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다밀롤라 마킨데의 기고글인 ‘우리 모두는 잉태되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마음 속에서 태어난 존재다’(We all are born in the mind of God from conception)를 최근 게재했다.
다밀롤라 마킨데는 영국 복음주의 연합의 옹호 활동을 이끌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최근 영국에서는 낙태와 관련된 여러 사건들이 연이어 화제가 되었다.
영국 의회는 여성이 임신 중 언제든 스스로 낙태할 수 있도록 낙태를 전면 비범죄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신학자 N.T. 라이트는 강간과 근친상간과 같은 예외적인 상황에서는 가능한 한 빨리 낙태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고 발언했다. 또한, 한 구급대원이 불륜 관계에 있던 여성에게 몰래 낙태약을 복용하게 해 유산을 유도한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는 사건도 있었다.
이처럼 복잡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이 모든 이슈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수많은 견해들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필자는 ‘진리를 찾기 위해 논평을 참고하는 것’보다는 ‘논평을 평가할 때 진리의 기준을 사용하는 것이’ 더 지혜로운 길이라 여긴다. 그렇다면 성경은 낙태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을까?
단어 자체만 놓고 보면 간단하다. ‘낙태(abortion)’라는 단어는 성경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에 등장하지 않는 단어가 반드시 성경적 주제가 아니라는 의미는 아니다. ‘삼위일체(Trinity)’라는 단어 역시 성경에 직접 언급되진 않지만, 그것이 비성경적 교리인 것은 아니다. 어떤 개념이 성경에 등장하지 않는다고 하여 그에 대한 성경적 통찰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필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성경은 태어나지 않은 생명(pre-born humans)에 대해 무엇이라 말하는가?”
하나님께 알려진 존재들
이삭, 삼손, 야곱과 에서, 요시야, 세례 요한, 예수. 이 인물들의 공통점은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에 의해 언급되고, 예언되었으며, 하나님의 계획 속에 존재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아직 세상 누구에게도 인식되지 않았을 때 이미 하나님께는 진짜 존재였고, 가치 있는 생명이었다.
이런 특별한 예언의 대상자들뿐 아니라, 다윗과 예레미야와 같은 이들도 하나님의 오래된 관심과 사랑 속에 태어난 존재임을 고백한다. 이들의 신앙은 ‘내가 하나님을 더 알아갈수록, 그분은 이미 나를 알고 계셨다는 사실을 깨닫는 여정’이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예레미야 1:5),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시편 139:16-17)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알기도 전에 우리를 아신다. 그분의 사랑과 목적은 우리의 자각보다 앞서 있다. 그분의 계획은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역, 문화적·법적 틀을 초월해 존재한다.
하나님께도 상실일까?
위에서 언급한 구급대원 사건을 다시 보자. 판사는 그의 범죄가 피해 여성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을 고통과 상실”을 안겼다고 판결했다. 그의 형량과 사회적 비난은 그만큼 무거웠다.
여기서 우리는 사회가 갖고 있는 태아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다. 피해 여성은 임신 능력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그 아이는 다시 가질 수 없는 존재였으며, 다른 생명이나 재정적 보상으로도 대체될 수 없다는 점에서 '상실'이었다.
이 아이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지만, 이미 정서적으로 깊이 연결되어 있었고, DNA를 통해 어머니와 분리될 수 없는 관계였다. 사회는 가해자의 행위가 ‘잘못’이었기 때문에 이 상실을 더 쉽게 인정하지만, 성경은 본질적으로 이 생명이 '하나님의 소유'였다는 더 깊은 의미를 밝힌다.
“주의 성도들이 죽는 것을 주께서 귀하게 보시나이다.”(시편 116:15) 이 생명은 하나님이 투자하신 존재였고, 하늘 아버지와 본질적 연결이 있었으며, 하나님의 목적이 시작되기도 전에 끊긴 것이다.
불완전한 일관성
오늘날 문화 속 낙태에 대한 태도는 일관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매우 모순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낙태가 ‘비동의 하에 이루어졌을 경우’에만 문제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태아에게 하나님이 정당한 권리를 갖고 계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출생 이후의 삶’ 역시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성경의 가르침도 함께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본능적으로 거부하고 싶어하는 진리이기에, 언론이나 대중 담론에서는 결코 강조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필자는 문화의 일관되지 않은 이중 기준을 거부하고, 성경의 명확하고 존엄한 진리에 더욱 귀 기울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