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예산이 교회의 선교적 사명을 말해준다”

폴 스와미다스 박사. ©harbert.auburn.edu

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서널은 폴 스와미다스 박사의 기고글인 ‘교회가 선교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를 상기시키다’(Reminding churches to invest in their missional purpose)를 13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스와미다스 박사는 미국 앨라배마주 오번에 위치한 오번 대학교 하버트 경영대학 명예교수이자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오래전, 한 무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매우 효과적으로 소식을 전파했다.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때에 함께 있던 무리가 증언한지라 이에 무리가 예수를 맞음은 이 표적 행하심을 들었음이러라 바리새인들이 서로 말하되 볼지어다 너희 하는 일이 쓸 데 없다 보라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 하니라’” (요한복음 12:17–19). 무작위의 무리는 오늘날 스스로 예수님의 잘 알려진 명령에 순종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선교적 교회들에게 매우 높은 기준을 세워놓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8:19–20)

그렇다면, 오늘날 교회의 증언은 얼마나 효과적인가? PEW 리서치센터의 연구자료에 따르면 1990년대 이후, 수많은 미국인들이 기독교를 떠나 무신론자, 불가지론자, 혹은 ‘특정 종교 없음’이라고 정체성을 밝히는 미국 성인의 증가한 무리로 옮겨갔다. 최근 National Review의 기사 “Against the New Paganism”에서 잭 버틀러는 이렇게 주장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기독교는 공적 영역과 대중문화에서 후퇴했고, 동시에 밀려났다. 이 나라에서 한때 강력했던 기독교의 기둥들은 쇠퇴하고 있다.”

그의 의견은 옳다. 또한, 미국 남침례회 국제선교위원회(IMB, 2023)에 따르면 “오늘날 전 세계의 59%가 미전도 지역—즉 46억 명에게 예수께서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는 아직도 이루어야 할 선교 사역이 매우 많다는 뜻이다. 이 모든 사실은 선교 지향적 교회들이 어딘가 발목을 잡히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연 무엇이 발목을 잡고 있는가?

선교와 교회 예산의 역할

지난 50년 동안 미국 6개 주, 7개 복음주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필자는 교회들이 주장하는 ‘선교적 강조’가 실제로 어떻게 구현되는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몇 년 전, 한 담임목사에게 물었다. “교회 예산의 몇 퍼센트가 선교로 가나요?” 그는 “약 11% 정도입니다.”라고 답했다.

필자는 다시 물었다. “그 예산의 50%를 선교에 사용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그의 반응은 매우 격앙되어 있었다. (즉,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도 선교 예산이 그 수준에 이르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러나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그것은 교회 운영위원회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하지만 말씀드리자면, 저는 선교 예산 비중을 올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선 예산의 20%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는 진심이었다. 2023년, 이 교회의 선교 헌금과 선교 관련 지출은 전체 예산의 25%를 넘었다.

작은 교회들은 재정이 너무 적어서 예산의 절반을 선교에 쓰는 것이 비현실적일 수 있다.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미국 교회는 하나님께서 주신 풍성한 예산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그 예산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이다.

교회 예산에 대한 불편한 진실

매튜 브래노(Matthew Branaugh)는 그의 글 “How Churches Spend Their Money”에서 평균적인 교회는 전체 예산의 약 10%만을 선교(국내+해외)에 사용한다고 말한다. 또한 트로이 깁슨(Troy Gibson) 교수는 그의 비평적 블로그에서 진 베이스(Gene Veith)의 말을 인용한다: “미국 프로테스탄트 교회에 1달러가 헌금되면, 해외 선교로 가는 금액은 평균 단 2센트(2%)이다. 반면, 한국 전주의 안디옥장로교회에서는 1달러 중 70센트(70%)가 선교에 사용된다.”

필자는 국제 선교에 깊이 관여한 한 친구와 상의했다. 그는 선교 중심 교회에서 오랫동안 선교 디렉터로 일한 사람이다. 그는 “우리 교회는 전체 예산의 약 52%를 선교로 사용했습니다. 수십 년간 그렇게 해왔고, 저는 그 사역에 참여해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필자는 교회가 예산의 절반을 선교에 사용하자고 제안하는 것이 결코 비현실적이지 않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SBC Voices의 맷 스보다(Matt Svoboda)도 교회 예산의 50%를 선교에 사용하자는 제안을 한 바 있다.

교회 예산에서 '사역'과 '선교'는 다르다

어딘가에서 읽은 문장이 떠오른다. “모든 선교는 사역이지만, 모든 사역이 선교는 아니다.” 따라서 교회 예산이 수많은 사역을 지원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곧 세계를 향한 증인의 역할, 즉 선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교회 선교의 목적 중 하나는 모든 민족이 사도행전 2장 11절의 고백을 자신의 언어로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 우리가 각자의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듣는도다.” 그들은 듣기를 기다리고 있다.

기업 예산에서 배울 점

예산은 교회의 선교적 목적을 도울 수도 있고, 가로막을 수도 있다. 필자는 민간 기업에서 관리자로 일해봤고, 30년 넘게 경영학을 가르쳤다. 그래서 교회가 배워야 할 것이 기업 예산에 있다고 느낀다.

기업이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를 바꾸려 할 때 반드시 하는 일이 있다. 예산을 재배치한다. 자신들이 말하는 우선순위에 돈을 따라오게 하는 것이다. 새 우선순위에 따라 예산이 바뀌면 ▲직원 증가 ▲관련 투자 ▲목표 지출이 자동으로 뒤따른다.

마찬가지로, 교회가 선교를 최우선으로 삼는다면 예산이 그것을 가장 먼저 증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의 선교적 사명은 말뿐이다.

목회자들의 의견

몇몇 미국 목회자들에게 “교회 예산의 50%를 선교에 사용하는 것”에 대해 물었다. 한 목사는 이 아이디어를 적극 지지하며 이렇게 말했다. “교회 성도들이 ‘내가 낸 헌금의 절반이 선교로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오히려 더 기쁘게 헌금할 것입니다.” 교회는 이런 통찰을 환영해야 한다.

다른 목회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예산을 그런 방식으로 재배치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렇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모든 변화는 “어렵다”는 고백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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