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호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은 세계 강제실종 희생자의 날을 맞아 강제실종으로부터 모든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를 신속히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제사회가 채택한 강제실종방지협약의 취지에 부합하는 국내 법과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안 위원장은 28일 발표한 성명에서 “강제실종방지협약에 맞는 제도를 구축하고 이를 이행할 법률을 제정해 6·25 전쟁 전후 납북자, 국군포로, 북한 억류자, 불법 국제입양 사건 등 강제실종 피해의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 구제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 권리 보장과 가해자 처벌, 재발 방지를 위한 예방 조치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반도의 특수한 상황을 언급하며 “우리나라는 강제실종 피해자와 그 가족의 인권 보장을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세계 강제실종 희생자의 날을 계기로 정부가 강제실종 근절을 위해 노력의 강도를 높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안 위원장은 강제실종이 대부분 국가기관이나 권력기관의 개입으로 발생해 진실이 은폐되고 가해자가 처벌받지 않는 구조적 불처벌 관행이 고착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강제실종은 단순히 사람이 사라지는 사건이 아니라 실종자의 행방이 확인될 때까지 이어지는 현재진행형 인권침해”라며 “실종자의 생명권과 자유가 침해될 뿐 아니라 가족들은 불안과 고통, 사회적 낙인으로 인해 삶이 정지되는 복합적 피해를 겪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강제실종으로 인한 피해는 시간이 지날수록 누적돼 피해 가족에게 정서적, 경제적, 법적 어려움이 지속적으로 가해지고 있다”며 “이 같은 고통은 치유되지 못한 채 반복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달에도 국회의장에게 강제실종을 예방하고 진상규명, 피해자 지원, 책임자 처벌을 위한 법률 제정의 필요성을 공식적으로 전달했다.
유엔은 2010년 8월 30일을 세계 강제실종 희생자의 날로 지정하며 강제실종 범죄 예방과 피해자 권리 보장을 강조했다. 같은 해 발효된 강제실종방지협약은 강제실종을 ‘국가 범죄’로 규정하고 국제적 의무 이행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은 2022년 협약을 비준했으며 이듬해 국내에서 발효됐다. 협약 당사국으로서 한국은 강제실종 범죄를 예방하고 처벌하며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입법과 제도 마련 의무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제21대 국회에서 발의된 관련 법안은 임기 만료로 폐기됐고, 현재 제22대 국회에서 다시 두 건의 법안이 발의돼 심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