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문안교회(담임목사 이상학)와 미국 뉴브런즈윅신학교(NBTS)가 공동 주관하는 ‘제16회 언더우드국제심포지엄’이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새문안교회 대예배실에서 개최됐다.
올해 심포지엄은 세계 바울 신학계의 지형도를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 세계적 석학 존 바클레이(John M. G. Barclay) 영국 더럼대학교 라이트풋 신학 석좌교수를 단독 강사로 초청했다. 바클레이 교수는 신앙의 사사화(私事化)와 기복주의, 그리고 급격한 사회적 신뢰도 추락이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는 한국교회를 향해 복음의 사회적 윤리와 공적 책임을 촉구하는 신학적 메시지를 던졌다.
올해로 16회째를 맞이한 언더우드국제심포지엄은 한국 최초의 상주 선교사인 호러스 G. 언더우드의 헌신과 선교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매년 열리는 국제 학술 행사다. 이번 행사는 특히 오는 2027년 언더우드 선교사의 새문안교회 창립 140주년을 불과 한 해 앞둔 시점에서 열려 교계와 학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심포지엄은 ‘은혜, 나를 넘어 세상으로 – 바울에게 배우는 사랑과 연대’라는 주제 아래, 기독교의 핵심 가치인 ‘은혜’가 어떻게 개인의 내면적 구원을 넘어 사회적 연대와 실천으로 확장되어야 하는지를 심도 있게 다루었다.
행사를 주관한 새문안교회 이상학 담임목사는 개회인사를 통해 “우리는 일상에서 ‘은혜’를 자주 이야기하지만, 정작 그 은혜가 삶과 공동체에서 어떤 구체적인 열매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선명하게 답하지 못해왔다”라며 “개인의 신앙만을 강조하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기독교 신앙이 내면의 확신이나 사적인 경건에만 머물기 쉬워졌다”라고 지적했다. 이 목사는 이어 “이번 심포지엄을 통해 바울이 선포한 복음의 은혜가 단지 개인이 받은 값없는 선물에 그치지 않고, 우리를 사랑과 연대의 삶으로 떠미는 역동적인 힘임을 깨닫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라며 “추락하는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를 다시 끌어올리고, 교회가 세상 속에서 올바르게 서기 위해서는 일방적인 자선이 아닌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우는 수평적 연대가 시급하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 뉴브런즈윅신학교(NBTS)의 마이카 L. 맥크리어리(Micah L. McCreary) 총장 역시 기념사를 통해 “신학교의 가장 자랑스러운 동문인 언더우드 박사가 한국 땅에 뿌린 비전과 용기는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공동체를 변화시키고 있다”라며 “그가 직접 세운 새문안교회에서 이 국제적 학술의 장이 계속 이어지는 것 자체가 한 사람의 신실한 삶이 세대를 넘어 어떤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증거”라고 평했다.
바클레이 교수는 첫 번째 강연인 ‘은사 안에서 사는 삶: 기독교 윤리는 어떻게 은혜로부터 흘러 나오는가’에서 기독교가 오랫동안 오해해 온 ‘은혜’의 개념을 역사적·신학적 관점에서 완전히 새로 고쳤다. 현대인들은 선물을 ‘아무런 조건도, 대가도, 상호 책임도 없는 순수한 무상 시혜’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바클레이 교수는 바울이 편지를 쓰던 고대 그리스-로마 사회의 ‘선물(Gift/Charis) 문화’를 정밀하게 분석하며 종교학적 반전을 제시했다.
바클레이 교수는 “현대인들은 선물을 아무런 대가나 상호 책임이 없는 순수한 무상 시혜로 생각하지만, 고대 사회에서 선물은 반드시 수혜자의 변화된 삶과 상호 책임이라는 신실한 응답(Faithfulness)을 요구하는 역동적인 관계성의 표현이었다”라며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도덕적 자격이나 사회적 조건, 신분, 인종적 배경을 완전히 무시하고(Incongruous) 파격적으로 주어지는 값없는 선물이 맞지만, 그 선물을 받은 수혜자의 삶을 결코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바클레이 교수는 이어 “많은 그리스도인이 ‘오직 은혜’라는 개념을 잘못 이해해, 인간의 책임이나 윤리적 실천을 배제하는 수동적 신앙에 머물러 있다”라며 “바울이 선포한 은혜는 인간을 무력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에 능동적으로 반응하고 참여하게 만드는 역동적인 에너지”라고 정의했다. 바클레이 교수는 또한 “은혜를 경험한 신자는 자발적이고도 강력한 도덕적 주체로 변화되어 세상 속에서 선한 행위와 윤리적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다”라며 “기독교 윤리는 결국 은혜의 결과물이자 완성”이라고 주장했다.
