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형용모순

오피니언·칼럼
기고
안승오 교수(영남신학대학교 선교신학)
안승오 영남신대 선교신학 교수

지구상에서 가장 완벽한 언어적 배반을 목격하고 싶다면, 한반도 북쪽을 지배하는 정권의 정식 국호를 들여다보면 된다. 북한의 공식 명칭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의 단어 하나하나가 피 흘려 성취한 근대 정치학의 정수를 담고 있는 듯하지만, 이 이름은 북한 체제의 본질을 가리는 거대한 기만이자 정교한 형용모순(Oxymoron)이다.

독재자들은 언제나 자신에게 결핍된 가치를 이름으로 박제하려는 기묘한 집착을 보인다. 북한의 국호는 그 집착이 낳은 가장 기괴한 결과물이다. 민주주의(Democracy), 인민(People), 공화국(Republic)이라는 숭고한 가치들이 어떻게 하나의 국호 안에서 서로를 부정하며 파멸하고 있는지 그 실상을 파헤쳐 보는 것은 북한의 명확한 실체를 알고 북한을 향한 바른 정책을 펼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1. 민주주의(Democracy)가 없는 ‘민주주의’

민주주의의 핵심은 '지배받는 자가 지배자를 선택하는 것'이다. 즉, 권력의 정당성이 아래로부터 위로 향하는 체제다. 그러나 북한의 조선노동당 규약 제26조는 당의 최고 지도기관인 당대회를 통하지 않고도 수령의 절대권력을 명시하고 있으며, 실제 권력은 위에서 아래로 일방적으로 군림한다.

북한 체제에서 ‘민주주의’는 민중의 자유로운 의사 표출이 아니라, 수령의 교시를 무조건적으로 관철하는 대중 동원의 수단으로 전락했다. 그들이 주장하는 소위 '우리식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는 복수 정당제나 사상·표현의 자유 같은 민주주의의 최소한의 기본 요건조차 전면 부정한다. 100% 찬성 투표와 선거를 '수령에 대한 충성 경쟁'으로 치러내는 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언어에 대한 모독이다.

2. 주인이 아닌 노예가 된 ‘인민(People)’

'인민'이라는 단어는 국가의 주권이 평범한 대중에게 있음을 선언하는 서사적 표현이다. 북한 사회주의헌법 제4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권은 로동자, 농민, 군인, 근로 인테리를 비롯한 근로 인민에게 있다. ..."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화려한 문구 뒤에 숨은 실상은 참혹하다. 북한 주민들은 주권을 가진 국가의 주인이 아니라, '수령'이라는 단 한 명의 절대자를 위해 존재하는 종속물이다. 헌법보다 상위에 존재하는 북한 체제의 실질적 최고 규범인 『당의 유일적 령도체계 확립의 10대 원칙』 5조 1항은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의 유훈, 당의 로선과 방침, 지시를 곧 법으로, 지상의 명령으로 여기고 사소한 리유와 구실도 없이 무한한 헌신성과 희생성을 발휘하여 무조건 철저히 관철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 규범 앞에서 인민의 복리와 안위는 정권의 생존과 핵무기 개발이라는 뒤틀린 목적 앞에 늘 부차적인 것으로 밀려났다. 국가의 주인이 주린 배를 움켜쥐고 탈북을 감행하다 총살당하는 현실은 '인민'이라는 단어가 북한에서 얼마나 철저히 도구화되었는지를 증명한다.

3. 사유화된 세습 왕정, ‘공화국(Republic)’

북한의 국가 이름 중 가장 치명적인 형용모순은 단연 ‘공화국’이라는 표현이다. 공화주의(Republicanism)의 근간은 '공공의 것(Res publica)'이라는 뜻대로, 국가가 특정 개인이나 가문의 사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이다.

그러나 북한은 전 세계 사회주의 역사상 유례가 없는 '3대 세습 왕정체제'를 구축했다. 김일성에서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권력 승계는 공화국의 제도를 빌려 겉포장만 했을 뿐, 본질은 전근대적인 봉건 군주제보다 더 폐쇄적인 씨족 국가다. 헌법에 백두혈통의 정통성을 암묵적으로 명시하고, 국가의 모든 자원과 토지, 심지어 주민의 사상까지 김씨 일가의 사유물로 전락시킨 이 체제를 '공화국'이라 부르는 것은 정치학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이다.

결론: 거짓이 산소가 된 나라를 향한 직시

북한의 국호는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정치적 연극'이자 대내외적 기만전술이다. 가짜 민주주의로 국제사회의 정당성을 획득하려 하고, 가짜 인민주의로 내부 주민의 저항을 억누르며, 가짜 공화주의로 사유화된 세습 독재를 은폐한다. 우리가 북한 국호의 형용모순을 명확히 짚어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말장난을 비판하기 위함이 아니다. 이름에 담긴 기만을 걷어낼 때 비로소 그 속에서 신음하는 북한 주민들의 진짜 삶이 보이기 때문이다. 진실이 금지된 땅에서 거짓을 산소 삼아 연명하는 정권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것, 그것이 북한의 '거짓 공화국'을 마주하는 올바른 상식의 시작이다.

#안승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