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一生 祖國과 民族을 爲하여”

오피니언·칼럼
칼럼
최선 박사(OCU대학교 교수, SBCM KOREA 대표)

거짓이 없는 진실과 정의라는 정신적 자본
강력한 자주국방, 남북 분단 상황에서 필수
가난이라는 굴레 벗어나 부국강국 문 열다

최선 박사

역대 대통령들은 국난을 극복하려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 중에 건국대통령 이승만이 있었고 선진국을 향한 도약의 발걸음을 이끌었던 경제대통령 박정희가 있었다.

1960대에는 민주화도 경제도 미숙한 상태의 국가였다. 누구나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이 꿈이었다. 그리하여 자본도 지하자원도 부족했던 시절에 해외에서 외환을 들여와 경제발전을 꿈꾸며 산업화를 이루었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의 정부 주도형 경제개발로 인해 급격히 성장하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국가적으로 복합적인 도전에 직면해 있는 현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경제발전과 근대화를 주도한 박정희 대통령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며 가난한 민족적 굴레에서 벗어나 부국강국의 문을 열도록 결단한 대한민국 대통령 박정희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1917년 11월 14일 경상북도 선산군 구미면 상모리에서 박성빈 공과 백남의 여사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구미공립보통학교,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문경공립보통학교 교사로 봉직하면서 후학들을 양성했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군의 주요 지휘관을 역임하였다. 윤보선 대통령 시절 국가적인 혼란의 상황에서 1961년 5.16 혁명을 주도하면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되었다.

1963년 육군대장으로 예편한 그는 5대부터 9대까지 대통령을 역임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조국 근대화의 기수가 되어 가난을 물리치기 위해 자립경제와 자주국방의 터전을 마련하였고 국민의 정신 계몽을 위해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는 민족 겨레의 염원인 평화적인 통일의 기틀을 마련하는 민족중흥을 이룩한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 1979년 10월 26일 서거하면서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일제강점기와 6.25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우리나라의 산하는 폐허가 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산림이 훼손된 현재만 바라보지 않고 미래의 산을 조성하기 위하여 산림녹화 사업을 추진하였다. 정부에서 묘목과 재정을 지원하여 나무심기를 독려하였고 입산금지 등 산림을 조성하면서 자연보호운동을 전개하였다. 1978년에는 자연보호헌장이 선포되었다.

1961년에 대한민국 대통령 직속 정보기관으로 중앙정보부가 설립되었다. 후에 국가안전기획부라는 명칭을 거쳐 국가정보원이라는 이름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보와 방첩활동으로 국내외적으로 국가적인 이익을 위하여 업무를 감당한다.

필자의 고향집은 초가집이다. 도시가 아닌 곳의 집들은 흙을 바고 지붕에 짚을 얹은 초가집이었다. 그러나 새마을 운동으로 초가집들이 슬레이트 지붕과 현대화 주택으로 바뀌었다. 새마을운동으로 해를 거듭하면서 바뀌어가는 고향마을이 기억난다. 함께 마을가꾸기(청소, 꽃 심기 등)나 학생들이 함께 모여 등교하고 여름에는 경쟁적으로 풀을 베어 모아서 거름으로 사용하는 운동도 있었다.

새마을운동은 도시, 공장, 학교 등 기관으로 확장되었다. 그리하여 전 국민운동으로 발전하였고 정신개발, 생활태도 개선, 소득증대 사업 그리고 사회개발사업에 있어서 큰 성과가 있었다.

경상북도 청도군에 위치하고 있는 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공원은 새마을운동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운동의 탄생배경과 발전에 미친 영향성과 그리고 새마을운동의 세계화 경향을 확인하면서 다양한 전시가 되어 있다.

건국 이래 최대 토목 공사로 불리던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굴지의 건설관계자와 야당의원, 경제학자들이 불가능하다며 반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대통령은 ‘하면 된다’면서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불가능한 것을 가능으로 만든 강력한 지도자였다. 경부고속도로의 중간 지점인 추풍령 휴게소에 경부고속도로기념탑이 있다. “서울 부산 간 고속도로는 조국 근대화의 길이며, 국토통일의 길이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우리나라는 만성적인 가난에 허덕였다. 보릿고개라는 봄철 기근이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식량문제 해결이 없이는 국가안보는 있을 수 없다는 신념으로 쌀 모종 개량을 했으며 식량 자급을 통하여 가난을 추방하는 첫 걸음으로 시작하였다. 그는 일단 목표가 정해지면 앞을 향하여 달려가는 저돌적인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으로 결과를 돌출하였다.

