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파키스탄이 최근 단행한 헌법 개정과 관련해 국제사회가 강한 우려를 표했다고 2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실(OHCHR)의 볼커 튀르크(Volker Türk) 대표는 지난 11월 28일 발표한 성명을 통해 이번 개헌이 법치주의와 인권 보호 원칙을 훼손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경고했다. 특히 종교 자유를 포함한 기본권 보장 구조가 흔들리고, 사법부의 독립성이 심각하게 침해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튀르크 대표는 파키스탄 정부가 개헌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법조계와 시민사회의 충분한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개정안을 통과시켰다고 지적했다. 그는 “권력 분립은 법치의 근간이며, 인권을 지키는 최후의 안전장치이다. 행정부나 입법부가 사법부의 판단에 영향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어 “사법부는 모든 정치적 압력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개헌은 지난 11월 13일 채택됐으며, 핵심 내용은 연방헌법재판소(FCC) 신설이다. 이에 따라 기존 대법원이 담당하던 헌법 관련 사건은 FCC로 이관되고, 대법원은 민·형사 사건에 집중하도록 구조가 재편됐다. 또한 판사 임명·승진·전보 절차도 수정됐는데, 튀르크 대표는 이 과정에서 “사법부의 구조적 독립성을 흔드는 요소가 다수 발견됐다”고 평가했다. 특히 대통령과 총리가 이미 FCC의 초대 대법관들을 임명한 사실은 정치 개입 가능성을 키웠다는 분석이다.
튀르크 대표는 “이러한 변화들은 사법부를 정치권력과 행정부의 영향력 아래 두는 결과로 이어질 위험이 있으며, 결국 법 앞의 평등과 인권 보호가 위협받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판사가 정치적 압력에서 독립되지 못하면, 법을 공정하게 적용하는 데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군과 고위 공직자에게 형사 면책을 부여한 조항 역시 논란이다. 개헌안은 대통령, 야전원수(Field Marshal), 공군 원수(Marshal of the Air Force), 해군 원수(Admiral of the Fleet) 등 일부 직위에 대해 ‘종신 면책’을 보장하는 내용을 담았다. 튀르크 대표는 “이는 군과 고위 직위에 대한 민주적 통제에 타격을 주며, 인권 체계의 핵심인 책임성을 약화한다”고 비판했다.
파키스탄 국내 인권단체들도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파키스탄인권위원회(HRCP)는 지난 11월 23일 열린 제39회 연례총회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이번 개헌이 “이미 취약한 민주 제도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아사드 이크발 부트 위원장은 27차 헌법개정안이 사법부 견제 장치를 약화시키고, 행정부 권한을 필요 이상으로 확대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HRCP는 또한 ‘공직자 종신 면책’ 조항이 극소수 권력층에 권력을 집중시키고, 의회의 우월성을 훼손한다고 지적했다. 지방정부의 권한 강화를 통해 시민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함께 제기됐다.
반면 파키스탄 정부는 개헌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있다. 정부는 “의회는 헌법 개정 권한을 법적으로 보유하고 있으며, 이번 개정은 대법원의 업무 과부하를 해소해 국민에게 더 빠르고 효율적인 사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FCC 신설이 헌법 사건 처리 지연을 줄일 것이라는 입장이다.
한편, 파키스탄은 인구의 약 96%가 무슬림이며, 종교적 소수자에 대한 제도적·사회적 압박이 꾸준히 지적되어 왔다. 국제 기독교 박해감시 단체 오픈도어스(Open Doors)가 발표한 2025년 세계감시목록(WWL)에서도 파키스탄은 기독교인으로 살기 어려운 나라 8위에 올랐다.
CDI는 유엔과 시민사회에서 이번 개헌이 향후 파키스탄의 인권 상황 전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튀르크 대표는 “이 개헌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원칙에 심각한 파장을 가져올 수 있다”며 파키스탄 정부가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개헌안을 재검토할 것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