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개신교 신학은 성경에 절대적 권위를 부여하였다. 종교개혁자들은 성경보다 교회와 그 전통을 우선시한 가톨릭에 대항하여 ‘오직 성경’을 외쳤다. WCC의 초기 성경관을 보여주는 몬트리올 보고서에서도 전통적인 성경관에 대하여 “개신교의 입장은 오직 성경 그 자체에만(Holy Scripture alone)의존해 왔다. 성경은 구원과 관련된 모든 문제에 대해 무오하며 충만한 권위를 가지는 것이며, 모든 인간의 전통들은 그것 아래 복종케 하는 것이다.” 라고 정리하고 있다.
하지만 에큐메니칼 진영은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점점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나가는 경향을 보여준다. 에큐메니칼 진영은 전통적인 개신교 성경관을 기술한 후 바로 이어 “여러 가지 이유로 이제 이런 입장들을 재고하는 것이 필요하게 되었다.”라고 말한다. 또한 “하나의 경전 안에서 서로 다른 전통들이 발견된다. 각각이 동일한 복음을 증거하지만 그 어느 하나도 그 자체로 복음의 완전한 풍부함을 보여주지 못한다.”라고 말하면서 성경이 그 자체로 복음의 풍부함을 보여주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견해를 보인다.
WCC가 발행한 『에큐메니칼 운동에 있어서 성경의 권위와 해석』의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서술되어 있다. “해석학을 다루고 있는 매우 특수한 제1부에서 제시되어진 합의사항은 지배적으로 성경이 인간의 저술들의 묶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성경의 권위는 더이상 단순하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라고 말한다. 또한 “... 성경의 권위는 성경 그 자체에 속한 어떤 고정된 성질의 것이 아니다. 성경의 권위는 하나의 ‘상관적인 개념’(relational concept)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에큐메니칼 진영은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을 받아 성경을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계시라는 관점보다는 인간의 저술이라는 관점에 더 많이 기울어져 있다. 이러한 관점 때문에 성경 그 자체의 권위를 고정되고 절대적인 것으로 보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전통적인 성경관과 달리 성경에 그다지 큰 무게를 주지 않는 경향이 있으며 이에 대하여 “그러므로 에큐메니칼 성명서들이 가끔씩 공공연하게 성경적인 기초가 부족하다고 비판받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에큐메니칼 진영이 성경에 그다지 큰 권위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비평에 크게 문제의식을 느끼지도 않는다. WCC는 성경과 교회의 전통을 동등하게 보거나 전통의 한 산물로 성경을 보는 입장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또 어떤 이들은 성경이 오히려 교회 내부에서 생명을 계속 이어 온 동일한 전통(대문자 T - 역자 주)의 산물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성경은 이 전통의 언어적 표현이기 때문에 진리를 완벽하게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성경 이외에도 성례전, 신조, 성경으로부터 간접적으로 파생된 기독교적 사고와 문화적 가치들로 표현되는 일반적인 기독교적 전통의 맥락 안에서 읽혀질 필요가 있다.”
위의 입장이 에큐메니칼 진영의 성경관을 잘 설명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에큐메니칼 진영은 성경의 권위를 전통과 같거나 그보다 낮은 것으로 보면서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양보하는 경향을 지닌다. 이에 대하여 최덕성은 “...WCC는 종교개혁신학의 정박지인 ‘오직 성경’ 원리‘와 ‘성경이 성경을 해석한다’ 는 종교개혁 해석방법을 버린다. 반면에 다양한 교회 전통들을 성경해석의 규준으로 삼는다.”고 분석한다. 이와 같은 문제와 연관하여 김균진은 “만일 성서가 교회의 모든 전통에 대한 그의 규범성을 상실하고 전통으로부터 구분되지 않는다면, 교회는 그 자신을 비판할 수 있는 규범을 갖지 않을 것이며 자기 독백으로 빠질 것이다.” 라고 말하였고, “... 교회의 모든 전통은 이 정경에 의하여 그 타당성 여부를 검증받아야 한다. 교회의 권위가 정경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경이 그 자신의 힘을 통하여 자기를 정경으로 만든다.”고 말한다.
※ 좀 더 자세한 내용과 각주 등은 아래의 책에 나와 있다.
안승오 교수(영남신대)
성결대학교를 졸업하고 장로회신학대학원(M.Div)에서 수학한 후, 미국 풀러신학대학원에서 선교학으로 신학석사(Th.M) 학위와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총회 파송으로 필리핀에서 선교 사역을 했으며, 풀러신학대학원 객원교수, Journal of Asian Mission 편집위원, 한국로잔 연구교수회장, 영남신학대학교 대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선교와 신학』 및 『복음과 선교』 편집위원, 지구촌선교연구원 원장, 영남신학대학교 선교신학 교수 등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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