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일러 준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살 것이며 이 성은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이름을 얻으리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이스라엘 집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다윗에게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며 내 앞에서 번제를 드리며 소제를 사르며 다른 제사를 항상 드릴 레위 사람 제사장들도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렘33:14-18)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세운 왕으로 그에게 충성 서약을 했습니다. 그러나 즉위 후 10년의 통치기간 중에는 거꾸로 친 애굽 정책을 실행했고 주변국들의 반(反) 바벨론 동맹에 동조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냉정하게 국제정세만 살펴도 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당할 것이 빤한데다 여호와의 계시까지 받았습니다. 그로선 바벨론에게 항복하라는 메시지만 시종일관 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다백성과 시드기야 왕에겐 그는 국가를 반역한 죄인이므로 시위대 뜰에 가두었습니다.
그렇게 갇혀 있는 동안 예레미야는 여호와께 두 번의 메시지를 받습니다. 유다가 멸망당하기 일 년 전쯤입니다. 먼저 그더러 아나돗에 있는 숙부의 밭을 사라고 합니다.(렘32:7) 비록 바벨론에게 항복하더라도 반드시 가나안으로 돌아와 정상생활을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백성들에게 자신의 예언을 확증하는 상징적 행위로 보여주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둘째 계시로 훨씬 먼 미래에 관한 것입니다. 다윗에게서 한 가지가 나와 정의와 공의로 이 땅을 영원히 다스리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실제 역사에서 지금껏 그 예언대로 성취된 적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남왕국 유다가 느부갓네살 왕에게 BC 586년에 멸망당한 이후로 1948년 UN의 결의로 다시 세워지기까지 한 번도 독립된 왕국으로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했어도 바벨론의 총독이, 그 후로는 페르시아, 헬라, 로마 제국의 식민지로 지냈습니다.
현재의 이스라엘도 공의와 정의가 제대로 실현되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왕국에서 왕위가 영원히 가는 법도 없습니다. 역사상 최고 오래된 제국이라 할 수 있는 로마도 약 5백 년밖에 안 되며 그나마 분열과 다툼으로 지샜습니다.
오늘날의 성경독자는 따라서 본문이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의 통치에 관한 예언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와 교회와 신자에게 임한 하나님의 통치가 본문의 예언대로 되었는지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거룩한 통치
그런데 교회사를 되돌아봐도, 오늘날 기독교가 처해 있는 상황을 봐도, 아니 당장 내 주변만 보아도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세워지는 통치는 실현되지 않고 있습니다. 아예 실종되다 못해 정반대로 치닫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본문이 눈에 보이지 않는 그분의 은밀한 영적 통치에 국한된다고 간주하자니 너무나 피부에 와 닿지 않는 애매모호한 종교적 구호가 되어버립니다. 또 주님이 재림하여 마지막 심판 때에 적용될 것이라고 하면 그 때까지의 신자들의 이 땅에서의 피폐함에 대해 하나님은 외면하는 분이 됩니다. 그럼 믿음은 필연적으로 현실을 도피하고 염세 종말주의로 흐르게 되고 그렇게 된 것도 오히려 하나님의 책임이 됩니다.
지금 현재 눈에 보이지 않는 영계(靈界)에서 성령과 사탄과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가운데 예수님이 승리한다는 뜻만도 아닙니다. 신자들의 실제 삶과는 아무 관련이 없어지기는 마찬가지가 됩니다. 그 이전에 사탄과 흑암의 세력이 삼위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닙니다. 그들도 당연히 하나님의 주권적 절대적 통치 아래 있을 뿐입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메시아의 영원한 통치는 지금 현재 이 땅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신자들의 눈에 안 보이는 것 같으나 사실은 눈에 보입니다. 또 그분의 나라도 현실에 있지 않는 것 같으나 현실에 있는 왕국입니다. 말을 괜히 어렵게 하려는 뜻은 전혀 없습니다. 기독교 특유의 역설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겨자나 누룩에 비유했습니다. 그 근본적인 뜻은 눈에 보이지 않으나 결국은 큰 열매가 맺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당신이 택하신 남은 자를 통해서 이 땅에 은밀히 또 실제로 세워지고 확장되어져 나갑니다.
눈에 안 보인다는 것은 현실의 조직이나 집단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교회가 그분의 나라라고 속단해선 안 됩니다. 마지막 날까지 교회 안에는 알곡과 쭉정이가 혼재합니다. 죄송하지만 최근에는 교회 안에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실현되기는커녕 성경의 진리나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과 상관없는 가르침조차 많습니다. 인본적인 성경해석에 목사 개인의 종교적 사상만 전해지는 곳도 있습니다.
물론 지상에선 100% 완벽한 교회가 세워지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럼에도 지금도 교회의 기본적인 소명을 최선을 다해 충성되게 수행하는 하나님의 남겨진 교회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눈에 보인다는 것은 그런 불완전한 조직체 교회와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남은 자들의 삶과 그들끼리의 모임과 사역에 하나님의 통치가 확연히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이든 밖이든, 개인이 행하든 함께 행하든 순전한 믿음을 지닌 신자들의 사이에 성령의 충만한 역사는 일어나고 선하고 아름다운 열매가 반드시 맺힙니다. 그래서 신자가 아무 말하지 않아도 불신자들이 종교적 행위나 관습이 아니라 선한 열매를 보고 예수 믿는 교인인 줄 알게 된다면 분명 예수님의 통치는 눈에 보인 것입니다.
