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고(故) 박완서 작가가 세상을 떠난 지 15주기가 되는 해다. 기일인 오는 22일을 앞두고 그의 단편 세계를 다시 조명하는 단편선 ‘쥬디 할머니’가 문학동네에서 출간됐다. 이번 단편집은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31인이 박완서의 단편 97편 가운데 추천한 작품을 바탕으로, 그중 10편을 엄선해 엮은 책이다.
출판사에 따르면 참여 작가들은 각자 박완서의 단편 가운데 2~3편을 추천했고, 이 추천작들을 중심으로 문학적 성취와 오늘적 의미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종 수록작을 결정했다. 삶의 구체적인 결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가족과 시대의 변화를 섬세하게 포착해온 박완서 문학의 특징을 현재의 시선에서 다시 읽을 수 있도록 구성했다는 설명이다.
◈표제작 ‘쥬디 할머니’, 가족의 애틋함을 담다
표제작 ‘쥬디 할머니’는 오 남매를 두고 혼자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할머니의 일상을 중심으로 가족 관계의 정서를 그린 작품이다. 작품 속에서 쥬디는 할머니 맏아들의 막내딸로, 할머니가 유난히 아끼고 사랑하는 손주다. 쥬디가 할머니를 만날 때 가장 반기고, 헤어질 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서러워하는 모습은 할머니의 감정과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작품에는 손주를 향한 할머니의 애정이 일상의 사소한 장면을 통해 드러난다. “쥬디 사진만은 딴 사진들처럼 한자리에 울타리가 되어 버티고 있지 않고 하루에도 몇 번씩 옮겨 다녔다”는 문장은 할머니의 마음이 머무는 곳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밤에는 침대 머리맡에, 낮에는 장식장과 전화대, 탁자와 식탁 위를 오가는 사진은 가족을 향한 그리움과 애착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이 단편에서 할머니는 쥬디를 하염없이 아끼는 동시에, 오 남매 가운데 아직 결혼하지 못한 막내아들을 걱정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1981년 발표된 이 작품은 변화하는 현대 사회 속 가족의 모습과 그 안에 남아 있는 애틋함을 담담한 문체로 비춘다.
◈대표작과 숨은 단편, 박완서 문학의 폭과 깊이
이번 단편집에는 표제작 외에도 박완서 문학을 대표하는 ‘도둑맞은 가난’,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이 함께 실렸다. 여기에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던 ‘애 보기가 쉽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틀니’ 등도 수록돼, 작가의 단편 세계가 지닌 폭과 깊이를 함께 보여준다.
출판사는 단편집 출간에 앞서 김멜라, 김연수, 정이현, 편혜영, 한강 등 소설가 5인이 추천한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전문을 홈페이지에 선공개했다. 이를 통해 박완서 문학을 처음 접하는 독자와 오랫동안 그의 작품을 읽어온 독자 모두가 자연스럽게 작품 세계로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한국문학의 큰 이름, 박완서의 문학적 궤적
박완서는 1931년 경기도 개풍에서 태어나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친절한 복희씨’ 등 다수의 작품을 발표하며 한국문학의 중요한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한국문학작가상(1980), 이상문학상(1981), 현대문학상(1993), 동인문학상(1994) 등을 수상하며 문학적 성취를 인정받았다. 2011년에는 문화훈장 가운데 최고 등급인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됐으며, 앞서 1998년 보관문화훈장, 2003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은 바 있다.
박완서 타계 15주기를 맞아 출간된 ‘쥬디 할머니’는 그의 단편 문학이 지닌 힘과 현재성을 다시 확인하게 한다. 일상의 언어로 삶과 가족, 시대의 상처를 기록해온 박완서의 작품 세계는 이번 단편선을 통해 오늘의 독자들에게도 여전히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