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완다 알거의 기고글인 ‘분명한 사실: 잇따른 스캔들 속에서 하나님께서 교회를 바로잡으시고 정화의 과정을 이끌고 계신다’(It's undeniable: God is judging and cleansing His Church amid scandals)를 25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완다는 35년 넘게 예배 인도자, 교사, 저자, 치유·상담 사역자, 강연자로 섬겨 왔다. 아홉 권의 책을 집필한 저자로서, 성도들이 성령의 능력 안에서 행하며 하나님의 말씀과 지혜를 통해 성숙해 가도록 격려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지금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는 분명하고도 중대한 정결과 교정의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은사주의 진영에서 두드러지지만, 이는 여러 교단과 사역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리고 이것이 정말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면 필자는 그렇게 믿는다. 우리는 이 과정을 받아들이고, 그 과정과 화해해야 한다.
교회 안에서 드러나는 여러 폭로와 고발의 흐름 속에서, 많은 이들이 질문과 갈등을 안고 씨름해 왔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다. 팟캐스터들과 여러 인사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각종 주장들을 제기하고 있으며, 어떤 이들은 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은 교회 안에 긴장과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필자 안에 있는 선지자적 마음은, 누구든지 예외 없이 정의와 책임을 요구하고 싶어 한다. 동시에 목회자의 마음은 교회 지도자들의 신뢰가 무너지는 현실을 애통해하며, 그것이 공동체 전체에 끼치는 상처를 깊이 염려한다. 성경적 원칙을 편파 없이 따르려는 사람으로서, 우리는 자비로우면서도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마음을 구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분의 일에 우리가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지난해, 이러한 교회의 폭로 상황을 두고 기도하던 중 성령께서 필자에게 “손을 수레에서 떼라”는 감동을 주셨다. 이는 사무엘하 6장 5–11절의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말씀이다. 웃사가 하나님의 궤가 수레에서 떨어질까 염려하여 손을 대었다가 즉시 죽임을 당한 사건이다. 처음 읽으면, 선한 의도를 가진 사람에게 너무 가혹한 처벌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한 메시지를 주고 계셨고, 그것은 오늘 우리 시대에도 절실히 필요한 교훈이다.
웃사의 의도가 어찌 되었든, 그는 이미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성물을 만지지 말라”(민수기 4:15)—를 어겼다. 그는 고귀한 일을 한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이미 ‘접근 방식’을 정해 놓으셨다. 웃사는 그 기준을 넘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언약궤가 애초에 수레에 실려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행렬 자체가 이미 모세 율법을 위반한 상태였다. 하나님은 당신의 임재의 궤를 레위인들의 어깨로만 메도록 명하셨다(역대상 15:2). 거룩하게 구별된 이들만이 그 임재를 감당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는 처음부터 분명한 기준이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말씀을 따르지 않았다.
그들이 만든 새 수레는 개인적 거룩과 헌신을 요구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이 더 효율적이고 창의적인 방식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혹은 자신들이 만든 플랫폼 위에서 더 큰 통제권을 행사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기발해 보였을지라도,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기준을 어긴 상태였다.
여기서 오늘의 교회와 분명한 평행선이 보인다. 지금 드러나고 무너지는 몇몇 ‘웃사들’은 겉으로 보기에 선한 의도와 고귀한 목적을 가졌던 인물들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하나님의 기준을 어긴 부분들이 존재한다. 많은 사역이 선한 열매를 맺어왔을지라도, 더 근본적인 죄의 문제는 반드시 다뤄져야 한다.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인간적인 방식으로 “지키려는” 시도는 더 이상 허용될 수 없다.
우리가 충격과 슬픔 속에 지도자들의 سقوط을 바라보면서도, 더 깊이 돌아보아야 할 것은 우리가 집단적으로 무너뜨린 기준이다. 이는 몇몇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교회 전체에 가르치고자 하시는 더 큰 교훈이다.
하나님의 임재는 여전히 실제적이며 강력하다. 그것은 더 이상 나무 상자에 담겨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거룩한 제사장으로 부름 받아 그분의 임재를 세상에 운반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를 이끄는 지도자들은 반드시 거룩과 의로 구별된 사람들이어야 한다.
그러나 무언가를 빨리 이루고자 하는 열심 속에서 우리는 그 요구 조건을 타협해 왔다. 편의의 수레를 만들어 왔다. 인격보다 퍼포먼스를, 성품보다 플랫폼을 강조하는 구조를 세워왔다. 성경적 정직성보다 개인적 취향과 애매한 교리에 기초한 사역과 운동을 허용해 왔다. 거룩이라는 고된 길 대신, 메시지를 효율화하고 때로는 상업화하려는 길을 택해 왔다.
처음 의도는 선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지금 우리를 멈춰 세우고 계신다.
하나님의 집에서 지도자들의 책임이 강화되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허용해 온 집단적 타협에 대한 공동체적 회개도 필요하다. 이는 누군가의 의도를 변호하는 문제가 아니며, 폭로의 기술을 세련되게 만드는 문제도 아니다. 교회 전체가 타협한 지점에 대한 교정의 문제다. 우리는 개인의 죄뿐 아니라, 교회 전반에 스며든 오류와 왜곡을 회개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물론 모든 지도자가 동일한 범주의 죄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죄를 드러내는 자들 또한 정당한 책임 아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더 큰 차원에서 하나님이 행하고 계신 일—반드시 필요한 일—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그분을 “돕는다”고 생각하면서 오히려 그분을 거스르고 있지는 않은지 경계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사도행전의 가말리엘의 조언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 사상이나 이 일이 사람에게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능히 무너뜨리지 못하리라”(행 5:38–39).
지금 이 교정의 계절에서 우리 중 누구도 통제권을 쥐고 있지 않다. 모든 전개 방식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에게서 난 것은 결국 실패할 것이다. 반대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은 우리의 개입 여부와 상관없이 이루어질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돕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오히려 그분을 대적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분노나 보복심으로 이 일을 행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분은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신다.
그러므로 교회의 지도력과 정결, 책임을 위해 기도하면서도, 필자는 동시에 자신의 연루와 책임을 돌아본다.
어쩌면 우리의 공동체적 성찰과 회개 속에서야 비로소 지속적인 변화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정결하게 하시는 목적을 온전히 이루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