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정교분리에 대한 오해와 바른 이해
오늘날 ‘정교분리’는 종종 “교회는 정치에 침묵해야 한다”, “신앙은 사적인 영역에 머물러야 한다”는 의미로 오해된다. 그러나 이것은 정교분리의 본래 정신과는 거리가 멀다. 정교분리는 신앙을 억압하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 오히려 신앙의 자유를 보호하고 국가 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장치로 탄생했다.
정교분리의 핵심은 “국가는 교회를 지배하지 말고, 교회는 국가 권력을 소유하지 말라”는 상호 경계와 책임의 원리이다. 즉, 분리는 적대가 아니라 보호이며, 차단이 아니라 역할 구분이다.
Ⅱ. 성경적 관점에서 본 정교분리
예수님의 가르침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이다. 이 말씀은 정치와 신앙을 완전히 분리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국가의 정당한 권위는 인정하되 하나님의 주권은 그 어떤 권력도 침범할 수 없다는 선언이다.
구약의 예언자 전통에서 엘리야, 이사야, 예레미야와 같은 선지자들은 왕권을 소유하지 않았지만, 왕과 국가를 향해 하나님의 공의를 선포했다. 이는 교회가 권력을 갖지 않으면서도 도덕적·영적 양심으로서 사회를 섬겨야 함을 보여준다.
따라서 성경의 정교분리는 “교회의 침묵”이 아니라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예언자적 발언”이다.
Ⅲ. 역사 속에서 형성된 정교분리의 정신
중세의 실패를 돌아보면, 중세 유럽에서 교회와 국가는 결합되었고, 그 결과 신앙은 권력화되었고 국가는 신앙을 도구화했다. 이것이 종교전쟁, 면죄부, 교권 타락으로 이어졌다.
종교개혁 이후의 반성은 정교분리를 가져왔다. 종교개혁은 단지 교리를 개혁한 사건이 아니라 “신앙과 권력의 위험한 결합”에 대한 근본적 반성이었다.
근대 정교분리의 탄생은, 특히 미국 헌법의 정교분리는 국가가 특정 종교를 강요하지 못하게 하고 교회가 국가에 예속되지 않도록 하려는 목적이었다.
그러므로 정교분리는 신앙을 약화시키려는 장치가 아니라, 오히려 신앙을 지키기 위한 울타리였다.
Ⅳ. 정교분리의 근본정신 세 가지
신앙의 자유를 지키는 원리는 국가는 종교를 보호하되 통제하지 않고, 교회는 자발적 신앙에 기초해 존재한다. 권력 남용을 막는 견제 장치가 있어야 한다. 교회가 국가 권력을 가지면 신앙은 타락하고, 국가가 교회를 지배하면 양심은 침묵한다. 각자의 소명을 온전히 수행하게 하는 질서가 있어야 한다. 국가는 정의와 질서를 책임지고, 교회는 구원과 성화, 사랑과 공의를 증언한다. 이것이 바로 질서 있는 분리, 사명 있는 공존이다.
Ⅴ. 웨슬리적 관점에서 본 정교분리
존 웨슬리는 정치 권력을 추구하지 않았지만, 노예제, 가난, 노동 착취, 사회악에 대해서는 침묵하지 않았다. 그는 말보다 삶으로 이렇게 증언했다.
“복음은 개인의 심장을 변화시키고, 변화된 심장은 사회를 바꾼다.”
웨슬리 전통에서의 정교분리는 정치 참여의 거부가 아니라, 정치 권력의 도구가 되지 않는 자유이다.
Ⅵ. 오늘 한국 사회와 교회에 주는 교훈
오늘날 교회는 두 극단의 유혹 앞에 서 있다. 정치 권력화의 유혹으로 교회가 특정 이념과 결합할 때 복음은 분열의 도구가 된다. 그러나 반대로 사회적 불의 앞에서 침묵할 때 교회는 양심을 잃는다. 정교분리의 근본정신은 권력을 갖지 않되 양심을 잃지 않는 것이고, 정치를 소유하지 않되 사회를 외면하지 않는 것이다.
Ⅶ. 결론
정교분리는 교회와 국가를 갈라놓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 서로를 살리기 위한 지혜로운 경계선이다. 교회는 복음을 순수하게 지키고 국가는 모든 시민의 자유를 보장하며, 사회는 도덕적 중심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정교분리의 근본정신은 ‘분리’가 아니라 ‘자유’이며, 침묵이 아니라 ‘책임 있는 증언’이다.
“가로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가라사대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마태복음 22장 21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요한복음 18장 36절)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로마서 13장 1절)
양기성 교수(Ph.D., Hon. Th.D.)
서울신학대학교 교회행정학 특임교수
웨슬리언교회지도자협의회 대표회장
#양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