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기독청년, 신분증 종교 표기 정정 소송서 승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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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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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월 간의 법정 다툼 끝에 ‘무슬림’으로 잘못 표기된 신분증 수정 명령…종교 자유 침해 현실 드러내
변호사 라자르 알라 라카(왼쪽)와 라훌 마시(오른쪽)는 이름과 종교(기독교) 자신의 종교가 잘못 기재된 국가 신분증을 바로잡기 위해 7개월간 법정 투쟁을 벌인 끝에 승소했다. ©Christian Daily International-Morning Star News

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파키스탄에서 한 기독교 청년이 자신의 종교가 잘못 기재된 국가 신분증을 바로잡기 위해 7개월간 법정 투쟁을 벌인 끝에 승소했다고 28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이번 판결은 파키스탄 내 소수 종교 공동체가 겪는 구조적 차별과 법적 제약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바하왈푸르 민사법원 아남 유니스(Anam Younis) 판사는 지난 17일 파키스탄 국립데이터등록청(NADRA)에 라훌 마시(Rahul Masih)의 신분증을 올바른 이름과 기독교 신앙으로 수정해 새로 발급하라고 명령했다.

라자르 알라 라카(Lazar Allah Rakha) 변호사는 “마시의 첫 신분증은 2022년 6월에 발급됐고, 이름과 종교가 모두 정확히 표기돼 있었다”며 “하지만 분실 후 재발급을 신청했을 때 NADRA가 그를 ‘수피안 알리(Sufyan Ali)’라는 이름의 무슬림으로 등록해 발급했다”고 밝혔다.

마시는 NADRA 사무소를 여러 차례 방문했지만, 담당자들은 수정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그는 국제 인권법 단체 ADF 인터내셔널(ADF International)의 지원을 받아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법정 공방 중 NADRA 측은 “마시가 자발적으로 이슬람으로 개종해 무슬림으로 등록했다”고 주장했지만, 이를 입증할 어떠한 문서도 제시하지 못했다. 법원은 “피고 측이 원고의 주장을 반박할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며 NADRA에 수정 발급을 명령했다.

재판 과정에서 마시는 세례증명서와 학교 서류를 제출했고, 부모 역시 법정에 출석해 아들이 평생 기독교 신앙을 지켜왔다고 증언했다. 그는 “나는 한 번도 무슬림이었던 적이 없으며, 늘 기독교인으로 살아왔다. NADRA 직원들이 나더러 스스로 종교를 바꿨다고 했을 때 너무 놀랐다”고 말했다.

CDI는 파키스탄에서 무슬림으로 등록된 사람의 종교 표기를 바꾸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행정 당국과 법원은 오직 ‘오류가 명백히 입증된 경우’나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경우’에만 종교 변경을 허용한다. 이 때문에 많은 소수 종교 신자들이 고된 법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

라카 변호사는 “잘못된 등록은 단순 행정 착오가 아니라 심각한 사회적·법적 불이익을 초래한다”며 “무슬림으로 잘못 분류된 소수 종교인은 공무원 채용이나 대학 입학에서 할당제 혜택을 받을 수 없고, 신분 노출 시 오히려 박해의 위험에 노출된다”고 설명했다.

파키스탄 정부는 공공부문 일자리에서 약 5%를 종교 소수자에게 배정하고 있지만, 신분증 상 종교 정보가 잘못 입력되면 이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라카 변호사는 “채용 시스템은 NADRA 데이터에 의존하기 때문에, 기독교인이 잘못 무슬림으로 등록되면 자동으로 탈락 처리된다”고 말했다.

또한 펀자브주 등 일부 지방정부는 대학 입시에서 소수 종교 학생에게 2%의 별도 정원을 두고 있으나, 종교 표기가 잘못된 학생은 해당 자격을 증명할 수 없어 입학이 제한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같은 행정 오류가 누적되면 소수자 전형의 좌석이 비어 있는 것처럼 보고되어 결국 제도의 의미가 퇴색된다”고 했다.

종교 표기 오류는 신분증뿐 아니라 여권, 가족관계증명서, 학교 성적표, 결혼·상속 관련 법적 절차에도 영향을 미친다. 라카 변호사는 “파키스탄의 개인법은 종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잘못된 종교 표기는 혼인이나 상속권 인정에도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고 말했다.

그는 또 “만약 소수 종교인이 신분상 무슬림으로 분류될 경우, 그들은 종교적 소수자 지위를 잃게 되고, 실제 신앙이 알려지면 배신자나 배교자로 비난받을 위험에 처한다”고 우려했다. 파키스탄에서 배교는 이슬람 율법상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로 간주되며, 실제로 신성모독법 295-A조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형이 선고될 수 있다.

라카 변호사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가 NADRA의 종교 표기 수정 절차를 투명하고 안전하게 개혁해야 한다”며 “종교 정정 신청자를 보호하는 법적 장치와 신변 안전 보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국제 기독교 박해 감시단체 오픈도어(Open Doors)는 2025년 세계 기독교 박해지수에서 파키스탄을 기독교인이 살기 가장 어려운 나라 8위로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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