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에서 목회자로… 하나님이 이끄신 50년의 길”

[인터뷰] 초원교회 원로 손평업 목사
손평업 목사(왼쪽)와 김정숙 목사 부부 ©서다은 기자

판사와 변호사의 길을 걸어온 법조인이자, 강단에 서는 목회자. 손평업 목사(초원교회 원로, 군포제일교회 부설 성민원 법률고문)는 두 소명을 함께 감당해온 드문 삶의 주인공이다. 그의 삶을 이끌어온 기준은 분명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택인가.”

불교 가정에서 자라 신앙을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갈등의 시간을 지나온 그는, 기도 가운데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경험을 했다. 그 만남은 삶의 방향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고, 이후 그의 선택은 신앙의 기준 위에서 이루어졌다.

손 목사는 “지금까지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라고 고백했다.

불교 집안에서 태어나 신앙을 갖기까지

손평업 목사는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불교 집안에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 절에 다니며 자연스럽게 불교적 환경 속에서 자랐다.

신앙의 변화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조금씩 시작됐다. 한 교사가 “서양 문학의 뿌리는 성경”이라며 성경을 읽어보라고 권유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친구를 통해 접한 신약 성경은 손 목사의 내면에 조용히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경주의 한 암자에서 고시 공부를 하던 어느 날, 석양이 비치는 고요한 시간 속에서 삶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된다. 그는 “경쟁에서 이겨야만 성공하는 삶이 아니라, 함께 잘 사는 삶이 더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때 떠오른 것이 예수님의 사랑이었다”고 회상했다. 이 깨달음은 교회로 향하는 발걸음으로 이어졌다.

기도 가운데 얻은 믿음의 확신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지만 믿음은 쉽게 자라나지 않았다. 오랜 종교적 배경 속에서 형성된 생각과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았고, 그는 약 5년 동안 신앙의 갈등을 하며 씨름하는 시간을 보냈다.

손 목사는 결단을 했고, 삼각산 기도원에 올라가 믿음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3박 4일 동안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응답하셨고, 믿음을 주셨다”고 말했다.

하나님은 또 한번 꿈을 통해 손 목사를 깊이 만나주셨다. 꿈속에서 예수님께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안수기도를 해주셨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평안과 기쁨이 마음에 충만했다. 오랜 시간 낙방으로 쌓여 있던 스트레스와 부담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이후 치른 사법시험에서 여덟 번의 실패 끝에 아홉 번째 도전으로 합격하게 된다. 손 목사는 “마음이 평안한 가운데 기도하며 시험을 봤고, 실수 없이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며 “합격은 노력의 결과이자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말했다.

성도에서 장로, 그리고 목사로

면목제일교회에 정착한 손평업 목사는 성도로 시작해 집사와 장로로 세워지며 교회를 섬겨왔다. 그의 삶의 중심은 점차 교회로 옮겨졌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헌신의 삶이 이어졌다.

그의 신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은 교회 건축 과정이다. 손 목사 부부는 토지 보상으로 마련된 재정 가운데 1억 원을 건축 헌금으로 드리며 출발점을 마련했다. 당시 건축위원장이었던 그는 판사로 재직하던 중에도 공사를 이어가기 위해 지인들에게 자금을 빌려 충당했다.

완공 이후에는 남은 빚을 감당하기 위해 사표를 제출하고, 퇴직금을 헌금으로 드렸다. 여기에 더해 교회 수련회를 마치고 돌아오던 중 사고로 세상을 떠난 둘째 아들의 합의금까지 교회 건축을 위해 드려졌다. 손 목사는 이 모든 과정을 돌아보며 “사람이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고 고백했다.

목회의 길로 나아가게 된 계기 역시 둘째 아들의 죽음과 맞닿아 있다. 학생 전도사로 섬기던 아들이 세상을 떠난 뒤, 그는 비어 있던 중등부 교사 자리를 맡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신학을 공부하며 목회의 길을 걷게 됐다. 손 목사는 “아들이 감당하던 사명을 이어받는 마음이었다”고 회상했다.

이후 그는 새로운 출발을 선택했다. 오래 섬기던 교회를 나와 가정에서 소수 인원과 함께 드리기 시작한 예배는 점차 공동체로 자리 잡았고, 부부는 자신들의 집을 헐어 그 자리에 교회를 세웠다. 이것이 오늘의 초원교회다.

은혜로 이어진 법조인의 길… “돈보다 사람”

판사로 재직하던 시절부터 손평업 목사의 기준은 분명했다. 법과 양심, 그리고 신앙에 따른 판단이었다. 그의 법조 인생에는 사법시험 시절 하나님 앞에 드렸던 한 가지 약속이 자리하고 있다. 그는 “사법시험에 합격하게 해주시면 교회를 위해 헌신하겠다고 기도했다”며 “그 약속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당시 교회 주변에는 무속 신앙의 영향이 강했지만, 그는 기도하며 교회를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섬김을 이어갔다. 지방 발령을 받은 이후에도 주말마다 교회를 찾아 예배를 드렸다.

