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칼럼 56] 한일 경술국치 5가지 조약, 영일동맹(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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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안보와 보훈(6)
제2차 영일동맹 체결을 기념하여 1905년 도쿄 미쓰코시 백화점에서 발행한 엽서 ©위키미디어

이중플레이를 한 적이 없다는 이토의 말은 거짓이었다. 러시아에서 니콜라이 2세와 람스도르프 외무장관을 먼저 만나서 협상을 벌였다. 이토의 행적을 알고 있었던 랜스다운 영국의 외무장관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러시아 파였던 이토는, 이때는 영국과 동맹을 맺는 쪽으로 돌아서 있었다. 가쓰다 다료 총리, 고무라 주타로 외상, 하야시 나다스 주영 일본대사가 추진한 영일동맹에 메이지 일본 왕이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이었다.

랜스다운 외무장관의 런던 거처가 있던 런던 도심 그린파크 근처 랜스다운 하우스는 1935년부터 프라이빗 멤버십 클럽으로 사용되고 있다. 클럽 안 라운드 룸의 벽에는 벤저민 프랭클린, 토마스 제퍼슨 등 미국 독립운동의 지도자들이 보낸 편지와 초상화가 보인다. 직원 엘리스 클레이 씨가 1782년 당시 영국 총리였던 1대 랜스다운 경이 이방에서 벤저민 프랭클린과 함께 미국과의 강화조약의 기초를 놓았다고 말했다.

1902년 1월 30일 랜스다운 하우스에서는 세계를 놀라게 할 또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 벌어졌다. 대영제국의 랜스다운 외무장관과 아시아의 작은 나라 일본의 하야시 주영공사가 동맹을 체결하는 조약에 서명한다. 일본은 당시 세계 1등 국가인 영국과 동맹을 맺음으로써 단번에 서구열강과 같은 지위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그 희생양이 조선이었다. 영일동맹은 서구열강이 일본의 조선 접수를 사실상 용인한 첫 번째 조약이었다. 또한 일본이 러시아와 전쟁을 벌일 경우 영국이 군사적 지원을 제공할 길도 열어 놓았다.

영일동맹은 1895년 시모네세키 조약에서 확보한 전리품인 요동반도를, 러시아가 주도하고 독일과 프랑스가 가세한 삼국의 간섭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일본이 절치부심 끝에 따낸 외교적 승리였다. 14,000명의 사망자를 내면서 요동반도를 점령했다가 빼앗긴 일본은 서구열강과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러나 그 방법에 대해서는 견해가 달랐다. 이토가 만주를 러시아가, 조선을 일본이 나눠 먹는다는 교환권을 내세울 때, 가쓰라와 고무라는 조선은 물론 만주도 일본이 접수하자면서 러시아를 견제하는 영국과 손을 잡자고 주장했다.

1901년 여름부터 일본 정부의 지시를 받은 하야시 주영공사는 랜스다운 하우스를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하야시의 비밀 회고록에서 일본이 러시아와 영국 사이에서 이중플레이를 한 사실을 고백했다. “일본이 러시아와 제휴할 것이라는 암시를 주면 영국은 자극을 받아서 일본과 협정체결을 하자고 할 것이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영일동맹이 조선의 운명에 미칠 영향을 주시했다. 장지연과 박은식이 이끌던 황성신문 1902년 2월 21일 자 논설은 ‘조선의 독립과 영토보전을 약속한다’는 영일동맹 전문의 사실관계에 의문을 제기했다. “일본이 조선에 대해서 독립 주권과 강토 보전의 평화 질서를 유지한다, 함은 외적으로 보면 이웃 나라의 호의에서 나온 것 같고 내적으로는 무시무시한 전략을 포함한 것과도 같으리라.”

그러나 당시 조선의 집권층은 영일동맹을 빚어낸 국제 질서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고 어떤 대책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 조선의 주권 수호외교를 도와주었던 헐버트 박사는 ‘대한제국 멸망사’에서 영일동맹을 촉진한 요인 중 하나로 대한제국의 외교정책을 지목했다. 1900년 3월 체결된 한러 거제도 비밀협약 등 조선이 급격하게 러시아로 기운 것이 영국 등 서구 열강의 경계성을 촉발했다는 것이다.

국제정치학자 이삼성 한림대 교수는 1896년 아관파천 이후 고종의 친러시아 정책이 치명적이었다고 말한다. 조선은 삼국이 간섭한 이후 만주를 중심으로, 북중국에서 세력을 확장하던 러시아는 일본뿐 아니라 영국과 미국의 경계심을 고조시키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러시아를 끌어들이고 의지한 조선의 결정은, 영국과 미국 등의 대서양 세계가 주도하는 국제 사회가 한반도에서 러시아 견제를 위한 일본의 지배권을 확장시켜주고 지원하고 승인하도록 재촉하게 된 것이다.

이범희 목사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이 힘겨루기를 하던 당시 국제 정세를 올바로 읽지 못하고 제때 힘도 기르지 못했던 조선은 세계 최강국 영국과 손을 잡고 조선을 압박하는 일본의 행보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국가안보는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는 국방력, 실전과 같은 철저한 군사훈련, 균형 잡힌 외교력으로 국제 사회의 신뢰를 잃지 않아야 한다. 안보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안보에는 여야의 이견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끝>

이범희 목사(㈔한국보훈선교단 이사장, 6.25역사기억연대 역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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