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후 안보 보장을 두고 국제사회가 논의를 이어가고 있지만, 단순한 합의나 선언이 아닌 강제력을 갖춘 실질적 보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는 러시아가 과거 여러 차례 국제 조약과 합의를 무시하며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를 침해해 온 역사 때문이다.
자유유럽방송(RFE/RL)에 따르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통해 최소 여섯 개의 국제 협정을 위반했다. ▲유엔 헌장 ▲알마티 선언(1991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우호 협력 조약(1997년) ▲양자 국경 조약(2003년) ▲하르키우 협정(2010년) ▲민스크 협정(2014~2015년) 등이 포함된다. 푸틴 대통령이 직접 서명한 국경 조약과 크름반도 해군 기지 유지 협정, 돈바스 전투 종식을 위한 민스크 협정까지 모두 무력화됐다.
민주주의수호재단의 클리퍼드 메이 연구원은 “1994년 부다페스트 각서가 대표적인 사례”라며 “미국, 영국, 러시아가 모두 서명했지만 결국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당시 우크라이나는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가로 안보 보장을 약속받았으나, 러시아의 전면 침공으로 이 약속은 무너졌다.
이 같은 경험 때문에 우크라이나는 신뢰할 수 없는 문서나 약속 아래에서 러시아와 평화 협정을 맺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불가능하다고 못 박으면서도, 안전 보장에는 미국이 일정 부분 참여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다만 지상군 파견은 배제하고 공군 전력 지원 가능성만 열어두었다. 그는 “유럽이 1차 방어선을 구축하고, 미국도 관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럽 국가들은 이미 평화 협정 체결 이후 우크라이나에 군을 파견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가 참여 의사를 밝혔지만 구체적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유럽은 미국의 동참 없이는 실질적 효과가 없다고 강조하며, 미국과의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여전히 회의적 시각을 드러낸다. 싱크탱크 브뤼셀 프리덤 허브의 롤란트 프로이덴슈타인은 최근 열린 백악관 정상회담을 “그라운드호그 데이”라고 표현하며 “실질적인 진전은 전혀 없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진짜 문제는 유럽이 실제 병력을 얼마나 투입할 수 있으며, 미국이 그 배치를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라고 강조했다.
러시아는 나토 병력이 우크라이나에 주둔하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논의되는 방안은 이른바 ‘나토식(NATO-light)’ 안전 보장이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러시아가 재침공할 경우 동맹국들이 24시간 내에 병력 투입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나토 헌장 5조의 집단 방위 조항조차 실제로 작동할지 확신할 수 없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메이 연구원은 “회원국 한 곳이 공격받으면 전체가 공격당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이 원칙이지만, 반드시 군사 대응이 뒤따른다고 보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모든 상황은 우크라이나의 안보를 지키는 길이 결국 선언이나 문서가 아닌, 실질적 군사력과 강력한 국방력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