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전천년설의 역사적 재등장과 ‘뮌스터(Münster) 반란’ 사건 이후
전천년설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로마가톨릭교회가 5세기 초에 교리에서 배제하고 무천년설로 전환함으로써 종교개혁 시기까지 “1,000년” 이상을 감금된 사탄처럼 잊혀진 시간 속에서 보냈다. 1517년 독일에서 루터(Martin Luther)의 종교개혁이 시작된 이후, 스위스에서는 츠빙글리(Ulrich Zwingli, 1484-1531)가 개혁의 지도자로 등장하였다. 이 시기에 급진적 개혁을 추구하는 재세레파(또는, 재침례파)가 형성되었다.
(1) 재세례파의 신앙적 특징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① 재세례파는 자발적 신앙 고백을 하는 성인에게만 세례를 허용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유아세례를 거부했다.
② 그들은 초대교회 신앙으로 돌아가기를 주장하면서 당시의 국가교회 체제와 충돌하게 되면서 박해를 받았으나, 천년왕국의 백성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순교와 고난을 마다하지 않았다.
③ 그러나 그들 가운데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는 과격파가 나타났고, 그들은 온건파와 결별하면서 추종자들에게 그리스도가 곧 재림하실 독일 뮌스터로 모이라고 요구했다.
④ 추종자들이 모이자, 얀 마티스(Jan Matthys, 1500-1534)가 자신을 하나님이 보낸 에녹으로 자처하면서 지도자로 등장했다.
⑤ 얀 마티스는 뮌스터가 새 예루살렘이라고 주장하면서 그리스도의 천년왕국이 그곳에 도래할 것이라고 선포하였다. 그는 자치 정부를 구성하고, 재침례와 일부다처제를 포함한 새로운 종교 질서를 시행했다.
⑥ 로마가톨릭교회는 이를 이단자들의 반란으로 보고 군대를 동원해 진압에 나섰다. ‘뮌스터 반란’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 전쟁(1533-1535)을 루터는 단호하게 비판했으며, 칼빈(John Calvin) 등 주요 종교개혁 지도자들도 사상적으로 로마가톨릭교회를 지지하는 입장이었다.
⑦ ‘뮌스터 반란’은 곧 잔인하게 진압되었지만, 그들이 선포했던 시한부 종말론은 그동안 버려진 채로 있던 전천년설 천년왕국론에 새로운 불씨를 던진 셈이 되었다.
(2)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등장: 미국에서 청교도 신앙 회복을 위한 대각성(The Great Awakening) 운동이 거의 주기적으로 반복되던 시기에 침례교회 신자였던 윌리암 밀러(William Miller, 1782-1849)가 시한부 종말론을 다시 주장하면서 등장했다. 그는 다니엘서 8;14절의 ‘2,300주야’ 예언이 1844년 10월 22일에 성취되며, 그날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그러나 그날에 그리스도의 재림은 일어나지 않았다. 크게 실망한 지지자들은 대개 떠나가고, 남은 자들이 새 예언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엘렌 지 화이트(Ellen G. White, 1827-1915)를 따랐다. 당시 17세 소녀 화이트를 예언자로 따르던 자들이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를 결성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화이트가 환상을 보고 썼다는 『각 시대의 대쟁투』 (The Great Controversy, 1888)는 화이트를 예언자로 믿는 신자들에게 필독서이다. 화이트는 다음과 같은 형태로 전천년설 천년왕국론을 설명했다.
① 1844년에 그리스도가 지성소를 정결케 하시고 조사 심판을 시작하셨으며 이를 마친 후에 재림하실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임박성을 강조하면서도 재림의 시기는 특정하지 않았다.
② 그리스도가 재림하시면, ‘대심판’과 신자들에 대한 보상이 시작되면서 아마겟돈 전쟁에서 악인들은 모두 죽고, 사탄은 결박된다. 이때 죽었던 의인들이 첫째 부활하고, 신자들의 몸은 변화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휴거되어 천상으로 올라가 천년왕국에서 왕 노릇하게 된다.
③ 땅은 텅 빈 폐허가 된다. 화이트는 이를 무저갱이라 한다. 사탄은 이 텅 빈 땅에서 “천 년 동안” 혼자 있게 된다.
