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대학은 각종 지표와 순위, 취업률과 재정 규모로 평가된다. 그러나 과연 대학의 진정한 가치는 숫자로만 환산될 수 있는 것일까. 이 질문 앞에서 숭실대학교의 역사는 분명한 대답을 제시한다.
숭실대학교는 1897년, 한국 최초의 4년제 대학으로 출범했다. 그 출발은 단순한 교육기관의 설립이 아니었다.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워진 기독교 정신, 그리고 민족의 미래를 향한 책임 의식이 함께 뿌리내린 기독사학이자 민족사학의 시작이었다.
숭실의 정체성은 말이 아니라 역사로 증명되었다. 정문 앞에 세워진 ‘독립유공자 88인 배출 대학’이라는 기록은 그 상징이다. 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신앙이 삶이 되고 삶이 민족을 위한 헌신으로 이어졌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이와 같은 역사 앞에서 오늘날 대학을 단순한 수치 경쟁으로 줄 세우는 상업적 논리는 오히려 빈약해 보인다.
숭실은 결코 과거의 영광에 머무르지 않았다. 최근 국내 대학 중 최초로 AI 단과대학을 설립한 것은 그 분명한 선언이다. 이는 전통을 버린 선택이 아니라, 전통이 있기에 가능한 미래로의 도약이다. 신앙과 학문 위에 쌓아 올린 대학 정신이 이제는 신기술과 융합되어 새로운 시대의 책임을 감당하려는 결단이다.
돌이켜보면 숭실은 시대마다 역할이 분명했다. 일제강점기에는 민족의 등불이었고, 오늘날에는 신앙과 학문의 중심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다가올 시대에는 인공지능과 기술 문명을 선도하면서도 인간과 사회를 성찰하는 인재를 길러내는 대학으로 나아갈 것이다.
대학은 단순한 교육 서비스 기관이 아니다. 어떤 정신 위에 세워졌고, 어떤 역사를 감당해 왔으며, 앞으로 어떤 사회적 책임을 질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숭실대학교는 숫자가 아닌 역사로, 순위가 아닌 사명으로 자신을 증명해 온 대학이다.
복음의 숭실, 애국의 숭실, 그리고 AI 시대를 준비하는 숭실. 이 대학이 대한민국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교육의 차원을 넘어 우리 사회가 여전히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묻는 살아 있는 증거다. 숭실의 역사는 끝난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진행 중인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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