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 가장 좋은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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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욱 교수(아신대 설교학)
신성욱 교수

수업 시간에 신대원 학생으로부터 받은 질문이 하나 있다. “노아는 500세 이후에 아들들을 낳았다고 되어 있는데, 어째서 설교자들은 아브라함이 백 세에 하나님의 특별한 능력으로 기적같이 이삭을 얻었다고 그렇게도 강조하는 건가요?”라는 질문이다. 웬만한 성경 애독자라면 한 번쯤은 가져볼 만한 의문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미리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약속하시는 장면이 창세기 17장 17절에 나온다. 그때 아브함은 의심을 한다.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니.”

그 약속이 성취된 장면이 창세기 21장 5절에 나온다.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백 세라.”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백 세에 낳았다는 말이다.

이삭의 출생이 인간적인 가능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으로 이루어진 기적의 사건이라는 암시가 많다. 그런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입장에서 본다면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 것인가”라며 웃었던 아브라함의 말이 이해가 된다. 100세는커녕 70세 전후에 자식을 낳기라도 했다면, 세계적인 화제가 되고, 기네스북에 등재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균 850세를 살았던 아담 시대로 판단한다면 백 세에 자식을 낳는 일이 화제가 될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노아는 500세 이후에 셈, 함, 야벳을 낳았고(창 5:32), 므두셀라는 187세에 라멕을 낳았고(창 5:25), 아담도 아브라함보다 많은 130세에 셋을 낳았기(창 5:2) 때문이다.

물론 평균 850세를 살았던 노아 이전 시대와 수명이 짧아져서 200세 안팎의 생을 살았던 노아 이후 아브라함 시대는 계산이 달라야 함을 감안해야 한다.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널리 인정되는 최고령 아버지는 호주의 레스 콜리(Les Colley)로, 92세 10개월에 아들을 얻은 사례이다. 그런데 이 경우는 여성이 시험관으로 낳은 케이스이기에 기적적으로 아이를 낳았다고 볼 수는 없다. 일반적인 자연 임신으로 볼 때 가장 늦은 나이에 아이를 낳은 경우는 70세 전후로 볼 수 있다.

물론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경우는 그와는 또 다른 케이스임을 알아야 한다. 아브라함의 경우가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그가 나이가 많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미 인간적으로는 임신이 불가능한 상태였다는 점 때문이다. 아브라함과 아내 사라 두 사람 모두 노쇠했으며, 아내 사라는 경수가 이미 끊어진 불임 상태였음을 창 18:11이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이삭의 출생은 단순한 “늦둥이 출산”이 아니라, 인간의 가능성이 완전히 끝난 자리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역사였다.

하나님은 아직 희망이 남아 있는 상황이 아니라, 누구도 기대할 수 없는 상태에서 약속을 이루심으로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신 것이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몸은 늙었고, 시간은 지나갔고, 의학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 가능성은 사라졌지만, 하나님의 말씀만은 사라지지 않았다.그래서 성경은 이삭을 단순한 아들이 아니라 “약속의 아들”이라고 부른다.인간의 힘으로 얻을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셨기 때문이다.

결국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가 할 수 있느냐”를 묻지 않으셨고, “내가 약속한 것을 믿느냐”를 물으신 게다. 믿음이란 눈앞의 가능성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불가능 가운데서도 살아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그래서 아브라함의 백 세 출산은 단순한 장수의 기록이 아니라, 죽은 것 같은 불가능의 현실 속에서도 약속을 살려 내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증언이다.

인간의 끝은 하나님의 시작이 되며, 하나님의 약속은 인간의 한계 앞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삭의 탄생 이야기는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소리친다. “불가능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 가장 좋은 무대이다.”

지금 불가능의 환경 속에서 절망과 좌절과 불평과 낙심 속에 허덕이는 이가 있는가?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시는 이인 하나님을 바라보고 용기를 갖기 바란다.

#신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