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은 웃음을 낳게 한다(창세기 21:1-6)

오피니언·칼럼
편집부 기자
press@cdaily.co.kr
이선규 목사(대림다문화센터 대표, 연합교회 담임)
이선규 목사

사람과 동물이 다른 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웃음이다. 동물에게도 기쁨과 같은 감정은 있지만 인간처럼 웃음을 표현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웃음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이다. 창세기에서 이삭을 출산한 사라는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셨다"고 고백했다. 웃음은 기쁨이 있을 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표현이다.

사람이 먼저 웃으면 주변 사람들도 함께 웃게 된다. 또한 웃음은 건강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많이 웃는 사람이 장수한다는 말도 있을 정도로 웃음은 우리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이처럼 웃음은 인간의 삶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참된 웃음을 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웃음에는 기쁨의 웃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비웃음도 존재한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백 세에 아들을 주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믿음에서 나온 웃음이 아니라 인간적인 생각에서 비롯된 의심의 웃음이었다.

하나님을 향한 비웃음은 우리 인생이 참된 웃음을 경험하지 못하게 만든다.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을 듣고 신뢰하는 자에게 참된 웃음을 허락하신다.

제1장 하나님의 말씀에서 오는 웃음

우리 인생의 웃음과 기쁨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시작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으며 그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과 소망을 가질 때 하나님께서 우리 삶 가운데 참된 웃음을 주신다.

만일 지금 우리의 삶에서 웃음이 사라졌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했거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일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잃어버린 웃음을 다시 회복하게 하는 능력이 있다.

역사가들은 나폴레옹(Napoleon)이 유럽을 초토화했을 때 그 시대를 미래 세대가 세계 역사상 가장 어두운 시기 중 하나로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바로 그 시대에 태어난 어린이들 가운데 훗날 세계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들이 있었다. 아브라함 링컨, 윌리엄 글래드스톤, 알프레드 테니슨, 펠릭스 멘델스존과 같은 인물들이 바로 그들이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가정 역시 오랜 시간 동안 어둠과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이삭의 탄생으로 그들의 삶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아브라함은 신중하고 조용한 반응을 보였지만 사라는 달랐다. 사라는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라고 고백했다(창세기 21:6).

또한 "누가 아브라함에게 사라가 자식들을 젖 먹이리라고 말하였으리요. 그러나 내가 그의 노년에 아들을 낳았도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기쁨을 표현했다(창세기 21:7).

사라는 자신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으신 하나님께 소망과 믿음을 두게 되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을 완전히 이해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시하시는 말씀을 신뢰하는 데 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때에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약속의 자손을 허락하셨다.

아브라함은 여러 번의 연약함과 위기를 겪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후손을 주심으로 자신의 신실하심을 나타내셨다. 동시에 이것은 장차 만민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갈 구속사의 중요한 시작이 되었다.

폐경을 지난 사라에게서 약속의 아들이 태어나는 기적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이로써 구속사의 중심은 아브라함에서 이삭으로 이어지게 된다.

또한 약속의 자손을 보존하고 언약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아브라함의 실수로 태어난 이스마엘이 떠나게 되는 사건이 등장한다. 이 사건은 장차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그리스도의 계보가 이어지는 과정 속에서 언약의 계승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제2장 완전하지 않았지만 믿음으로 사용된 사라

사라는 위대한 믿음의 어머니였지만 완전한 사람은 아니었다.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는 모습을 본 사라는 두 아이가 계속 함께 자라는 것이 옳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우리는 사라가 느꼈을 감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 사건을 설명하며 "그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다"라고 말했다.

결국 사라는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보내라고 요구했다. "계집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과 함께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는 말과 함께였다.

이 사건은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하갈과 이스마엘이 아니라 사라와 이삭을 통해 이어질 것임을 보여준다.

제3장 울음을 들으시고 길을 여시는 하나님

하갈은 애굽 사람으로 사라의 몸종이었다. 사라의 배려로 아브라함에게서 아이를 낳게 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위치를 잊고 교만해졌다.

결국 하갈과 이스마엘은 집에서 떠나 광야로 나가게 된다.

성경은 이 사건을 통해 인간이 받은 축복을 잘못 사용하면 결국 고통과 방황의 길로 들어설 수 있음을 보여준다.

광야에서 물과 양식이 떨어지자 하갈과 이스마엘은 큰 소리로 울었다.

그때 하나님은 그들의 울음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샘물을 발견하게 하셨다.

이 장면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울음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 인생 역시 광야와 같은 세상 속을 살아간다. 때로는 길을 잃고 방황하며 지치고 넘어지기도 한다. 영혼이 어두워지고 은혜에서 멀어지는 순간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울부짖는 자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시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양식과 물과 같다. 그러나 그것들은 언젠가 끝이 있다. 인생은 그림자처럼 지나가며 아침 안개와 뜬 구름처럼 사라진다.

혹시 아직 가죽 부대의 물이 남아 있는 것처럼 세상의 자원에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방종과 낭비, 방황과 사치로 살아온 삶을 돌아보고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께 "주여"라고 부르짖으며 간절히 기도해야 할 때이다.

오늘날 세계는 혼란 속에 들어가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때일수록 우리는 하나님 앞에 울며 기도해야 한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우는 자는 결코 헛되이 울지 않는다. 고난의 눈물 없이 영광의 면류관도 없다.

하나님은 우리의 울음을 보시고 샘물을 준비하시며 결국 우리에게 웃음을 허락하시는 분이시다.

결론: 울음 끝에 주시는 하나님의 웃음

지금 우리는 절박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때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43장 18-1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울며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는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시며 마침내 우리 삶에 참된 웃음을 허락하실 것이다.

#이선규 #기독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