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시대 속 희망을 붙들다: 기다림 속에서도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삶

브라이언 해리스 박사. ©기독일보 DB

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브라이언 해리스 박사의 기고글인 ‘어두운 시기에도 희망을 잃지 말라: 작은 시작이 큰 일을 이룬다’(Holding out hope in dark times: a little can do a lot)를 4월 6일(현지시각) 게재했다.

해리스 박사는 컨설팅 회사인 Avenir Leadership Institute를 이끌고 있으며 이 단체는 전 세계에 필요한 리더 양성을 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단지 서서 기다리는 이들도 또한 섬기는 것이다(They also serve who only stand and wait).” 이 문장은 존 밀턴의 자전적 시 「실명에 대하여(On His Blindness)」의 마지막 구절로 널리 알려져 있다. 밀턴은 시력을 잃은 이후 더 이상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절망 속에서 이 시를 썼다. 그는 하나님께서 오직 적극적으로 일하는 사람들만을 사용하시는지 질문했지만, 결국 그 생각을 내려놓는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노력이나 재능에 의존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시의 결론은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것 역시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사랑을 드러내는 하나의 섬김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때로는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는 태도 자체가 하나님 앞에서 의미 있는 헌신이 된다.

우리는 흔히 영웅적인 이야기를 선호한다. 특별한 업적을 이루고 비범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이야기 말이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은 대부분 평범함 속에서 이루어진다. 만약 비범한 이야기만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의미 있는 순간들을 놓치게 된다.

이러한 관점은 예수님의 가르침에서도 발견된다. 누가복음 21장 1-4절에서 예수님은 성전 헌금함에 많은 돈을 넣는 부자들을 보신 뒤 시선을 돌려 두 렙돈을 드린 한 과부를 주목하신다. 일반적인 기준으로 보면 부자들의 헌금이 더 성공적인 이야기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히려 가장 적은 것을 드린 과부의 헌신을 주목하셨다.

이는 영웅적인 이야기에서 평범한 이야기로 시선을 옮기신 의도적인 전환이었다. 어쩌면 진정으로 위대한 헌신은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 일부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가진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는 행동일지도 모른다. 비록 그 과부의 헌금은 매우 작았지만, 그 헌신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았다. 오히려 적은 것이 더 큰 의미를 갖는 순간이었다.

이러한 가치를 알아보는 데에는 예수님의 시선이 필요하다. 누가복음 21장 1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보셨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이 놓치고 있던 이야기를 발견하셨다.

필자는 이 장면을 묵상하면서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흔히 우리가 찾고 있는 것만 보게 된다. 만약 그날 성전에 있었다면, 필자 역시 큰 헌금을 드리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두었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성공적인 결과와 눈에 띄는 성취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시선이 과부의 작은 헌신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누가복음 21장 1-4절은 하나님께서 주목하시는 이야기를 바라보라고 우리를 초대한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작지만 소중한 이야기들을 발견하라는 것이다. “단지 서서 기다리는 이들도 또한 섬긴다.”

다시 밀턴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밀턴은 1652년, 43세의 나이에 시력을 잃었다. 그는 자신의 가장 큰 재능이었던 글쓰기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하며 깊은 절망을 경험했다. 눈으로 글을 읽고 쓸 수 없다면 작가로서의 삶은 끝난 것처럼 보였다.

그의 시 「실명에 대하여」는 이러한 상실감 속에서 기록되었으며, 더 이상 자신의 재능을 사용할 수 없다는 생각 속에서도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서 위로를 발견한다. 그는 기다림 속에서도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는 믿음을 붙들었다.

놀랍게도 밀턴의 기다림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인 『실낙원(Paradise Lost)』(1667), 『복낙원(Paradise Regained)』(1671), 『삼손 아고니스트(Samson Agonistes)』(1671)는 모두 실명 이후에 쓰였다. 그는 머릿속으로 시를 구성한 뒤 주변 사람들에게 구술하여 작품을 완성했다.

그러나 밀턴의 이야기를 단순히 영웅적인 극복의 서사로만 보는 것은 또 다른 오해일 수 있다. 그는 생애 후반기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생전에 큰 영향력을 인정받지도 못했다. 그의 명성은 사후에 더욱 크게 평가되었다.

현실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질병이나 삶의 큰 변화를 경험한 이후 삶의 반경이 좁아지고, 진정한 관계가 무엇인지 발견하며, 가족과의 시간이 더욱 소중해지는 경험을 한다. 때로는 이전에는 하지 못했던 대화를 나누고, 표현하지 못했던 사랑을 고백하는 시간이 된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눈에 잘 드러나지 않지만 매우 중요하다. 때로는 가장 큰 변화가 가장 조용한 순간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글을 쓰는 시점에 다시 전쟁의 소식을 접하고 있다.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과 파괴된 삶의 모습이 반복적으로 전해지고 있다. 값비싼 무기뿐 아니라 비교적 저렴한 드론이 큰 파괴력을 발휘하는 새로운 전쟁의 양상에 대한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전쟁을 선택하지 않았지만 그 현실 속에 놓인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으며, 분노와 증오의 악순환 속으로 빠져들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우리 마음속 가장 깊은 싸움은 용서하고 다시 시작하는 길을 찾는 일이다. 심지어 적대적인 상황 속에서도 상대방을 한 인간으로 바라보는 일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써 내려가야 한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이야기를 써 내려가지 않는다면, 그 대안은 생각하기조차 어렵다.

멀리서 이 상황을 바라보는 사람들 역시 예외가 아니다. 위기의 시대 속에서도 우리는 희망을 품은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 돌파구가 열릴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용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다시 한 번 밀턴의 고백을 떠올린다: “단지 서서 기다리는 이들도 또한 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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