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조급함
창세기 16장은 하나님의 약속과 인간의 선택이 충돌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이다. 이 장은 하나님의 섭리가 여전히 역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조급함과 불신으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 어떤 결과를 맞게 되는지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자녀를 얻지 못하자, 더 이상 기다리기보다 자신의 판단에 따라 상황을 해결하려 했다. 그는 여호와께서 자신에게 출산을 허락하지 않으셨다고 여기며, 자녀가 없는 현실을 하나님의 뜻으로 단정지었다.
◈사라의 선택과 가정의 갈등
사라는 여종 하갈을 남편 아브라함에게 들여보내 후손을 얻고자 했다. 아브라함은 이 제안을 받아들여 하갈과 동침하였고, 그 결과 하갈이 임신하게 된다.
그러나 이 선택은 가정에 평안을 가져오지 못했다. 하갈의 임신 이후 사라와 하갈 사이에 갈등이 생겼고, 결국 하갈은 사라의 학대를 견디지 못해 광야로 도망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인간적인 계산으로 시작된 선택이 또 다른 고통과 상처를 낳은 것이다.
◈아브라함의 실수: 기다림을 포기한 믿음
아브라함의 가장 큰 실수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는 데서 조급해졌다는 데 있다. 하나님의 약속은 더디게 보일지라도 반드시 성취된다. “주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더디게 이루시는 것 같이 생각하지 아니하시고”(베드로후서 3장 9절)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과 다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후손이 바다의 모래와 하늘의 별처럼 많아질 것이라고 약속하신 뒤, 약 12년이 흘렀다. 그 사이 아브라함은 85세가 되었고, 사라는 인간적인 기준으로 보아 출산이 불가능한 노년이 되었다. 사라는 이러한 현실을 근거로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기보다 자신의 계획을 앞세웠다.
믿음은 기다림을 포함한다. 천 년이 하루 같은 하나님 앞에서 십여 년의 세월은 결코 길지 않다. 그럼에도 사라의 제안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불신이었고, 이를 받아들인 아브라함 역시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말을 따르는 선택을 하고 말았다. 창세기 16장 2절에 기록된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는 표현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어디에서 흔들렸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문제 해결에 대한 교훈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그 과정과 결과를 하나님의 뜻 안에서 깊이 살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나님의 언약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질서와 섭리를 벗어난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 섭리를 거스르는 해결책은 결국 더 큰 문제를 낳는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동행한 지 10년이 넘은 신앙인이었지만, 그 역시 넘어질 수 있었다. 이는 영적 체험이 많고 신앙의 연륜이 깊다 해도 방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래서 성경은 늘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권면한다.
하갈은 과거 아브라함이 애굽에 내려갔을 때 데려온 여종이었다. 이전의 선택에서 비롯된 결과가 시간이 지난 뒤 또 다른 문제로 이어진 것이다. 죄와 잘못된 선택은 뿌리째 제거하지 않으면 다시 살아나 더 큰 상처를 남긴다. 결국 인간은 자신의 선택과 행동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시편 139편 7절). 죽음을 피할 수 없듯이, 회개하지 않은 죄 역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하갈의 실수와 교만
하갈 역시 실수를 범한다. 임신하게 되자 그는 교만해져 사라를 멸시하였다. 사람은 높아질수록 자신을 더욱 낮추고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하갈이 아브라함의 가문에 속하게 되었고 아이를 갖게 된 것은 전적인 은혜였다. 그것은 자신의 자격이나 신분 때문이 아니었다.
우리의 삶 또한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자신의 공로로 착각할 때, 우리는 하갈과 같은 교만에 빠질 수 있다. 그러므로 은혜를 입을수록 겸손함을 잃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하나님의 자비와 돌보심
광야로 도망친 하갈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찾아온다. 하나님께서는 그녀의 고통과 울부짖음을 이미 알고 계셨다.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문제는 죄인의 존재가 아니라, 회개하지 않는 완고한 마음이다.
샘 곁에 머물러 있던 하갈에게 나타난 천사는 하나님께서 그녀의 형편을 모두 아시고 계심을 전하며 위로의 말씀을 건넨다. 이에 하갈은 하나님을 가리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창세기 16장 13절)이라고 고백한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고통을 보고 계신다는 사실이 하갈에게 큰 위안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또한 이 확신을 가질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디에 있든 함께하시며, 우리가 겪는 모든 고통과 아픔을 아신다. 질병과 상처, 배신과 배척, 외로움과 낙심 속에서도 하나님은 감찰하시며 돌보고 계신다.
인간의 삶은 시작부터 끝까지 돌봄 속에 놓여 있다. 부모의 도움으로 시작된 인생은 결국 타인의 돌봄 속에서 마무리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스스로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사라의 불신앙으로 가정의 평화는 깨어졌지만, 하나님은 하갈을 외면하지 않으셨다. 여호와의 천사는 하갈에게 아들을 낳게 될 것이며, 그의 후손이 크게 번성할 것이라는 약속을 전한다. 하갈은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나를 돌보시는 하나님”으로 고백하며 다시 길을 얻게 된다.
◈결론: 연약함 속에서 만나는 하나님
자신의 연약함을 솔직히 인정할 때, 우리는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모든 것이 끝났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하갈을 찾아가 돌보신 하나님은 오늘도 동일하게 우리를 찾아와 돌보시는 하나님이시다.
사라의 불신으로 시작된 혼란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셨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돌이킬 때, 회복의 길은 다시 열린다. 때로는 아픔이 따르더라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그 고통은 결코 헛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