산교회 교인 77인을 수장을 비롯해 논산 병촌교회 66인, 전남 야월교회 65인, 신안 진리교회 48인, 상월 그리스도교회의 교인 33인, 영암읍교회 24인, 법성포교회 24인, 전북 덕암교회 22인을 살해한 사건이다.
3년 1개월 2일간 이어진 전쟁은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체결로 일단 멈추었다. 그런데 법적으로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시점에서 우리가 되돌아봐야 할 게 있다. 만약 76년 전 우리 국민에게 자유와 평화를 지키려는 저항정신과 의지가 없었더라면, 만약 국군 장병들과 나이 어린 학도병, 여성에 이르기까지 자원해 전쟁에 뛰어들 그 불굴의 애국정신이 없었더라면, 만약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한국을 외면하고 유엔군 파병을 결의하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대한민국이 이 땅에 존재할 수 있을까.
번영의 꽃을 피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국교회 성도라면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가 세 치 혀가 아닌 무수한 이들이 흘린 피와 희생으로 되찾은 가치이자 삶이란 사실을 절대로 잊어선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