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연안의 어느 열대 지방, 눅눅한 공기 속에 우기가 한창이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굵은 비가 지면을 때렸고, 빗줄기가 잦아들면 땅속에 머금어 있던 열기가 수증기가 되어 온몸을 끈적하게 감쌌다. 바닥이 고르지 못한 현지 가옥에서 불빛마저 희미한 밤을 맞이할 때면, 한 걸음을 내딛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일상이었다. 이 무거운 공기 속에서 나의 하루는 시작되고 저물었다.
이곳에서 나를 맞아준 이는 어린 아들을 둔 젊은 부부였다. 할아버지를 여의고 살아가던 아이는 처음 본 이방인인 나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반짝이며 바라보았다. 캐나다에서 온 한국인 선교사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일까. 아이는 낯설어하기보다 깊은 관심을 보이며 내 곁으로 다가왔다.
마당에 들어서자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주위를 뱅글뱅글 돌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뜻밖에도 익숙한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꼬마야, 꼬마야, 뒤로 돌아라….” 머나먼 타국, 그것도 문명의 이기와는 거리가 먼 이곳에서 한국의 전래 동요가 들려올 줄이야. 아이가 어디서 그 노래를 배웠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그 맑은 목소리에 실린 노래는 눅눅한 공기를 가르며 내 마음속 깊이 스며들었다. 순수한 기쁨이 가득한 그 웃음은 선교지의 고단함을 단번에 씻어내 주는 듯했다.
그 가족의 배려는 따뜻했다. 아이는 내 몸이 약한 것을 눈치챘는지, 제 몸집만 한 짐을 대신 들어주기도 하고 집 안 곳곳을 안내하며 내가 불편하지 않도록 세심히 챙겼다. 고사리 같은 손길이었지만, 그 속에는 오히려 나를 품어주는 커다란 위로가 담겨 있었다.
어느 날 오후, 아이와 함께 식탁에 마주 앉았다. 아이는 식탁 위 잡다한 물건들을 정성껏 옆으로 밀어두더니, 직접 그린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닥터 주, 이거 선물이에요.”
그것은 아이가 직접 그린 태극기였다. 괘의 숫자가 어긋나고 태극 문양도 비뚤비뚤했지만, 아이의 눈빛만큼은 진지했다. 내가 곁에서 색칠을 도와주자 아이의 얼굴에는 놀라운 기쁨과 만족감이 번졌다. 그 순간 깨달았다. 복음의 사역 또한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이토록 작고 세밀한 마음의 교류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말이다.
아이는 색연필을 쥔 손에 힘을 주며 선을 따라가다 실수를 하면, 나를 슬쩍 쳐다보고는 다시 집중했다. 한 줄씩 색이 채워질 때마다 아이의 자부심도 함께 커져갔다. 그 순수한 열정은 마치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미리 보여주는 듯했다. 선교의 길에서 만나는 기적은 결코 크고 화려한 사건에만 있지 않았다. 오히려 서툰 그림을 함께 완성해가는 작은 교감 속에서 복음의 씨앗은 더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나는 이곳에 고단한 영혼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자유를 전하기 위해 부름 받았다. 그러나 아이와 함께한 시간은 나에게 '가르치는 선교'가 아닌 '함께 사는 선교'를 가르쳐주었다. 먼저 마음을 열고 진심을 나누며 삶으로 증명할 때, 복음은 비로소 누군가의 삶에 깊숙이 스며든다.
오늘도 나는 아이의 맑은 눈동자와 미지의 경로로 전해진 그 노래를 마음에 담는다. 땀과 빗물이 뒤섞인 이 길 위에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향해 조용히, 그러나 흔들림 없이 발걸음을 옮긴다.
주재식 선교사(대한예수교장로회 (개혁총연) 캐나다 노회 파송, 세계 순회 의료복음 선교사)
#주재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