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정권의 균열: 이슬람주의 시대의 전환점이 될 것인가

헤디에 미라흐마디. ©Christian Post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헤디에 미라흐마디의 기고글인 ‘이란 전쟁: 이것이 이슬람주의의 종말의 시작이 될 수 있을까?’(Iran war: Could it be the beginning of the end of Islamism?)를 3일(현지시각) 게재했다.

헤디에 미라흐마디는 20년 동안 독실한 무슬림으로서 국가 안보 분야에서 일해 왔으나, 이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능력을 경험했다. 그는 현재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 모든 민족에게 전해지도록 인터넷의 힘을 활용하는 온라인 사역 단체인 Resurrect Ministry에 전임으로 헌신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현대사에서 처음으로,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혁명 정권이 내부 붕괴나 경제 제재가 아닌, 오랫동안 “큰 사탄”과 “작은 사탄”이라 불러온 국가들과의 직접적 충돌로 인해 결정적인 타격을 입었다.

‘에픽 퓨리 작전(Operation Epic Fury)’ 중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사망은 단순히 한 정치 지도자의 제거를 넘어선다. 이는 어쩌면 훨씬 더 큰 의미를 지닐 수 있다. 곧, 전 세계 이슬람주의 체제의 구조에 처음으로 가시적인 균열이 생긴 사건일지도 모른다.

수십 년 동안 이슬람주의는 흔들림 없는 확신 속에서 확장되어 왔다. 1979년 정부를 무너뜨렸고, 혁명을 촉발했으며, 국제 기구에 영향력을 심었다. 서구 담론 속에도 활동가적 언어와 정체성 정치의 형태로 스며들었다. 그것은 자신을 ‘불가피한 역사적 흐름’으로 제시했고, 신적 예정에 따른 승리를 약속했다. 역사는 결국 이슬람적 우위로 기울 것이라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제 그 서사는 공개적으로 도전받고 있다. 이슬람주의는 종교를 정치 권력의 수단으로 활용하여 국가를 장악하고, 종교법을 강제하며, 세계 질서를 재편하려는 정치 이념이다. 이란 이슬람 공화국은 그 대표적 모델이었다. 열두 이맘 시아파 신학, 특히 ‘마흐디즘(Mahdism)’은 은둔한 이맘이 세계적 혼란과 충돌 이후 돌아와 이슬람 통치를 세운다는 교리에 기초한 신정 체제였다.

수년간 이 정권의 수사는 신학과 지정학을 결합해 왔다. 미국은 단순한 경쟁국이 아니라 “큰 사탄”이었다. 이스라엘은 단지 인접 국가가 아니라 신학적 장애물이었다. 저항은 전략이 아니라 성스러운 의무였다.

그러나 이제 신적 필연성을 주장하던 정권이 예기치 못한 현실에 직면했다. 그것은 맞설 수 있고, 억제할 수 있으며, 군사적으로 패배할 수도 있다는 현실이다.

이 순간은 전략적 의미만큼이나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이슬람주의는 ‘멈출 수 없는 추진력’이라는 인식 위에서 번성해 왔다. 그 인식에 균열이 생기면, 이념적 장악력도 약화된다. 불가피성의 신화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전 세계 수백만 이란인들은 활발한 디아스포라 공동체를 포함해 오랫동안 성직자 통치로부터의 자유를 갈망해 왔다. 이란 내부에서도 많은 이들이 종교적 획일화를 강요하는 정권에 조용히 저항해 왔다. 여성들은 히잡을 벗고 시위했고, 젊은 세대는 국가 선전을 거부했으며, 지하 교회는 성장했다. 정권의 권위는 강력했지만 결코 무적이 아니었다.

이제 전례 없는 일이 일어났다. 통치 성직 체제가 최고 수준에서 타격을 입은 것이다. 세계는 이슬람주의 통치가 책임과 결과로부터 면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목격하고 있다.

물론 이것이 곧바로 불안정을 종식시킨다는 의미는 아니다. 보복이 없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이념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서사가 바뀌었다는 점이다.

성경적 관점에서 이 순간은 조롱이 아니라 절제된 소망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성경은 교만이 패망의 선봉임을 말하며, 억압적 체제는 결국 자신의 오만함 아래에서 무너진다고 가르친다. 역사적으로 절대 권력과 신적 정당화를 결합한 제국들은 결국 균열을 겪었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단순한 군사적 사건이 아니라, 세계 질서의 재조정이 시작되는 신호일 수 있다. 오랫동안 서구 지도자들은 이슬람주의 이념을 오해하거나, 혹은 막을 수 없는 것으로 여겼다. 그러한 마비 상태는 그 영향력이 일부 영역에서 통제 없이 확장되도록 허용했다. 그러나 결정적 충돌은 심리적 지형을 바꾼다.

이제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이 순간이 자유로 향하는 전환점이 될 것인가, 아니면 끝없는 갈등의 또 다른 장이 될 것인가.

그리스도인들은 이 시간을 분명한 인식과 자비로운 마음으로 맞이해야 한다. 우리는 이슬람주의를 정치 체제로서 거부한다. 그것은 자유를 억압하고, 반대 의견을 침묵시키며, 복음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이란 국민을 위해, 이스라엘의 평화를 위해, 그리고 국제 사회가 절제된 대응을 하도록 기도한다. 파괴가 아니라 구원을, 지배가 아니라 정의를 위해 기도한다.

만약 이것이 이슬람주의 정치 권력의 약화로 이어지는 더 큰 전환의 시작이라면, 그것은 단지 한 지도자가 쓰러졌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불가피성’이라는 환상이 깨졌기 때문이다.

불가피성이 무너지면, 사람들은 자유를 상상하기 시작한다. 역사는 이전에도 방향을 바꿨다. 폭정은 무너진 적이 있다. 움직일 수 없을 것처럼 보이던 이념 체계도 진리와 용기의 무게 아래 해체되었다.

어쩌면 지금이 그런 순간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과제는 복수가 아니다. 경계와 지혜, 그리고 도덕적 명료성이다. 인간성을 잃지 않으면서 자유를 지키는 일이다. 확고히 서되 자비를 포기하지 않는 일이다.

정치적 이슬람에 기반한 정권의 몰락이 하루아침에 모든 갈등을 끝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현대사에서 처음으로, 자유 국가들이 신적 운명이라는 서사에 굴복하지 않고 이슬람주의를 결정적으로 밀어낸 순간으로 기록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세계는 이 변화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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