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이번 주 미국과 중국 정상회담을 앞둔 가운데,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한국이 미중 무역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외교적·경제적 압박을 동시에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한국이 오랫동안 유지해온 ‘안미경중(安美經中)’ 전략이 한계에 직면했으며, 서울이 양국 사이에서 복잡한 외교적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분석했다.
NYT는 27일(현지 시간) “미국과 중국 사이에 갇힌 한국, 무역 전쟁 압박을 느끼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미중 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한국이 전략적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기술, 반도체, 안보 등 주요 산업 분야로 갈등이 확산되면서 한국이 양국 모두와 균형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고 지적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8월 백악관 회담에서 “한국이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는 구조를 더 이상 지속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NYT는 이 발언이 ‘안미경중’ 기조가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라고 평가했다.
신문은 또 한국이 미중 간 무역 전쟁의 직접적인 여파를 체감하고 있으며, 특히 중국의 보복성 조치로 인해 피해를 입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중국 상무부가 한화오션의 미국 자회사 5곳을 제재 대상에 포함시킨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로 꼽혔다.
한국과 미국이 조선업 분야 투자를 논의하던 시점에, 중국 공산당 기관지 글로벌타임스는 7월 사설을 통해 “지정학이 경제 원리를 뒤집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은 고위험 도박”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다른 사설에서는 “한국 로고가 붙은 선박이 미군의 군사 행동에 연루될 경우 잠재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한국을 직접 겨냥한 비판을 이어갔다.
앤드루 여 브루킹스연구소 동아시아정책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한화오션 제재는 한국에게 경각심을 일으킨 사건이며, 예상치 못한 압박 포인트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외교적 유연성과 전략적 판단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NYT는 또한 윤석열 전 대통령 시절부터 한국이 경제적 중심축을 미국으로 옮겨가고 있었다고 전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반도체 기업이 미국 내 공장을 설립하고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며 양국 간 경제 협력을 강화했지만,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3,500억 달러(약 500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현금으로 집행하라고 요구한 점도 언급됐다. NYT는 “한국이 막대한 투자 약속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행정부의 호의를 얻지 못하고 있다”며 “경제 협력이 반드시 정치적 우호로 이어지지 않는 냉정한 현실을 깨닫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신문은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 미중 경쟁의 여파로 장기적 위협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기술 격차를 빠르게 좁히고 있어, 한국의 기술 우위가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박준 정치경제학 박사는 “중국이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를 따라잡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이재명 대통령은 29일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이어 다음 달 1일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어, 한국 외교가 미중 사이에서 어떤 균형점을 찾아낼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