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가 도입한 ‘낙태 완충구역’(abortion buffer zones) 법이 기독교 신앙의 공적 표현을 억압하는 도구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영국 크리스천투데이(CT)에 따르면, 기독교 단체 크리스천 컨선(Christian Concern)이 의뢰한 최근 보고서는 반사회적 행동(공공장소 소란, 반려견 배설 방치, 음주 등)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된 법이 낙태 반대 표현을 금지하는 수단으로 전환되었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접근은 런던 일링구(Ealing Council)에서 처음 시도됐다. 일링구는 공공장소보호명령(PSPO, Public Spaces Protection Order)을 활용해 낙태 클리닉 인근에서 모든 형태의 낙태 반대 표현을 금지했다. 이후 다른 지방 자치단체들도 이를 본보기로 삼았고, 2023년부터는 영국 전역으로 완충구역이 확대 시행됐다.
특히 2024년 10월 이후, 완충구역 내에서는 낙태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현’하는 것뿐 아니라, 암묵적으로 드러내는 행위조차도 법적 제재 대상이 됐다. 실제로 명확한 반대 표현 없이 조용히 기도만 한 경우에도 처벌을 받은 사례가 보고되었다.
2022년에는 아프가니스탄 파병 경력이 있는 예비군 출신 아담 스미스-코너(Adam Smith-Connor)가 완충구역 내에서 침묵 기도를 했다는 이유로 고정벌금통지서(FPN)를 받은 바 있다. 그는 낙태 클리닉과는 시야가 닿지 않는 위치에서 22년 전 낙태로 세상을 떠난 자신의 아들을 위해 조용히 기도하고 있었다.
스미스-코너는 크리스천 컨선에 “나는 이 나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20년간 예비군으로 복무했고, 아프가니스탄에도 파병됐다. 그런데 지금 이 나라는 기도나 생각만으로도 범죄자가 되는 지경까지 왔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침묵 기도나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서 있었다는 이유로 체포된 사례들도 보고서에 포함되었다.
보고서는 또 다른 문제점으로, 기독교인들이 이러한 법적 조치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벌금을 받은 이들은 치안판사법원에 항소할 수 있지만, 지방자치단체가 민간 기소(private prosecution)를 할 경우 패소한 기독교인은 수만 파운드에 달하는 법적 비용을 떠안게 된다. 반면 국가검찰이 기소를 진행했다가 패소할 경우, 피고인이 부담해야 할 비용은 약 250파운드에 불과하다.
보고서는 이 같은 구조가 사실상 기독교인들이 정의로운 법적 절차에 접근하는 것을 막고 있으며, 지방정부가 일방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낳는다고 밝혔다.
크리스천 컨선 안드레아 윌리엄스(Andrea Williams) 대표는 “이 사안의 핵심은 국가가 낙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목소리까지 억압할 권리를 가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라며, “이번 보고서가 보여주듯 완충구역법은 불필요할 뿐 아니라, 위험할 정도로 권위주의적이다. 이는 반대 의견을 억누르고 기독교 신앙을 주변화시키며, 민주주의의 핵심인 자유를 침식시키고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