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기독교의료협회, 조력자살 옹호한 의학 저널 비판

“고통받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죽음이 아닌 돌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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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기독교의료협회(CMF)가 최근 조력자살을 옹호하는 내용을 담은 의학 학술지 랜싯(The Lancet)의 기고문에 반박하며, 자살 예방은 단순한 자기결정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돌봄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논란이 된 랜싯 기고문은 조력자살을 원하는 사람들의 절망과 정신적 고통이 시간이 지나면서 개선될 수 있다는 주장을 “잘못된 논리(fallacious)”라고 평가절하했다.

또한 조력자살 반대론자들이 제기하는 “심각한 정신적 고통이 개인의 자율적 판단 능력을 약화시킬 수 있으며, 더 나은 사회적 지원과 의료 서비스가 제공된다면 자살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는 주장도 일축했다.

해당 기고문은 올해 초 안락사로 생을 마감한 25세 스페인 여성 노엘리아 카스티요(Noelia Castillo)의 사례를 중심으로 전개됐다. 카스티요는 어린 시절 방임을 경험했으며 정신질환을 앓아왔다. 또한 여러 차례 성폭력 피해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고, 자살 시도 이후 하반신 마비 상태가 됐다.

영국 크리스천투데이(CT)에 따르면, CMF는 랜싯 기고문이 제기한 일부 문제의식에는 공감하면서도, 자살 예방을 단순히 개인의 자율적 선택과 판단 능력 평가의 문제로 축소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협회는 성명을 통해 “자살 예방은 인간을 관계적 존재이자 연약한 존재로 이해하는 더 풍성한 관점에 기반해야 하며, 적절한 돌봄을 받을 때 세상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존재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사람은 충분한 사랑과 돌봄, 소속감을 경험하느냐에 따라 크게 변화할 수 있으며, 절망감은 미래에 대해 왜곡된 인식을 갖게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CMF는 고통받는 사람을 죽음으로 이끄는 것보다 그 곁을 함께 지키는 것이 더 바람직한 대응이라고 강조했다.

협회는 “현대 서구 사회는 점점 자유를 자기결정권, 즉 자신의 욕구에 따라 자신의 삶을 정의하고 통제할 수 있는 능력으로 이해하고 있다”며 “그러한 틀 안에서 연민은 죽음을 선택하는 결정조차 무조건 인정하는 것으로 왜곡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그러나 역사적으로 자살 예방은 인간 존엄성이 독립성이나 생산성, 혹은 현재의 희망 여부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는 이해에 기초해 발전해 왔다”며 “인간의 연약함은 자기파괴적 욕구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돌봄과 동행으로 응답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CMF는 이러한 입장이 기독교 전통뿐 아니라 의학계의 오랜 윤리 원칙인 히포크라테스 선서와도 맥을 같이한다고 설명했다. 의료의 목적은 환자의 모든 요구를 그대로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에게 진정으로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를 추구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협회는 “기독교적 사랑은 단순히 당장의 욕구를 인정하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며 “사랑은 상대방의 선을 추구하고, 고난 가운데 함께 머물며, 짐을 나누어 지고, 고통받는 사람을 현재의 절망 상태로만 규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사랑은 절망이 인간의 삶에 대한 최종적인 결론이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CMF는 결국 자살은 언제나 비극이며, 사회는 이를 예방하고 저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협회는 조력자살 논의 과정에서도 인간의 존엄성과 돌봄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