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지난 2023년 파키스탄 자란왈라(Jaranwala) 지역에서 발생한 대규모 반(反)기독교 폭력 사건의 피해자들이 제기한 사법 조사 요청이 결국 기각됐다고 3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지난 10월 22일 라호르 고등법원은 사건 관련 개인 및 기독교 단체들이 제출한 모든 청원을 ‘관할권 없음’을 이유로 기각하며, 사실상 사건의 법적 진상 규명 가능성은 막을 내렸다.
판결을 내린 아심 하피즈(Asim Hafeez) 판사는 “법원이 사법위원회 구성 명령을 내릴 관할권이 없으며, 이미 합동수사단(JIT)이 수사 보고서를 제출한 상황에서 별도의 조사위원회 구성은 중복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새로운 사법위원회가 꾸려질 경우 기존 조사결과를 불신하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 측 변호인단은 1969년 제정된 ‘펀자브 조사위원회 조례(Tribunals of Inquiry Ordinance)’ 제3조에 따라 사법위원회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조사기구 구성이 가능하며, 합동수사단의 보고서가 이미 제출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해당 보고서는 아직까지도 공개되지 않았다.
2023년 8월 16일 발생한 자란왈라 폭력 사태는 두 명의 기독교인이 꾸란을 훼손하고 이슬람 예언자를 모독했다는 거짓 소문이 퍼지면서 촉발됐다. 이로 인해 수십 개 교회와 수백 채의 기독교인 가정이 공격받았고, 수천 명의 주민이 피난을 떠나야 했다. 사건 이후 펀자브 임시정부는 8월 24일 10개의 합동수사단을 구성해 사건의 원인과 대응 실패를 조사한다고 발표했으나, 이후 보고 내용은 비공개로 남았다.
법원은 또, 청구인 측 변호인들이 합동수사단의 구성 절차가 불법적이라는 점을 입증하지 못했으며, 기존 법률의 범위를 어떻게 위반했는지도 설명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판결문은 “청구인들이 경찰의 공모 의혹에 대해 형사소송법 22-A 및 22-B 조항에 따라 별도의 법적 절차를 진행했는지 여부가 명확하지 않다”며 “이용 가능한 구제 절차를 왜 사용하지 않았는지 설명이 없다”고 명시했다.
한 베테랑 기독교인 변호사는 익명을 전제로 “청구인 측이 헌법이 보장한 종교 소수자의 기본권을 법정에서 충분히 해석하고 주장하지 못한 것이 결정적 실수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예배당 파괴와 성경 훼손은 헌법상 보호받는 신앙의 자유를 명백히 침해한 사안으로, 1969년 조례에 따라 사법적 조사가 반드시 필요했으나 변론이 부족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정부가 합동수사단이 이미 수사 중이라며 별도 사법 조사를 거부할 때, 청구인 측은 ‘형사사건 수사’가 아니라 ‘사건의 구조적 원인과 정부 대응 실패’를 다루는 별도의 사법조사를 요구하는 것임을 명확히 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 사건은 2년간 법원에 계류되었으나, 실질적인 심리나 청문이 거의 진행되지 않았다. 그는 “기독교 단체들이 사건을 장기적으로 추적하거나 여론 압박을 가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것도 패인”이라고 말했다. 일부 인권단체에 따르면, 일부 기독교 단체들은 외국 후원자들로부터 수십만 달러의 지원금을 받았음에도 재판 지원이나 피해자 변호에 제대로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Amnesty International)에 따르면, 당시 폭력 사태와 관련된 피의자 5,213명 중 380명만이 체포됐으며, 나머지 4,833명은 여전히 자유 상태다. 체포된 이들 중 228명은 보석으로 석방됐고, 77명은 증거 불충분으로 기소가 취하됐다. 남아시아 담당 부국장 바부 람 판트(Babu Ram Pant)는 “정부의 미흡한 수사와 기소로 인해 가해자들이 사실상 면책을 누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번 폭력의 원인이 된 두 명의 기독교인 형제는 이후 반테러법원(ATC)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은 사건이 개인적 불화로 인한 ‘날조된 신성모독 혐의’였음을 인정했다. 파키스탄은 여전히 세계에서 기독교인이 살기 가장 어려운 나라 중 하나로, 오픈도어스(Open Doors)의 2025 세계 박해지수에서 8위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