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오는 8월 예정된 하반기 한미연합 을지프리덤실드(UFS) 훈련의 조정을 이재명 대통령에게 직접 건의할 뜻을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정 장관은 28일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한미연합훈련 조정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생각이 있다"며, 훈련 시기 조정 문제가 29일 열리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실무조정회의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 장관의 이 같은 발언은 같은 날 오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이재명 정부를 향해 강도 높은 비판 담화를 발표한 직후 나왔다. 김 부부장은 담화에서 "우리는 서울에서 어떤 정책이 수립되고 어떤 제안이 나오든 흥미가 없으며 한국과 마주 앉을 일도, 논의할 문제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이 내놓은 첫 공식 입장이자, 새 정부의 유화적 대북 정책에 대한 사실상의 부정이었다.
정 장관은 이에 대해 "과거보다 담화 수위가 낮아진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오히려 북측의 태도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면서도 한미연합훈련이 남북 관계의 향방을 좌우할 수 있는 핵심 변수라고 언급했다. "한미훈련이 가늠좌가 될 것"이라는 그의 발언은, 훈련 자체가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전제를 담고 있어, 국방 안보보다는 북측 입장을 과도하게 의식한 발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군 안팎에서는 이번 한미연합훈련이 거의 1년간 준비돼 온 만큼, 갑작스러운 연기나 축소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 장관은 훈련의 전면적인 재조정 가능성까지 열어두고 있어, 이재명 정부의 안보 정책 기조가 이전 정권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북한은 UFS 훈련을 오랜 기간 침략 전쟁 연습이라며 강하게 반발해왔다. 특히 김정은 참수 작전이나 핵 대응 시나리오 등 실전 중심의 훈련 구성은 북한의 극심한 민감 반응을 유발해왔으며, 이번에도 김여정 부부장은 "대규모 군사연습 강행으로 초연이 걷힐 날이 없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런 상황에서 통일부 수장이 대통령에게 직접 훈련 조정을 건의하겠다고 밝힌 것은, 외교안보 라인 내에서 혼선이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자아낸다. 특히 NSC 실무조정회의에서 통일부 차관이 훈련 조정 문제를 본격 논의하게 된다면, 이미 결정된 군사일정조차 정치적 판단에 따라 흔들릴 수 있음을 시사하는 셈이다.
정 장관은 이와 함께 민간 차원의 대북 접촉 전면 허용 방침도 내놨다. 그는 "신고만 하고 무제한 접촉하시라"며 현행 남북교류협력법상 접촉 신고제를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해온 관행을 철폐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법도 바꾸겠다"며, 관련 제도 개선까지 예고했다. 통일부는 과거 접촉 건마다 안보 위협이나 질서유지 등을 이유로 허가를 제한해왔으며, 이에 대한 비판이 이어져온 바 있다.
또한 정 장관은 윤석열 정부 시절 축소된 통일부 조직을 복구하겠다는 입장도 내비쳤다. 그는 "폐지됐던 남북회담사무국과 교류협력국 등을 되살리는 방향으로 초안을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전임 정부가 축소한 남북 협력 기구를 원상복구하겠다는 것으로, 이재명 정부가 본격적으로 대북정책에서 방향 전환을 시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풀이된다.
한편 이 같은 일련의 흐름은 이재명 정부가 북한의 호응 없는 태도에도 불구하고 유화적 제스처를 연이어 보내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김여정 부부장은 이번 담화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전임자와 다를 바 없다"며 남북 관계에 대한 변화 의지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훈련 유예나 민간 교류 확대 등 연이은 양보 카드를 꺼내 들고 있어, 안보 공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대북정책의 일관성과 실효성을 해치는 동시에, 군과 국민에게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실질적 성과 없는 대북 제스처가 반복된다면, 오히려 이재명 정부의 외교안보 신뢰도만 저하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