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포함해 전 세계 130개국 서비스를 시작하겠습니다.”
2016년 1월, 리드 헤이스팅스 당시 넷플릭스 최고경영자(CEO)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기조연설을 통해 한국 시장 진출을 공식화했을 당시만 해도, 이 발언이 국내 미디어 산업의 구조와 영상 소비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꿔 놓을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내다본 이는 많지 않았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지금, 넷플릭스는 실시간 TV 방송이 주도하던 전통적인 영상 산업 질서를 동영상 스트리밍(OTT) 중심으로 재편했다. 특정 시간과 장소에 맞춰 콘텐츠를 소비하던 방식은 월정액 기반으로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콘텐츠를 시청하는 온디맨드 소비 문화로 전환됐다.
◈‘변방 콘텐츠’에서 글로벌 주류로 도약한 K-콘텐츠
넷플릭스가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K-콘텐츠 가치의 재발견이었다. 넷플릭스의 과감한 투자와 글로벌 유통망은 한때 지역 콘텐츠로 분류되던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전 세계 메인스트림으로 끌어올렸다.
한국은 더 이상 단순한 콘텐츠 소비 시장이 아니라, 전 세계 190여 개국에 새로운 흥행 코드를 전파하는 ‘글로벌 베이스캠프’로 자리 잡았다. 넷플릭스 전 세계 유료 가입자는 3억 명을 넘어섰고, 이 가운데 60% 이상이 최소 한 편 이상의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를 시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옥자’로 시작된 대전환, 최대 투자처로 떠오른 한국
2016년 국내 진출 첫해 넷플릭스의 성과는 미미했다. 지상파 방송사들과의 콘텐츠 수급 협상이 난항을 겪었고, 국내 이용자 수도 6만~7만 명 수준에 그쳤다. 그러나 2017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를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공개하면서 흐름은 급격히 달라졌다.
‘옥자’는 극장 개봉을 둘러싼 논란 속에서도 넷플릭스 브랜드를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후 넷플릭스는 ‘범인은 바로 너!’를 시작으로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에 대한 투자를 본격화했다. 지난 10년간 넷플릭스의 K-콘텐츠 투자액은 4조 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킹덤’, ‘스위트홈’, ‘더 글로리’, ‘피지컬:100’, ‘마스크걸’, ‘흑백 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폭싹 속았수다’ 등은 해마다 글로벌 흥행작을 배출하며 K-콘텐츠의 위상을 끌어올렸다.
◈‘1인치 장벽’을 넘어 세계를 사로잡다
2021년 넷플릭스가 글로벌 톱10 집계를 시작한 이후 한국 작품은 210편 이상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한국 사극과 좀비 장르를 결합한 ‘킹덤’ 시리즈는 58개국에서 톱10에 오르며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K-콘텐츠를 글로벌 메인스트림으로 단숨에 끌어올린 대표작은 ‘오징어 게임’이었다. 이 작품은 넷플릭스 역대 최고 시청 기록을 세우며 32주 연속 글로벌 톱10에 진입했고, 이 가운데 9주간 1위를 유지했다. ‘오징어 게임’의 성공은 넷플릭스의 K-콘텐츠 투자 확대를 가속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넷플릭스는 최대 37개 언어 자막과 24개 언어 더빙을 제공하며 언어 장벽을 낮췄다. 자막과 더빙의 표준화는 자막 시청에 익숙하지 않던 서구권 시청자들의 진입 장벽을 크게 낮췄다.
◈스트리밍이 바꾼 영상 소비 방식과 제작 문법
넷플릭스의 확산은 영상 소비 패턴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본방송을 기다리던 시청 방식은 정주행 중심의 몰아보기 문화로 대체됐고, 드라마 분량 역시 기존 16부작 공식에서 벗어나 6부작, 8부작 등 보다 유연한 구성으로 변화했다.
지상파 중심의 심의 체계와 간접광고(PPL) 제약에서 벗어나면서 ‘D.P’, ‘지옥’, ‘나는 신이다’처럼 사회적 메시지가 강한 작품들이 잇따라 등장했다. 넷플릭스는 오락 플랫폼을 넘어 사회적 이슈를 제기하는 ‘이슈 메이커’로서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웹툰 IP, 글로벌로 확장된 K-콘텐츠 고속도로
넷플릭스는 국내 웹툰·웹소설 지식재산(IP)의 글로벌 확장 경로도 넓혔다. 웹툰 IP를 기반으로 한 영상화 작품들은 글로벌 흥행과 함께 원작 콘텐츠의 재조명을 이끌어내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했다.
‘스위트홈’, ‘지금 우리 학교는’ 등은 시즌제 제작으로 이어졌고, ‘중증외상센터’는 글로벌 톱10 비영어 부문 다수 국가에서 1위를 기록했다. 웹툰 원작의 상업성이 증명되면서 북미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시각도 변화했다.
◈동반자인가, 또 다른 의존인가
넷플릭스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우려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해외 플랫폼 의존도가 높아질 경우 한국 콘텐츠 산업이 단순 제작 기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지적과 함께, 지식재산권(IP) 소유 구조를 둘러싼 논쟁도 이어지고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는 플랫폼이 저작권을 보유하는 구조로, 파생 사업에서 제작사의 수익 참여가 제한된다는 문제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흥행 성과를 어떻게 공유할 것인지에 대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넷플릭스는 지난 10년간 K-콘텐츠를 세계 시장으로 이끈 핵심 동력이었지만, 그 성과를 국내 콘텐츠 생태계에 어떻게 축적할 것인지는 향후 10년을 좌우할 과제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