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이자 영성가로 전 세계 독자에게 깊은 영향을 끼친 유진 피터슨. 그의 저작들은 주로 설교, 목회, 성경 묵상을 다뤄왔지만, 이번에 출간된 시집 <거룩한 행운>은 그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주며 시인으로서의 감수성을 가장 순수한 형태로 담아낸 특별한 유작이다. 결혼 55주년을 맞아 아내에게 헌정한 이 책에는 피터슨이 남긴 70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 “은혜의 언어 훈련”으로서의 시
다윗의 시편을 읽으며 시의 세계로 들어섰다는 피터슨은, 시를 통해 언어의 신비와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는 시를 “은혜의 언어 훈련”이라고 불렀고, 시를 이해하려 하기보다 천천히 머물며 듣기를 권한다. 그의 시는 메시지보다 리듬을, 설명보다 묵상을 요구하는 언어다. 그래서 독자는 자연스레 시 한 편 한 편을 “읽는다”기보다 “기도하며 머문다.”
■ 3부 구성으로 만나보는 은총의 세계
시집은 세 개의 갈래로 구성된다: ▲1부 ‘거룩한 행운’은 7년에 걸쳐 완성한 팔복 연작시로, 매일의 삶이 하나님 나라를 향하도록 이끄는 내면의 영적 여정이 담겨 있다.
▲2부 ‘바스락거리는 풀’은 사소하고 평범한 사물들 속에 숨겨진 구원과 은총을 그려낸다. 일상의 먼지와 돌멩이, 바람의 떨림 같은 사소함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깊은 숨결을 포착한다.
▲3부 ‘매끄러운 돌들’은 우연히 마주친 순간들에서 영감을 얻은 기회시들로 구성되어 있다. 다윗의 ‘매끄러운 돌’처럼, 삶의 자잘한 사건들 속에서 신앙적 의미가 어떻게 반짝이며 모습을 드러내는지 보여준다.
■ 일상의 파편 속에서 반짝이는 거룩함
피터슨의 시는 화려하지 않고, 조용하며, 깊다. 그는 “평범한 것의 영광”을 탐색하고, 일상의 사소한 움직임 속에서 하나님이 남긴 흔적을 발견하는 감각을 길러준다. 그의 언어는 독자를 중심에서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고요한 중심을 향해 부드럽게 끌어당긴다.
그가 말했듯, 목사와 시인은 모두 “말의 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다. 이 시집은 그런 피터슨의 신앙적·언어적 훈련의 결정체이다.
■ 묵상과 기도의 자리로 안내하는 시
<거룩한 행운>은 빠르게 읽고 지나치는 책이 아니다. 팔복의 고요한 울림, 자연의 미세한 움직임, 일상에서 예기치 않게 다가오는 은총의 순간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어느새 묵상과 기도의 자리에 이르게 된다. 짧지만 깊은 울림을 지닌 이 시들은 신앙의 감각을 되살리고 영혼을 깨우는 ‘영성의 시(詩)’가 된다.
저자의 책들은 언제나 독자에게 “더 깊은 하나님”을 보게 했다. 이번 시집은 그가 말로 표현하던 은총의 세계를 시라는 또 다른 언어로 번역해낸 마지막 선물이다. 일상 속에 숨겨진 거룩한 의미를 발견하고 싶은 모든 이에게 이 책은 한 편 한 편이 기도이자 은총이며, 조용한 축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