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으로 읽는 구약 선지서(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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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박덕준 교수(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구약신학)

"의지하는 바벨론을 통해 예정된 심판"(이사야 39:1-8)

박덕준 교수(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구약신학)

이사야 39:1-8은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는 대신에 외교 정책을 통해 국가의 위기를 타개하려던 히스기야에게 내린 심판의 예고를 담고 있다. 이를 통해 이사야 선지자의 사역 당시 가장 경건한 왕이었던 히스기야조차 여호와 보시기에 온전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유다에 대해 여호와께서 계획하신 심판이 불가피한 것이었음을 드러내고 있다.

본문은 히스기야 왕이 죽을병에 걸렸다가 여호와께 기도를 드려 기적적으로 살아났던 상황(사 38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때 근동지방의 패권국이었던 앗수르는 내란으로 인해 잠시 혼란에 처해 있었고, 앗수르에 반란을 꾀하던 바벨론의 므로닥발라단은 이 기회를 틈타 유다와 동맹을 맺기 위해 히스기야의 회복을 축하하는 사절단을 예루살렘에 파송했다. 당시 앗수르의 압제에서 벗어나기를 고대하던 히스기야는 바벨론의 사신들을 환영하며 유다의 재력과 군사력을 자랑하며 바벨론과의 동맹을 꾀하게 된다.

먼저 1-4절은 히스기야의 이러한 노력을 자세히 기술하면서, 여호와를 온전히 의지하지 않는 그의 어리석음을 드러낸다. 히스기야는 바벨론의 사자들로 인해 기뻐하면서, 그의 보물 창고 안에 있는 "모든 것"(은금과 향료와 보배로운 기름)과 그의 무기고에 있는 "모든 것"과 그의 "모든" 영토에 있는 소유물을 그들에게 보여준 것이다. 그뿐 아니다. 회개 촉구를 암시하면서 이사야 선지자가 묻는 두 질문("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했나이까?" "그들이 어디서 왔나이까?") 중 둘째 질문에만 대답함으로써, 히스기야는 자기의 의도를 감추려고 시도했다. 앗수르로부터 자신과 예루살렘을 구원하시리라는 여호와의 약속을 들었을 뿐 아니라 초자연적 징조를 통해 약속의 확증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38:5-7), 그는 바벨론과의 동맹을 통해 앗수르로부터 스스로를 구원하려고 한 것이다.

히스기야의 불신앙적 태도에 대해 이사야 선지자는 "만군의 여호와"의 엄중한 심판 선고를 전달한다(5-7). 첫째로, 히스기야 왕가의 소유물뿐 아니라 유다가 소유한 "모든 것"이 바벨론으로 옮겨져 남을 것이 없게 될 것이다(6). 즉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허락하신 모든 복이 박탈당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로, 히스기야의 자손 중 몇이 바벨론에 사로잡혀 가서 왕궁의 환관이 될 것이다(7). 다시 말해서, 다윗 언약의 상속자들조차 여호와의 성회에 들어올 수 없는 비참한 신분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신 23:1 참조).

이 무서운 선고에 대한 히스기야의 반응(8)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로, 자신의 죽음의 선고에 대해 통곡하고 기도했던 모습(38:1-3)과 달리, 자기 생전에는 평안과 견고함이 있을 것이라고 안도하는 불신앙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둘째로, 여호와를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은 히스기야의 불신앙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는 그를 불쌍히 여기시고 심판을 연기해주셨다(왕상 21:29 참조).

히스기야에게 선고된 심판은 바벨론의 수차례 침략으로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유다 왕가의 인물들과 예루살렘 성전의 모든 소유물이 바벨론에 옮겨지게 됨을 통해 성취되었다(왕하 24:10-17; 25:7-17). 그러나 놀랍게도 여호와께서는 심판 이후에 언약 백성을 회복시키시고 그들의 죄악을 씻으시고 그들로 여호와께 온전히 순종하도록 만드시리라 약속하셨다(사 43:1-7; 렘 31:31-34; 겔 36:22-36). 그러고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화목제물 삼으시고 죄 사함을 이루시고 또한 그를 믿는 자들을 새언약 백성으로 삼으심을 통해 그 약속을 온전히 성취하셨다(롬 3:19-31; 히 9:11-15; 10:10-18).

비록 은혜로 예수 안에서 성도로 부르심을 받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며 살아가곤 한다. 그럼에도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께서 매일 매 순간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시기에, 그 음성에 순종하며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빌 2:12-13). 또한 함께 부르심을 받은 지체들을 돌아보아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서로 권면하며 함께 믿음의 경주를 달려가야 하겠다(히 3:12-14).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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