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뜻하지 않는 장애물이 힘들게 하는 때가 있다. 잘 믿어보려고 애쓰는데, 순조로운 일들만 생기면 몰라도 막히는 일들이 생겨나면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깨어질 수 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지극히 선하신 분이심을 언제나 믿고 신뢰해야 한다.
하나님은 홍해를 없애지 않으셨다. 그분은 그것을 갈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육지같이 건너가게 하셨다. 홍해를 가르지 않고 편안하고 안전한 육지 길로 인도하시면 되지, 어째서 그 험한 바다를 갈라 그리로 건너가게 하셨을까?
하나님이 우리보다 머리가 나쁘시고 생각이 모자라서 그러셨을까? 아니다. 홍해라는 길은 이스라엘 백성만을 위한 길이 아니었음에 유의하라. 홍해는 뒤따라오는 애굽 군대를 몰살시키기 위한 길이기도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구원의 길이요, 애굽 군대에게는 심판의 길이었단 말이다.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의 바람이나 예상과는 달리 장애물처럼 보이는 것을 제거하지 않고 통과하게 하실 수도 있다. 하나님은 언제나 가장 정확한 때에 가장 정확한 방법으로 일하신다. 우리가 보기에 늦어 보이고 어리석어 보여도 말이다.
가룟 유다는 은 30개(30세겔)에 예수님을 팔았다. 그가 예수님을 판 일이 오늘 우리에게는 구원의 길이었지만, 가룟 유다 자신에게는 죄악으로 인한 심판의 길이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22:22에서 “인자는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가룟 유다)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라고 말씀하셨다. 똑같은 사건이지만,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의 길이 되었고, 유다에게는 심판의 길이 되었다.
미국의 제22대와 24대 대통령이었던 그로버 클리브랜드(Grover Cleveland)의 얘기가 있다. 그는 젊은 시절 가난한 청년으로 법률 사무소의 서기로 일하며 ‘조지’라는 한 친구와 가까이 지냈다.
어느 날, 두 청년은 함께 길을 걷다가 술을 마시고 도박을 하러 술집으로 가기로 했다. 두 친구가 어깨동무를 하고 술집으로 향하던 중 갑자기 클리브랜드가 가던 길을 멈춰섰다. 이유는 그의 눈앞에 교회 정문에 붙어 있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라는 성구가 보였기 때문이다.
그 내용을 본 클리브랜드는 친구에게 “아무래도 오늘은 교회에 가야할 거 같아. 우리 같이 교회에 들어가자!”라고 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성경 구절이 그의 가슴을 후벼팠던 것이다. 하지만 친구는 “너 미쳤냐? 교회는 무슨 교회? 오늘은 술집에 가고 교회는 다음에 가자!” “안돼. 오늘 꼭 교회에 가야 해!” 그는 친구의 권유를 단호히 거절하고 교회로 향했다.
그날, 두 사람의 길은 완전히 달라졌다. 성구 하나가 두 사람의 일생과 영원을 갈라놓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클리브랜드는 신앙 안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며 변호사, 버펄로 시장, 뉴욕 주지사를 거쳐 마침내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반면 그의 친구는 술자리에서 싸움에 말려들어 살인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수의 신세로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클리브랜드가 미국의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친구 죄수의 감옥에도 신문이 한 장 떨어졌다. “클리브랜드, 제22대 대통령 당선!” 신문을 받아 든 죄수는 거기 나온 사진을 보고 바람벽을 쾅쾅 치면서 울부짖었다.
“클리브랜드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그는 내 친구였어… 그날 내가 그와 함께 교회에 갔다면, 나도 지금 이 감옥에 있지 않았을 텐데!”
‘후회해봤자 때는 늦으리!’이다. ‘홍해’나 ‘은 30개’나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성구’나 모두가 장애물이나 유혹이나 가슴을 찌르는 부정적인 도구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이에게는 장애물이 아니라 구원과 축복의 도구임을 알고 기쁘게 여겨야 한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다. 때문에 매사에 그런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고 따르기만 한다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란 열매로 나타날 줄 확신하면서 남은 생을 잘 살았으면 좋겠다.
#신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