퇴직 후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면서 그의 삶은 또 다른 국면을 맞았다. 사건은 끊이지 않았고, 어려운 사건들도 비교적 순조롭게 풀려나갔다. 특히 개업 첫해에만 4,601건의 사건을 맡으며 이례적인 기록을 남겼다.

그는 그 시간을 돌아보며 “마치 돛단배가 바람을 타고 가듯, 내가 힘을 쓰지 않아도 길이 열리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신다고 느꼈다”고 덧붙였다.

바쁜 변호사 활동 속에서도 그는 만나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법률 상담을 통해 맺어진 관계 속에서도 신앙을 나누며 삶으로 믿음을 전하려 했다.

또 많은 사건을 맡으면서도 그의 기준은 흔들리지 않았다. 손 목사는 “항상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인가’를 먼저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돈이 되는 사건이라도 옳지 않다고 판단되면 맡지 않았고, 조폭 관련 사건 등은 단호히 거절했다. 반대로 어려운 이들의 사건은 수임료를 받지 않고 돕기도 했다. 진행 중인 사건이라도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수임료를 돌려주고 사임했다.

특히 억울한 사건에 대해서는 끝까지 파고들었다. 그는 “억울한 사람이 죄를 뒤집어쓰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조인으로서 넉넉한 삶을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손 목사는 끝까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택해왔다. 사건 수임이 곧 수입으로 이어지는 현실에서 이익보다 기준을 앞세우는 일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법조계 동료들 역시 그의 삶을 높이 평가한다.

아내와의 동역… 헌신으로 세운 가정과 사역

손평업 목사의 사역 뒤에는 아내 김정숙 목사(한국기독교여교역자목회연구원 원장)의 헌신이 늘 함께했다. 두 사람은 부부를 넘어 같은 길을 걷는 동역자로 살아왔다.

김 목사는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 보험회사 외무 사원으로 일하며 가정을 책임졌고, 점포장까지 오르며 가정의 기반을 세우고 교회의 재정에 힘을 보탰다. 정년까지 성실히 일한 뒤 받은 퇴직금은 초원교회와 사택이 세워지는 밑거름이 됐다.

사역에서도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은사로 균형을 이뤘다. 손 목사가 말씀과 설교에 집중했다면, 김 목사는 조직과 돌봄, 대외 사역을 맡아 공동체를 세워왔다. 각자의 자리에서 감당한 역할은 서로를 보완하며 하나의 사역으로 이어졌다.

특히 김 목사의 헌신은 손 목사가 법조인의 길을 걸어가는 데 중요한 버팀목이 됐다. 가정을 든든히 지키며 경제적 기반을 마련해 준 덕분에, 손 목사는 외적인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기준을 지켜갈 수 있었다.

손 목사는 아내를 “가장 든든한 동역자”라고 말하며 “지금까지 신앙을 지키며 법조인으로, 또 목회자로 살아올 수 있었던 데에는 아내의 헌신이 있었다”고 했다.

50년 법조 인생의 결실 ‘백로상’

손평업 목사는 판사 약 20년, 변호사 30년 이상을 이어오며 반세기에 가까운 법조인의 길을 걸어왔다. 현재도 현역으로 활동 중인 그는 오랜 시간 신앙의 기준 위에서 법조인의 길을 지켜왔다. 이러한 삶은 2025년 법조계에서 권위 있는 ‘백로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백로상은 단순한 경력만으로 주어지는 상이 아니다. 80세를 넘긴 고령에도 현역으로 활동하며, 청렴성과 도덕성, 공익적 책임을 꾸준히 실천해 온 인물에게 수여되는 상으로, 법조계에서도 변호사에게 주어질 수 있는 가장 명예로운 상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그만큼 수상자는 극히 제한적이며, 한 사람의 삶 전체를 통해 쌓아온 신뢰와 품격이 함께 평가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손 목사는 오랜 기간 수많은 사건을 맡으며 정직함과 신념으로 신뢰를 쌓아왔다. 특히 어려운 이들의 사건을 외면하지 않고, 때로는 수임료 없이 변론에 나서는 등 공익적인 자세를 이어왔다. 이 상은 단순한 업적의 결과가 아니라, 그가 걸어온 삶의 방향을 보여주는 결실이기도 하다.

손 목사는 이에 대해 “하나님이 지금까지 길을 열어주신 결과라고 생각합니다”라며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다. 이어 “건강이 허락하는 데까지 맡겨진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