그런 신자들은 세상을 움직이는 힘과는 전혀 다른 힘에 의해서, 세상과 다른 목표를 갖고, 세상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면 하늘에 계신 분께서 세상과 다른 열매를 맺게 해주시기에 그분의 통치는 세상 사람들의 눈에도 보이는 것입니다.
현실의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나라는 현실적인 나라가 아니지만 분명히 현실 속에 있는 왕국입니다. 말씀드린 대로 교회 조직체 같은 법적 공적 기관은 아닙니다. 그 나라의 범위와 그 백성들을 수치적으로 객관적으로 측량할 수 없고 정의내릴 수도 없습니다. 명문화된 규칙도 정기적 모임도 심지어 분명한 현실적 목표나 계획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은 저절로 기꺼이 성령의 보호와 인도를 받으며 매일매일 주님의 뜻대로 행합니다. 그들의 나라는 선명한 그림으로 그려지거나 딱 부러지는 설명이 가능하거나 손에 쥐어지지 않습니다. 다른 모든 인간이 만든 조직과 같지 않으며 그들이 이루는 과업이나 결과와도 전혀 다릅니다.
주로 이웃의 미혹된 영혼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 그들로 죄에서 깨끗케 해줍니다. 성령의 열매가 마음에 열리게 하고 그 결과 화평과 사랑으로 서로 섬기게 됩니다. 인간 사회를 주도하며 모든 일을 판별하는 기준인 물질에 의한 물리적 결과물은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당연히 교회의 양적 성장 같이 수치로 계량화가 되는 열매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현실의 왕국이라는 뜻은 현실의 신자의 실제적인 삶 안에서 하나님이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먼 훗날 재림 때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고 눈에 안 보이는 하늘의 영계의 전투도 아니며 신자 간에 혹은 불신자 사이의 영적 교감만도 아닙니다.
전 세계를 뒤집어엎을 만한 하나님의 엄청난 기적도 아닙니다. 일상에서도 눈에 띄는 거창한 일이 아니라 매일의 사소한 일에서 현실적으로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오히려 세상에선 아주 뒤쳐진 익명의 신자에 의해 수행되지만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역사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맞부딪히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현실 안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현실의 왕국입니다.
신자들은 그 일을 자의와 자력으로 행하지 않고 또 그렇게 할 수도 없습니다. 신자의 도덕성 종교성 영성 믿음으로 열심히 노력한다 해도 아주 많이 부족합니다. 오직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의 인도가 아니면 신자 혼자선 그 나라를 세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성령을 통해 동역해주어야 하고 그럼 반드시 예수 십자가의 사랑이 더 확장 실현되는 모습으로 현실 안에 열매를 맺습니다.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으나 보이는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와, 현실 왕국은 아니나 현실 왕국인 그분의 나라는 예수님이 다윗의 의로운 가지로 이 땅에 오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한 후에 성령이 믿는 자들에게 각자에게 임재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강력히 도래한 것입니다.
또 당신께서 택하신 신자들에게 성령이 내주하여 마지막 날까지 한시도 떠나지 않고 함께 해주십니다. 당연히 신자를 통해 당신의 공의와 정의는 마지막 날까지 이 땅에 실현됩니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는데 본문 18절의 말씀처럼 레위인들이 항상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만 합니다. 오늘날로 치면 목사만이 아닙니다. 일반 신자들의 눈에 보이지 않으나 현실에서 보이는 열매를 맺게 하는 순전한 섬김을 통해서 그분은 신실하게 통치하십니다.
먼저 목사들이 성경 말씀이 절대적이고 영원한 진리임을 확신하고 온전히 가르쳐져야 합니다. 예수님 십자가 구원 은혜를 정말로 순전하고도 온전하게 믿어야 합니다. 예레미야처럼 오직 말씀과 기도에 정진해야 합니다. 바울처럼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고 오직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하여 한 걸음씩 전진해야 합니다.
요컨대 신자 쪽에서 이미 도래한 하나님의 나라를 강력히 탈취해야 합니다. 다윗의 의로운 가지가 통치하는 왕국이 영원하다는 본문의 예언은 신자를 통해 이뤄집니다. 그런 신자가 단 한 명이라도 있으면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의 통치는 이 땅에 실현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실질적으로는 신자들 모두가 다윗에서 난 의로운 가지입니다. 당신은 다윗의 의로운 한 가지임을 확신합니까? 예수님께 항상 붙어 있어서 그분이 맺어주는 거룩한 생명의 열매를 수확하고 있습니까?
2018/11/3
* 이 글은 미국 남침례교단 소속 박진호 목사(인터넷 기독교 문서 사역자)가 그의 웹페이지(www.whyjesusonly.com)에 올린 것을 필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입니다. 맨 아래 숫자는 글이 박 목사의 웹페이지에 공개된 날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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