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잭 사라 목사의 기고글인 ‘중동에서 기독교인들이 오직 이스라엘에서만 번영하고 있다는 것은 신화에 불과하다’(It is a myth that in the Middle East Christians are only thriving in Israel)를 지난 30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사라 목사는 베들레헴 성경 대학의 총장으로 섬기고 있다. 복음주의 연합 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으며 교회 지도부와 함께 감독 역할을 맡고 있다. 또한, 중동 및 북아프리카를 위한 세계 복음주의 연합의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이스라엘 대통령 네타냐후가 최근 “이스라엘이 중동에서 기독교가 번영하는 유일한 성소”라고 주장한 것은, 분명하고 정직하며 예언자적인 응답이 요구되는 주장이다.
성경적 신앙을 가진 지도자로서, 또한 성지에 뿌리를 둔 토착민으로서 필자는 이 땅과의 역사적 연결성을 소중히 여기지만, 그러한 신학적 애정이 오늘날 현장에서 벌어지는 복잡성과, 더 심각하게는 커져가는 불의에 눈을 가리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현대 이스라엘이 유일한 피난처라는 이야기는 단순히 불완전한 것이 아니라, 자국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심각한 현실을 가리고 있으며, 인근 국가들에서 끈질기게 버티며 살아가고 있는 형제자매들의 신앙적 회복력을 무시하는 것이다.
검증 가능한 간단한 진실은 이렇다. 중대한 어려움 속에서도 중동 여러 나라의 기독교 공동체들은 단순히 생존하는 수준이 아니라, 수천 년의 뿌리를 간직하며 여전히 깊은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보면 이렇다:
이집트: 콥트 정교회 공동체는 수백만 명에 이르며, 이는 중동에서 가장 큰 기독교 공동체다. 여기에 수십만 명의 개신교인, 복음주의자, 가톨릭 신자들이 함께하고 있다. 보안과 사회적 도전에 직면해 있지만, 그들은 이집트 사회와 문화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남아 있다. 그들의 규모와 역사적 뿌리는 활발한 공동체적 삶의 증거다.
레바논: 인구의 상당 비율이 기독교인으로, 대통령직을 비롯해 헌법적으로 보장된 정치 권력을 갖고 있다. 이 나라의 어려움은 종교적 탄압이 아니라 경제적·정치적 위기 때문이다. 마론파, 정교회, 개신교, 복음주의 전통 모두 활발히 살아 있고, 국가 정체성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현직 대통령 또한 기독교인이다.
요르단: 기독교인은 인구의 약 4%로 추정되며, 의회 내 전용 의석도 있다. 사회, 교육,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국가 안정의 중요한 요소로 여겨지고 있다.
이렇듯 수백만 기독교인들이 고대 교회, 광범위한 교육기관, 깊은 문화적 영향력을 통해 여전히 활발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구의 약 2%에 불과한 이스라엘 기독교 공동체만이 번영한다는 주장은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이는 서구, 특히 복음주의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수사적 장치이지, 지역 기독교 현실을 반영하는 진실이 아니다.
이스라엘 내부의 불편한 현실
이스라엘과 그가 통제하는 팔레스타인 영토 내 기독교 공동체의 상황을 들여다보면, 더욱 긴급한 진실이 드러난다. 기독교 성직자, 교회, 재산에 대한 위협, 괴롭힘, 훼손 사례가 문서로 기록될 만큼 심각하게 증가하고 있다.
▲성직자들에 대한 신체적·언어적 공격 증가 ▲기독교 성지에 대한 광범위한 훼손과 모독 ▲극단주의 집단의 조직적 압박으로 기독교 공동체를 예루살렘과 성지에서 몰아내려 한다는 우려 ▲교회 재정 압박(지방세 부과, 은행 계좌 동결)으로 기관 존속 위협
이러한 상황은 심지어 유대인 단체들조차 우려를 표명하며 정부의 대응을 촉구할 정도다. 기독교 신앙이 시작된 땅에서 그 토착 신자들이 점점 더 적대적 환경에 내몰리는 것은 비극적 아이러니다.
복음주의자들의 딜레마
복음주의자들의 이스라엘 지지에는 오랫동안 문제점이 있었다. 종말론적 해석에 집착한 무조건적 지지는 이스라엘 국가에 외교적·재정적 동맥을 제공했지만, 정작 이 땅에 수 세대 살아온 토착 복음주의자들은 인정받지 못했다.
이스라엘은 역사적 정교회와 가톨릭을 중심으로 10개 교파를 공식 인정하지만, 복음주의는 종교단체로 인정하지 않는다. 교회, 학교, 병원, 선교단체들은 비영리 단체(아무타)로 등록해야 하고, 이는 종교적 지위와 권리를 빼앗는 차별이다. 이는 이스라엘이 전 세계 복음주의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당신들은 유용하지만 동등하지 않다. 정치적 동맹은 될 수 있으나, 이 땅의 합법적 신앙 공동체로는 받아들일 수 없다.”
예언자적 증언의 필요성
이제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무비판적 이스라엘 지지를 넘어서야 할 때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답게 정의와 진리를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
빈말을 멈추라: 무조건적 지지는 평등을 가져오지 못했다.
책임을 요구하라: 정부가 기독교인과 교회를 보호하지 않는 현실을 지적해야 한다.
모두를 위하라: 유대인을 향한 사랑은 팔레스타인 기독교인과 무슬림을 향한 연대와 정의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예레미야 22장 3절, 이사야 1장 17절이 말하듯, 억압받는 자를 구하고 고아와 과부를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이다.
결론
“이스라엘만이 기독교가 번영하는 유일한 곳”이라는 주장은 자기 합리화에 불과하다. 성지의 교회가 공격받고, 복음주의가 인정받지 못하며, 비유대인이 차별받는 한, 이 신화는 복음주의 공동체가 반드시 도전하고 해체해야 할 허구다. 우리의 신앙은 진리를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