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독일보는 김철홍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신약학)가 최근 서울 서현교회 교육관에서 열린 한국교회사학연구원 제316회 월례세미나에서 ‘우남 이승만의 기독교 개종과 기독교가 그의 정치사상에 준 영향’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논문을 연재했습니다.
3) 우남의 자유인의 개념
“대저 예수께서 세상에 내려 오셔서 … 우리가 가장 감격히 여길 바는 모든 세상 사람의 결박을 다 풀어 놓으신 것이라. 첫째 율법의 결박을 풀어주심이니 … 사람의 생각이 자유롭지 못한 것을 낱낱이 벽파하여 주셨나니 … 예수교가 가는 곳 마다 변혁의 주의가 자라난 법이다. 교회로 말 할진데 마틴 루터씨가 교를 고칠 때에 이 뜻을 들어 내었고 정치상으로 말 할진데 워싱턴 씨가 미국을 독립할 때 이 뜻을 들어 내었으며 …”
『독립정신』의 “미국 독립의 역사”란 제목의 글에서 우남은 “노예 대접을 달게 받는 사람은 곧 자신의 권리를 잃어버린 사람”이라고 말하고, “우리는 그런 권리를 무시하고 생명만을 부지하기 위해 노예처럼 사는 것에 만족하겠는가?”라고 묻는다. 그 권리가 무엇일까? 바로 다음 글인 “미국 독립선언문”에 나오는 ‘창조주가 주신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 즉 생명과 자유와 행복 추구의 권리다. 우남은 옥중에 있을 때에 이미 바울의 자유인의 개념을 알고 있었고, 그것이 종교개혁을 통해 부활했으며, 그 결과 시민혁명이 일어났다는 이해에 이미 도달해 있었다.
우남이 1913년에 쓴 『한국교회핍박』에서 그는 기독교 정치사상가로서 더욱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준다. 우남은 예수가 유대교의 부조리들을 일제히 혁신하고 모든 악한 자들로 하여금 죄악을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오게 한 점에 주목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우리의 영혼적인 관계는 물론하고, 정치적 관계로만 볼지라도 지나간 옛날에 처음 되는 ‘혁명 주창자’이다” 우남은 예수가 우리 영혼의 구원자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예수의 가르침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유를 누리는 정치 제도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 요소를 갖고 있으므로, 그런 의미에서 예수는 시민 혁명의 주창자라고 보았다. 예수가 정치 혁명을 목표로 하지 않고, 영혼의 구원을 목표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가르침은 필연적으로 후대에 자유민주주의를 이룩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한다고 본 것이다. 예수와 서양 근대 사이에는 긴 시간적 간격이 있지만, 우남은 신약성경이 서양역사와 예수의 가르침을 이어준다고 보았다.
“(예수가)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의 동등자녀 되는 이치와 … 모든 죄악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게 활동하는 이치를 다 밝히 가르쳤으니 신약을 공부하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혁명사상을 얻는 것은 과연 그 책이 진리를 가르치며 진리는 사람의 마음을 자유롭게 하기 때문이다”
훗날에 일어날 시민혁명의 씨앗이 ‘자유’에 관한 예수와 신약성경의 가르침에 숨어 있다고 본 것이다. 우남은 가톨릭교회는 인간을 정신적으로 속박하여 노예로 만들고, 절대왕정은 인간을 정치적으로 속박하여 노예로 만든다고 본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 결국 프로테스탄트교회(개신교)를 온전히 세워 사람마다 자유롭게 성경을 공부하며 직접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결국 이후로 200년 동안 루터가 시작한 개신교가 정치제도를 개혁하기에 이르러 영국, 프랑스, 미국 등 각국의 정치적 대혁명이 일어났고 오늘날 구미 각국의 동등한 자유를 누리는 모든 인간행복이 여기서 시작한 것이다. 그러므로 마틴 루터를 근대문명의 시조라 칭함이 과연 적당하며 이러한 루터선생의 능력은 곧 예수의 진리에서 온 것이다”
무려 105년 전인 1913년에 쓴 『한국교회핍박』은 우남이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 자유민주주의 정치 이념에 대해 갖고 있는 함의(含意)를 꿰뚫어 보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남은 기독교 복음이 말하는 자유가 종교개혁을 거쳐 현대 자유민주주의 이념의 기초가 된 것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있었고, 기독교가 앞으로 독립할 국가에 잠재적으로 공헌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그 미래를 내다보고 있었다. 지금 돌이켜볼 때 아쉬운 점은 그의 이런 생각이 현실 정치를 통해 충분히 구현되지 못한 점이다. 그의 기독교적 국가건설의 비전은 국가의전, 국가제도, 기독교인의 중용 등을 통해 부분적으로 구체화되었다. 하지만 기독교적 정신을 사회의 문화에 깊이 뿌리내리게 하는 것에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남의 기독교 정치사상은 여전히 오늘 날에도 유효하고 가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복음을 정치의 영역에 적용하여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기독교의 밀접한 관계를 이해한 우남의 이런 생각은 지금 한국의 교회에서 실종 상태다. 심지어 신학교에서도 이런 내용을 가르치고 배우지 않는다.
7. 맺음말
그 동안 교회에서 대한민국이 발전한 이유는 미국이 전해준 기독교를 받아들여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가르쳐 왔다. 이 말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상당히 불충분한 설명이다. 우남이었다면 이런 식으로 설명했을까? 아마도 그는 이렇게 설명했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발전한 이유는 자유인(自由人)을 가르치는 기독교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을 통해 생겨난 자유인의 개념에서 자유의 이념(자유주의)이 생겨났고, 개인의 자유에 기초한 정치제도와 경제제도를 만들어 번영한 국가를 이룬 미국처럼 우리도 대통령중심제와 의회주의, 삼권분립에 의한 견제와 법치주의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개인의 사적인 재산소유를 보장하며,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한 경제활동을 보장하는 경제제도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기독교가 가르치는 한 개인이 갖고 있는 인간의 존엄성, 생겨난 이윤은 즉각적인 물질적 만족을 위해 소비하지 않고, 계속해서 미래로 연기하면서 근검하게 사는 기독교적 생활패턴, 법의 요구를 상회(上廻) 하는 높은 기독교적 도덕 기준 등이 어느 정도 우리 사회에 정착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교회가 반성해야 할 점은 대한민국의 발전을 단순히 기독교를 받아들여 생겨난 하나님의 축복으로 설명하는 매우 ‘미신적인’ 설명에 머물러 있어온 것이다. 이런 유치한 설명법이 한국교회 안에 널리 유포됨으로 인해 심지어 교회 안에서조차 자유의 개념과 자유의 제도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되었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교회가 우남의 기독교 정치사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더라면 사회적 위기 속에서 교회가 자유의 보루의 역할을 할 수 있을 터이나 지금은 교회 자체조차 흔들리고 있다. 현재 한국사회의 위기의 본질은 자유의 가치를 방기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사회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교회가 먼저 성경과 종교개혁의 전통 속에서 자유의 가치를 다시 확인해야 한다. 우남이 복음을 깨달은 지 120년이 지난 시점인 오늘날에도 우남은 여전히 우리의 길잡이가 될 수 있다. (끝)
#김철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