이어지는 2강 ‘자선인가, 연대인가?: 타인을 위해, 그리고 타인과 함께 베푸는 삶’에서 바클레이 교수는 1강에서 다진 은혜의 개념을 사회학적 영역으로 확장하여 오늘날 교회가 행하는 구제와 복지 사역의 패러다임 전환을 촉구했다.
바클레이 교수는 “오늘날 교회가 행하는 수직적이고 일방적인 자선(Charity)은 주는 자의 도덕적 우월감을 채워주거나 받는 자의 존엄성을 해치는 유독성 자선(Toxic Charity)이 될 구조적 위험성을 안고 있다”라며 “이러한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기부자와 수혜자의 사회적 구분이 완전히 해체되는 수평적 연대(Solidarity)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바클레이 교수는 사도 바울이 고대 사회에서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성도들을 돕기 위해 마케도니아와 고린도 교회에서 거두었던 연보(성금)를 예로 들며, “바울은 이 연보를 단순한 일회성 구제금으로 보지 않고, 영적인 은혜를 입은 이방인들이 물질적 은혜로 보답하는 은혜의 순환(Circulation of Grace)이자 공동체의 상호 책임으로 보았다”라며 “참된 연보는 단순히 고통받는 이들에게 물질을 던져주는 시혜적 행위가 아니라, 그들의 처지로 기꺼이 내려가 삶을 공유하고 고통을 나누는 수평적 관계 맺기여야 한다”라고 논증했다.
심포지엄의 대미를 장식할 3강 ‘사랑은 자기희생을 필요로 하는가?’에서 바클레이 교수는 기독교 윤리의 정점인 ‘사랑(Agape)’과 ‘자기희생’의 관계를 신선한 시각으로 다루었다.
바클레이 교수는 “전통적으로 기독교는 사랑을 조건 없는 자기희생이나 자아의 완전한 부정으로 가르쳐왔으나, 이러한 극단적인 이타주의적 접근은 오히려 인간의 주체성을 말살하거나 억압적인 관계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오용될 수 있다”라며 “바울 신학의 렌즈를 통해 바라본 기독교적 사랑은 자신의 존재를 무가치하게 여겨 파괴하는 맹목적 희생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바클레이 교수는 이어 “참된 사랑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고, 그 귀한 자아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온전히 내어주는 창조적 헌신”이라며 “내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를 깊이 깨달을 때 비로소 타인을 향한 진정한 사랑과 내어줌의 경제학이 가능해진다”라고 역설했다.
심포지엄의 준비위원장인 손세창 장로는 “최근 글로벌 분쟁 등 전 세계적인 혼돈과 인공지능(AI)의 급격한 발전 등 문명사적 위기 속에서 교회의 사회적 영향력은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며 위기의식을 공유했다. 손 위원장은 “이 시점에 바울의 은혜 신학을 재조명한 것은 한국교회가 초대교회의 역동성을 회복하고 사회의 공적 동반자로 거듭나기 위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기대를 표했다.
발제 이후에는 연세대 임성욱 교수의 진행으로 깊이 있는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은 현 한국 사회의 극단적 양극화, 이념 갈등, 혐오의 정서 속에서 교회가 어떻게 ‘바울식 연대’를 구체화할 수 있을지에 대해 질문을 쏟아냈다.
이에 바클레이 교수는 “교회가 추구해야 할 공동선(Common Good)은 사회의 권력자들이나 교회의 기득권층이 정의하는 배타적 이익이 되어서는 안 되며, 사회에서 가장 약하고 소외된 지체들의 유익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라며 “공유된 선을 위해 교회가 가진 기득권과 특권을 기꺼이 포기하고 세상의 아픔에 동참할 때 비로소 사회는 교회의 목소리에 다시 귀를 기울일 것”이라고 제언했다.
한편, 제16회 언더우드국제심포지엄은 둘째 날인 31일 오후 4시 15분부터 새문안교회 대예배실에서 계속됐다. 둘째 날에는 존 바클레이 교수의 제3강 강연 심층 논의와 함께, 장로회신학대학교 정은찬 교수가 좌장을 맡는 본격적인 종합 좌담회가 진행되어 보다 대중적이고 실천적인 한국교회의 실천적 적용 성찰을 이끌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