④ 하늘에서 천년왕국이 끝나면, 죽었던 악인들이 둘째 부활하여 최후의 심판을 받는다. 이때 부활한 악인들이 풀려난 사탄에게 다시 미혹되어 곡과 마곡의 전쟁에 참여한다. 화이트는 사탄이 그들과 함께 하늘에서 내려온 불에 소멸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천상에서부터 시작된 그리스도와 사탄의 대쟁투 과정을 우주적 구속 서사로 보는 화이트의 관점에서 사탄의 멸망은 절정(climax)을 이루는 부분이어야 한다. 그러나 화이트는 역사적 전천년설의 관점을 따라 그리스도의 재림을 단회의 사건으로 서술하기 위해 최후의 전쟁인 곡과 마곡의 전쟁에서 사탄은 부활한 악인들과 함께 하늘에서 내려온 불이 태워 죽이는 것으로 설명한다.
⑤ 그러나 계 20:9절의 서술에 따르면, 사탄의 무리는 하늘에서 내려온 불에 태워지지만, 이어진 10절에서 사탄은 불 못에 던져지는 것으로 분명히 구분하여 서술되어 있다. 여기서 사탄을 불 못에 던져넣은 심판자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그리스도밖에 생각할 수 없지 않는가? 요한복음 5:22에서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다고 하셨으니, 심판장 역할은 그리스도에게 전적으로 귀속된다. 그러나 엘렌 화이트는 종말의 심판장으로 재림하여 계신 그리스도를 하늘에서 불을 내린 자 곧 ‘하늘의 주권자’로 상징화하여 성경이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그리스도의 심판장 역할을 모호하게 해석하였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만든다.
⑥ 그러나 엘렌 화이트의 해석은 이 두 개의 심판을 통합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별개의 심판을 단일 심판으로 보는 오해를 보인다. 이와 더불어, 계 20:11 이후에 나타나는 크고 흰 보좌에 앉아 심판하시는 이를 재림하신 그리스도로 해석하는 것이 주류적 견해라는 점도 화이트의 해석을 비판하는 데 힘을 보탠다.
⑦ 화이트는 전천년설의 단일 재림 주장을 따르고는 있지만, 아마겟돈 전쟁 승리 후 부활한 의인들과 몸이 변화된 신자들을 이끌고 다시 승천하시어 하늘의 천년왕국을 다스리신다고 설명한다. 화이트는 우주적 구속 서사를 그런 방식으로 이어가면서 종말 사건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의 임재를 배제시킴으로써, 성경 해석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3) 전천년설의 왜곡 변형 사례: 이처럼 그리스도의 재림과 휴거를 동시에 연결하는 전천년설은 거짓 선지자들에 의해 시한부 종말론으로 왜곡 변형되어 신자들을 미혹하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① 한국에서도 이장림 목사 등이 1992년 10월 28일에 예수의 재림과 휴거가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하여 사회와 교회에 큰 파장을 일으킨 다미선교회 사건 등이 있었다.
② 전천년설에서 주장하는 휴거의 성경적 의미는 재림하시는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위한 일시적 공중 들림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건전하고 합리적인 해석이다.
③ 최근 조지 엘던 라드 등 여러 학자들의 연구와 출판물이 있었음에도, 역사적 전천년설 내에서는 그리스도의 재림 시기에 대한 견해가 대환난(마 24:21) 이전인지, 아니면 이후인지를 놓고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④ 대환난전 휴거설 지지자들은 비밀 재림 또는 7년 공중 재림 등을 상상하면서 대환난은 신약교회 신자들이 휴거된 이후에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대환난이 유대인들의 회개를 위해서만 일어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⑤ 대환난 이전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다는 주장은 세대주의 전천년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일 뿐, 성경적 근거는 보이지 않는다.
(4) 역사적 전천년설의 전통적 견해: 역사적 전천년설은 그리스도의 재림 시기를 대환난 이후로 이해하며, 이때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위해 첫째 부활한 의인들과 살아 있는 신자들이 휴거되지만, 곧 지상에 내려와 그리스도의 천년왕국 통치가 시작된다는 것이 전통적 견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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