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 낳은 묵상

[신간] 경계 위 그리스도인
도서 「경계 위 그리스도인」

일과 쉼, 현실과 이상, 타인과 나, 과거와 미래 사이 등 누구나 어느 지점에선 경계 위에 서 있다. <경계 위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실존적 경계 위에 선 독자들에게 신앙은 어떤 빛을 비출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성찰하는 에세이집이다. 저자 최병인 작가는 36편의 에세이를 통해 삶과 신앙 사이에 놓인 균열을 예리하게 들여다보며, 일상의 언어로 신학적 통찰을 풀어낸다.

책의 주제는 제목 그대로 ‘경계’와 ‘불안’이다. 하지만 이 불안은 단순히 해소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 존재의 본질을 드러내는 실존의 조건이다. 저자는 이 경계성과 불안을 인정하는 데서 신앙의 여정이 시작된다고 본다. 기독교 신앙이 단지 위로의 메시지를 넘어서, 삶의 모순과 긴장을 있는 그대로 껴안고 해석할 수 있는 힘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책은 9가지 신앙 주제를 따라 구성되었으며, 각 장은 일상적 경험에서 출발해 성찰로 나아간다. 예컨대 ‘안식’을 다룬 장에서는 쉼이 단지 멈춤이나 휴식이 아닌,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영적 실천임을 말한다. 저자는 “우리는 일을 장악하기보다 일에 장악당하며 산다”고 지적하면서, 일보다 멈춤이 더 어려운 시대에 ‘안식’이야말로 삶을 단순하게 만들 수 있는 출발점임을 역설한다.

이 책은 개인의 신앙 여정만을 다루지 않는다. 저자는 한계를 은폐하려는 현대 사회에 맞서, 인간 존재의 한계를 담대히 고백할 것을 요청한다. 그리고 그 한계를 버틸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은 ‘공동체’라고 말한다. 수치와 모멸 앞에 홀로 맞서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서 있는 공동체가 있을 때 참된 자유도 가능하다는 메시지는 현대 교회와 사회가 귀 기울여야 할 중요한 지점이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저자가 삶 속에 깊이 스며든 신화와 종교성에 대해 비판적 시선을 놓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학벌 신화’, ‘부동산 신화’, ‘성공 신화’ 등, 현대인은 더 이상 우상을 숭배하지 않는 것 같지만, 실상은 새로운 형태의 우상 속에서 살아간다. 인간의 두려움을 가리는 ‘신화적 장막’들을 드러냄으로써, 신앙이 진정 무엇을 해명하고 무엇을 해체해야 하는지 묻고 있는 것이다.

성경 본문에 대한 신학적 묵상도 이 책의 중심 축 중 하나다. 예컨대 ‘입다’의 이야기를 다룬 부분에서 저자는 성경이 인간과 세계의 비극을 결코 미화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성경은 우리의 삶이 모든 문제를 해결한 후에야 가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비극과 실패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은 흐르고 있으며, 그 안에서 신자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지만 될 수 없는 현실’을 통과해 나가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계시에 대한 저자의 이해도 독특하다. 저자는 하나님이 단지 정보를 전달하는 분이 아니라, 관계를 맺으시는 분임을 강조한다. SNS나 디지털 통신이 아무리 발달해도 얼굴을 마주 보고 나누는 대화의 깊이를 대신할 수 없듯이, 하나님의 계시도 본질적으로 ‘관계적’이다. 신자란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자’가 아니라, 그분과의 ‘나타남’을 기다리는 자다. 이처럼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중심에 둔 신학적 성찰은 책 전반에 흐르는 중요한 맥락이다.

사회와 교회, 그리고 그 사이의 공존에 대한 고민도 이 책의 핵심을 이룬다. 저자는 사도 바울의 이중직을 언급하며, 오늘날 교회가 노동과 사역의 이분법을 넘어서야 함을 말한다. 목회자가 노동을 한다는 것은 단지 생계형 이중직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론과 선교의 차원에서 바라봐야 할 새로운 시도라는 것이다. 이 주장은 신학과 일상, 사역과 생계 사이의 새로운 균형점을 모색하는 현대 교회에 날카로운 통찰을 던진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 방식에서 인간 자유의 본질을 끌어내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인간은 자유롭게 사랑을 선택하고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존재다. 그러나 그 자유는 동시에 악의 가능성도 품고 있다. 자유는 선한 가능성과 위험한 힘이 동시에 흐르는 복합적 현실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저자는 신앙적 주제를 단순화하지 않고, 삶의 복잡성과 모순을 포용하는 방식으로 풀어낸다.

<경계 위 그리스도인>은 일상의 언어로 신학을 이야기하며, 신학의 언어로 일상을 해석한다. 그 결과 이 책은 단지 묵상의 도구를 넘어, 현대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현실적 안내서가 된다. 불안과 혼란, 경계와 긴장이 일상이 된 시대. 이 책은 그러한 경계 위에 선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한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기다리라. 그분은 반드시 나타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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