무엇보다 남북으로 분단된 상황에서 자주국방은 필수적인 요소였다. 자조정신에 기초한 자립경제, 건설, 자립경제 기초한 자주국방 건설, 자주국방에 기초한 진정한 자주독립국가 건설이란 국가발전 3단계 전향을 추진한 국가적인 탁월한 지도자였다.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소박한 성품의 박정희 대통령은 누구 못지않게 서민생활에 관심을 기울였다. 농어촌, 벽지 그리고 낙도 주민들의 살림살이에 이르기까지 세심한 관심을 기울였다. 전국 각지의 주요 공업단지의 청소년 근로자들과 시내버스 안내양들의 생활까지 신경을 쓰는 마음을 가졌다.

그가 살아생전 지냈던 집으로 생가, 안채, 분향소, 관리사 등 건물들이 있다. 현재는 경상북도기념물로 지정되어 유족과 구미시가 공동으로 관리하고 있다. 인근에는 복합문화 전시 공간인 새마을운동 태마공원이 있다.

심혈을 기울여 국가적으로 육성했던 구미산업단지(구미IT단지)는 50여 년 전 섬유와 전자산업의 중심이었다. 구미산업단지는 대한민국 수출 산업의 전진기지로 성장하였다. 이제는 모바일, 시스플레이 등 IT산업의 집적지로 자동차 부품, 의료기기, 탄소섬유, 국방, 군수품 등으로 몇 백억 이상을 수출하는 글로벌 첨단산업의 중심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민족의 번영을 위한 방향을 제시하였다. 현재와 미래에도 역동적으로 살아 숨 쉬는 강력한 지도자이만 소탈하고 친서민적이었던 모습으로 기억한다.

박정희 정부의 외자도입법 도입과 자주국방론에 입각한 탄약제조업체 지정을 이룬 풍산그룹은 금속, 방산에 특화된 기업으로 자주국방의 정신에 입각하여 대한민국 최초로 방위산업에 진출한 기업이다.

경주보문관광단지는 박정희 정부의 추진으로 경주 동부에 형성된 관광특구로 아무것도 없던 황무지를 국제휴양지로 바꾸기 위해 예산을 투입하여 건설되었다. 그 안에는 보문호가 자리하고 있으며 보문탑, 경주월드,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 등 관광지로 유명하다.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포항종합제철소가 설립되었다. 그곳에는 포스코가 세계적인 기업이 되기까지의 여정이 상세히 담겨 있는 홍보관이 있다. 철강 산업은 서울 한강의 기적을 이끌어 내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고 봐도 될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 나라에 복지사회를 건설하려면 막대한 물질과 자본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 보다도 더 귀중한 자본이 또 하나 필요합니다. 그것은 거짓이 없는 진실과 정의라는 정신적 자본입니다. 거짓과 부정과 부패와 부조리가 이 나라 사회 안에서 활개를 치고 다니는 한 우리에게는 아무리 많은 자본이 있다 하더라도 복지사회는 건설 될 수 없다고 나는 단정합니다”라고 말했다.

현재 대한민국은 12.3 비상계엄의 부작용으로 국민들은 좌와 우로 나누어 여론은 분열되었으며 민주주의는 심각하게 퇴보하였다. 삼권분립은 무너졌고 입법부와 행정부까지 차지한 거대여당은 자유 민주체제를 훼손하고 있다.

진정한 국가의 발전과 다음세대들에게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해야만 하는 시점에 민족중흥과 경제 그리고 국방력에 에너지를 모았던 강력한 지도력과 지혜가 요청된다. “내 일생(一生) 조국(祖國)과 민족(民族)을 위(爲)하여”라 말하는 그의 발자취를 살펴본다. 이제는 국민들이 하나가 되어 무너져 가는 국가의 현실을 직시하고 대안을 모색하며 바른 국가 경영과 국민의 행복을 위하여 국가 안정에 모두 함께 힘을 합쳐 노력하자.

#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