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바로잡지 않으신 질문: 사도행전이 여전히 이스라엘을 중심에 두는 이유

더그 리드 목사. ©Christian Post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더그 리드 목사의 기고글인 ‘예수님이 바로잡지 않으신 질문: 왜 사도행전은 여전히 이스라엘을 중심에 두는가’(The question Jesus didn’t correct: Why the book of Acts keeps Israel at the center)를 4월 10일(현지시각) 게재했다.

리드 목사는 현재 뉴욕 버팔로의 더 태버나클에서 20년 넘게 근무하고 있으며 페사치 월리치 랍비와 함께 '숄더 투 숄더' 팟캐스트를 공동 진행하며 신앙, 문화, 이스라엘 분야의 글로벌 리더들과 소통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현대 기독교 신학의 상당 부분을 형성해 온 조용한 전제 가운데 하나는,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그 역할을 다했다는 생각이다. 때로는 암묵적으로, 때로는 분명하게 교회가 하나님의 구속 계획에서 이스라엘을 대신하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이스라엘은 과거에 속하고, 교회는 현재와 미래에 속한다는 이해다.

그러나 사도행전은 이러한 전제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도행전을 역사적·지리적·성경적 맥락 속에서 읽어 보면 훨씬 더 통합적인 그림이 나타난다. 사도행전에서 이스라엘은 교회와 경쟁하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펼쳐지는 언약적이며 지리적인 무대로 계속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이어지는 하나님의 구원의 이야기가 바로 그 위에서 전개된다.

예수님이 바로잡지 않으신 질문

이 해석의 핵심 열쇠는 부활 직후 제자들이 던진 질문에서 발견된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사도행전 1:6)

이 질문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이 질문을 한 사람들은 신학적으로 혼란에 빠진 외부인이 아니었다. 그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직접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가르침을 받은 사도들이었다(사도행전 1:3). 만약 그들의 이해가 잘못되었다면, 예수님께서 바로잡으셨어야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책망하지 않으셨다: “너희가 오해하고 있다. 이제 이스라엘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교회가 이제 참된 이스라엘이다”라고도 하지 않으셨다. 또한 “이스라엘의 회복은 더 이상 없다”고 말씀하지도 않으셨다.

대신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사도행전 1:7)

즉, 그들의 기대 자체는 틀리지 않았지만 그 시기는 인간이 알 수 없는 영역이라는 의미였다.

이 장면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하시겠다는 구약의 약속과 예언이 계속 유효함을 보여주는 신약의 중요한 증거로 이해된다. 예수님은 질문의 전제를 부정하지 않으셨고, 다만 하나님의 주권적인 시간표에 속한 문제임을 강조하셨다.

승천 사건이 미래의 지리를 고정시키다

사도행전은 이어서 예수님의 승천 장면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더욱 분명히 한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동쪽 감람산에서 하늘로 올려지셨다. 이곳은 오래전부터 이스라엘의 예언적 미래와 연결되어 온 장소다. 제자들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때 두 천사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사도행전 1:11)

이 말씀은 단순한 상징적 표현이 아니다. 방향과 장소를 포함한 구체적인 약속이다.

예수님은 실제 몸으로, 눈에 보이게, 특정한 장소인 감람산에서 승천하셨다. 그리고 천사들은 그분이 같은 방식으로 다시 오실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는 스가랴 14장 4절에서 주님의 발이 감람산에 서게 될 것이라는 예언과도 일치한다.

기독교 신앙에서 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예수님이 런던에 다시 오실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뉴욕이나 로마에 오실 것이라고도 믿지 않는다. 그분은 예루살렘으로 다시 오실 것이라고 믿는다.

사도행전은 재림 사건을 단순히 영적인 의미로만 해석하지 않는다. 교회의 세계 선교를 강조하는 동시에, 역사의 완성이 특정한 장소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 나라가 온 세상으로 확장되지만, 그 완성은 이스라엘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확장되지만 이스라엘을 떠나지 않는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러한 흐름을 더욱 분명히 보여 준다: “너희가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사도행전 1:8)

이 말씀은 단순한 선교 전략이 아니라 신학적 지도와도 같다. 복음은 예루살렘을 건너뛰지 않는다. 그곳에서 시작된다. 유대를 버리지 않는다. 그곳을 통해 확장된다. 이스라엘을 지우지 않는다. 그곳으로부터 퍼져 나간다.

사도행전은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면서도 언약적이며 지리적인 중심과 분리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준다.

오순절: 세계를 향한 유대적 사건

오순절 사건 역시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이 사건은 예루살렘에서 일어났고, 유대인의 절기 가운데 발생했으며, 여러 나라에서 온 유대인 순례자들이 참여했다. 베드로는 유대인의 성경을 인용하며 설교했고, 선포된 메시지는 유대인의 메시아에 관한 것이었다.

오순절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계획에서 제외되었다는 선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지막 때 계획이 이스라엘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열방이 구원을 받는 것은 이스라엘을 대신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메시아를 통해서이며, 이스라엘의 성경에 기록된 약속에 따른 것이다.

사도들은 이스라엘을 이야기에서 제외하지 않았다 사도행전 전반에서 사도들은 이스라엘의 언약적 정체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조상들과 세우신 언약”을 이루셨다고 선포했다(사도행전 3:25).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야고보는 이방인의 구원이 이스라엘의 회복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이루어지는 것임을 설명하기 위해 선지자들의 말씀을 인용했다(사도행전 15장). 바울 역시 하나님 나라를 전하면서 이스라엘의 소망을 부정하지 않았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백성 안으로 온전히 받아들여졌지만, 이스라엘이 버려졌거나 대체되었다거나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교회는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이스라엘이 필요하다

사도행전은 교회를 이스라엘을 대체하는 존재가 아니라, 이스라엘 이야기 안에 참여하는 공동체로 묘사한다.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이스라엘과의 연결을 끊어 버린다면 성경은 역사적 현실과 분리된 추상적 개념이 되고, 하나님 나라는 실제 역사 속 사건이 아닌 단순한 영적 개념으로 축소된다. 또한 하나님의 약속은 언약적 확신이 아니라 조건적인 것으로 이해될 위험이 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완전히 버리실 수 있다면, 교회 역시 언젠가 버려질 수 있다는 불안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여전히 예루살렘에 닻을 내린 미래

사도행전은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하고, 예수님이 떠나신 바로 그 장소로 다시 오실 것이라는 약속으로 이어진다.

하나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교회는 사명을 받았지만 아직 완전한 통치의 자리에는 이르지 않았다. 이스라엘 역시 이야기 속으로 다시 모아졌지만 아직 완전한 회복에 이르지는 않았다.

사도행전은 이야기를 열린 결말로 남긴다. 역사가 여전히 하나님께서 정하신 절정을 향해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는 이스라엘에 뿌리를 둔 과거를 가지고 있으며, 교회를 통해 현재 드러나고 있고, 예수님과 천사들의 말씀에 따르면 다시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미래를 가지고 있다.

사도행전은 이스라엘과 교회 가운데 하나만 선택하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오히려 예루살렘에서 승천하시고 다시 그곳으로 오실 언약을 지키시는 한 왕 아래에서 두 현실을 함께 존중하도록 요청한다.

#크리스천포스트 #기독일보 #기독일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