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윤리를 부정한 마르크스주의 진리관
근대 계몽주의 이후 인류는 보편적 이성과 절대적 가치로서의 '진실(Truth)'을 신뢰해 왔다. 임마누엘 칸트로 대변되는 전통 윤리학에서 정직은 인간이 마땅히 지켜야 할 무조건적 정언명령이었다. 타인을 속이는 거짓말은 인간성을 훼손하고 사회적 신뢰의 근간을 파괴하는 절대악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19세기 마르크스주의의 등장은 이러한 보편적·초역사적 윤리관을 정면으로 부인했다.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엔겔스는 인간의 사상, 종교, 법률, 도덕 등 정신적 상부구조가 물질적 생산양식과 계급 관계라는 하부구조에 의해 결정된다는 유물사관을 확립했다. 이들은 《공산당 선언》을 통해 "각 시대의 지배적 사상은 늘 지배계급의 사상이었다"고 선언하며, 기존 도덕을 부르주아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위장한 '계급적 편견'으로 규정했다. 도덕이 고정불변한 가치가 아니라, 철저히 계급적 이익을 대변하는 역사적 변동물로 전락한 순간이다.
블라디미르 레닌은 이 유물론을 가혹한 러시아 혁명 투쟁의 실천 지침으로 구체화했다. 레닌에게 진실과 도덕은 초계급적인 실체가 아니었다. 오직 프롤레타리아 계급 투쟁의 승리와 사회주의 혁명 완수, 그리고 전위당의 권력유지라는 절대적 목적에 기여하는가에 따라 규정되는 도구적 개념이었다. "혁명에 이로운 것이 곧 진실이고 도덕이다"라는 명제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윤리학의 정수이자, 이후 공산주의 체제들이 자행하게 될 '조직적 기만'의 사상적 관통선이 되었다.
레닌의 도덕관과 '혁명적 이익'의 절대화
레닌이 자신의 도덕관을 가장 노골적으로 천명한 문헌은 1920년 제3차 전러시아 공산주의청년동맹 대회에서 행한 연설 〈청년동맹의 과업〉이다. 이 연설에서 레닌은 인간 본성에 기반했다는 초자연적인 도덕 관념을 격렬히 비판하며 공산주의자만의 독자적인 도덕률을 선언했다. 그는 "우리의 도덕은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의 이익에 완전히 종속된다"고 단언했다.
이 논리에 따르면 기존 자본주의 사회의 법질서, 정직, 약속 이행, 보편적 인간애 등은 구체제를 수호하기 위한 위선적 장치에 불과하다. 따라서 사회주의 혁명을 가속화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공고히 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거짓말, 약속 위반, 자산 탈취, 정보 조작은 비도덕적 범죄가 아니라 오히려 '가장 고결한 공산주의적 의무'로 치환된다.
이러한 레닌의 생각은 러시아 제정 말기 허무주의 혁명가 세르게이 네차예프가 1869년에 저술한 《혁명가의 교리문답》과 사상적 궤를 같이한다. 네차예프는 "혁명가에게 도덕적인 것이란 혁명의 승리를 돕는 모든 것"이라며 적을 기만하기 위해 사회 모든 계층에 침투해 살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레닌은 이 냉혹한 목적지상주의를 마르크스주의 계급론 및 전위당 조직론과 결합해 국가 통치 체제로 격상시켰다. 당과 혁명의 이익이 절대선이 되면서 진실의 기준은 객관적 사실(Fact)이 아니라 당의 노선(Party Line)에 일치하는가 여부로 완전히 바뀌었다. 사실이 당의 이익과 배치될 때, 이를 지워버리거나 왜곡하는 행위가 공산주의자의 신성한 과업이 된 배경이다.
전술로 내재화된 기만과 속임수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 기만과 거짓말이 과학적 투쟁 수단으로 내재화된 배경에는 특유의 인식론적 오만이 자리 잡고 있다. 공산당은 역사 발전의 철칙을 완벽히 통찰한 유일무이한 조직이므로, 당이 행하는 모든 전략은 역사적 필연성을 대지 위에 실현하는 성스러운 과정이 된다. 이 과정에서 미성숙한 대중을 선동하거나 자본주의 적대 세력을 교란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만술은 군사학의 위장술과 같은 필수 무기로 간주된다.
레닌은 1920년 저술한 《공산주의에서의 ‘좌익’ 소아병》에서 서구 공산주의자들을 향해 자본주의 체제 내의 합법적 공간에 침투하기 위해 온갖 기만책과 속임수를 거리낌 없이 구사할 것을 지시했다. 필요하다면 진실을 은폐해서라도 노동조합에 침투해 공산주의 과업을 수행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 지침은 코민테른을 통해 전 세계 공산당으로 이식되어 '통일전선전술'의 행동 규범이 되었다. 대외적으로는 평화, 민주주의, 연대를 외치며 상대방을 안심시키고, 대내적으로는 권력 독점과 동맹 세력 전멸을 도모하는 이중성은 도덕적 가책의 대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고도의 '혁명적 예술'이자 뛰어난 당성(黨性)의 증거로 칭송받았다.
결국 마르크스-레닌주의 체제 하에서 언론과 프로파간다의 임무는 사실의 객관적 보도가 아니라 당 정책의 정당성 주입으로 제한된다. 구소련의 공식 기관지 명칭이 역설적이게도 '진리'를 뜻하는 《프라브다》였던 점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들에게 진리란 독립된 객관적 실재가 아니라, 목적을 위해 대중에게 주입해야 하는 '재구성된 현실'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스탈린을 거쳐 북한으로 이어진 유산
"혁명에 이로운 것이 곧 진실이다"라는 명제는 인간의 양심과 도덕적 자율성을 당의 명령에 종속시키는 비극을 초래했다. 이 토양 위에서 이오시프 스탈린은 성과 과시를 위한 대규모 통계 조작, 정적 제거를 위한 가짜 재판, 수백만 명이 아사한 홀로도모르(대기근)의 전면적 은폐를 자행할 수 있었다. 참혹한 사실을 말하는 자는 '반혁명 분자'로 낙인찍혀 굴라그로 보내졌고, 조작된 가짜 현실을 찬양하는 자들만이 생존했다.
이러한 혁명적 기만의 메커니즘을 21세기 현재까지 가장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극대화한 집단이 바로 북한의 김씨 세습 독재 체제이다. 북한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계급 도덕론을 '수령에 대한 절대적 충실성'으로 변형시켜, "수령과 당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이 가장 정의로운 진실"이라는 주체사상식 기만 구조를 완성했다.
북한 교과서의 황당무계한 우상화 신화(솔방울 수류탄, 축지법 등)나 평양이라는 거대한 쇼윈도 도시의 유지, 국가 경제 지표의 은폐와 대외적 평화 공세는 모두 레닌이 뿌린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도덕률의 필연적 결과다. 따라서 북한 체제의 기만적 본질을 폭로하고 해체하는 싸움은, 이들에 의해 오염되고 뒤틀린 진실의 개념을 본래의 객관적·보편적 가치로 복원하는 사상적·언어적 회복 운동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안승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