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중복음은 성경 교리사상을 전도 목적으로 발췌해 표제로 삼은 것을 말하는데, 구체적으로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을 말한다. 이러한 사중복음은 성결교회 교단이 전도표제로 채택하여 교단의 정체성을 유지하는데 일정부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더욱 한국교회사에 특이할 만한 것은 장로교나 감리교, 침례교들은 모두 미국선교사들이 전해 준 교리장정을 바탕으로 한국에서 교단으로 자리 잡았지만, 성결교회는 한국내 자생적으로 성장한 교단이라는 점이다. 미국 선교사들이 일본에 세운 동경성서학원에 1907년 유학했던 정빈과 김상준 두 학생이 학업을 마치고 돌아와 복음전도관 이름으로 나가 전도하고 조직한 것이 오늘날의 성결 교회가 된 것이다. 타교단들은 미국을 배경으로 한국에서 성장했으나 성결교단은 미국 동양선교회(Oriental Missionary Society)의 협력 속에 자립적 의지로 복음운동을 시작한 결과 한국에서 교회가 한창 부흥 할 때 한국의 3대 교단으로 성장하기도 했다. 1930년대 부터 성결교회 부흥운동이 일어났는데, 그 후부터 본격적으로 사중복음을 기치로 하여 성령운동을 한 결과 놀라울 만큼 빠르게 성장해 나갔다. 결국 사중복음이라는 전도표제는 성결교단의 전도방법의 심볼이 된 것이다.
이러한 교단의 시작과 그 배경을 가지고 1911년에는 서울신학대학교가 설립되었다. 이는 교단 교역자를 양성하여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세워졌다. 학교의 교육 이념은, 어느 신학대학교나 다 그러하듯, 진리(VERITAS) 추구나 탐구이며, 기독교 교회로서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사랑이며, 동시에 온 인류를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고자 하며, 이를 실행 할 목적으로 전문인 교역자를 양성하는 것이었다. 또한, 웨슬리언 복음주의를 배경으로 진리추구와 함께 성결을 건학과 교육이념으로 세워 그 가운데 복음주의로 교육하여 발전하여 왔다.
1976년, 종교음악과 개설을 필두로 기독교 교육학과, 그 후 사회사업학과, 보육학과 등, 인류복지를 중심으로 한 학과들이 증설되면서 신학교, 그리고 신학대학 명칭을 거쳐 신학대학교 로 성장하게 되었다. 2000년대 들어 관광경영, 글로벌 비즈니스 학과 등 다양한 현대사회가 필요로 하는 학과목을 설립하여 기독교 종합대학교로서의 체계를 갖추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외형적인 발전은 성결교단과 성결교회의 위상을 한국사회 및, 교육기관에 알리는 계기가 되어 참으로 성결인으로서 자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역사적 현실 가운데 좀 더 냉철하게 교단과 학교의 신학교육에 대해 돌아볼 필요가 있다. 21세기 들어 성결교단이 성장하지 못하고 정체된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이는 각 종 리서치에 의해 나타난 현황인데, 세계 및 한국교계 전체가 그러하듯 성결교회도 이러한 추세속에 있다. 문제는 다른 교단 보다 하향곡선을 그리는데 더 급속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무엇일까? 첫째는 세계적으로 광범위한 교세를 유지하고 있는 타교단과 같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국제적 명성을 성결교단은 가지고 있지 못하다. 세계에 확산되어 있는 교단적 배경의 힘이나 영향력의 효력을 가지고 있지 못해 홀로 고군분투 하고 있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사중복음의 전도표제로서의 효율성이다. 그동안 성결교회는 한국 내에서도 3대 교단으로 성장했다고 하나, 사중복음표제에 대한 그 효능이나 효율성을 냉정하게 연구하여 보아야 한다. 그것은, 성결교회에 등록하여 출석하는 성도들이, 성결교회에 들어 올 때, (1) ‘사중복음을 전도표제로서의 슬로건에 끌려 성결교회 교인이 되었는가?’ (2) ‘사중복음이 믿음생활에 도움이 돼서 앞으로도 성결교단의 교인으로 남아있을 예정인가?’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중복음이 전도와 교인등록에 효과적인 효율성을 발휘 하고 있는가를 여론조사 같은 것을 통해 연구해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와 더불어, 세계화 신학이 될 수 있는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 위와 같은 질문에 긍정적인 대답이 아니라면, 사중복음은 효과 없는 구호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한 반응도 있는데, 그것은 교단 성장에 그리 큰 효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해도 교단의 신학적 특성을 뒷받침 해주는 것으로서, 또는 이미지 역할론으로서의 의미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
어떤 교회성장의 효과 보다는 교단의 특성, 즉 “장로교는 예정론” “성결교는 사중복음”과 같은 이미지 역할론 때문에 중요하다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중복음이 필요하다 하는 것이다. 그나마 자립적 교단으로서의 특성을 만들어 세계에 알리기에 애매한 조건에 있는 성결교단으로서는 그것은 그것대로의 절대적 필요성이 있다 주장하는 것이다.
셋째, 사중복음은 한국이라는 전도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표제라 할 수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세계의 교회들이 관심 가질 수 있는 사중복음의 학문적 틀, 즉 이론이나 해석학적 방법론 등을 연구하여 세계 신학계에 내 놓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국내용적 사중복음을 해외에 세계적 사중복음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는 말이다. 상업적으로 말하면 세계 기독교 교회에 사중복음 이라는 상품을 내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 마저 세계 교계에 사중복음에 대한 인식이 없어 세계화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사중복음은 웨슬리신학과 손잡아야 한다. 웨슬리신학은 세계 적인 신학이기 때문에 웨슬리신학과 함께 보조를 맞추어 나가야 한다. 웨슬리신학이 있는 곳에 사중복음이 있고, 사중복음이 있는 곳에 웨슬리신학이 있으면 자연스레 사중복음은 알려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결이나 그리스도인의 거룩함의 완전성은 이 시대도 필요한 신학적 가치이기 때문에 사중복음을 연구할 때는 반드시 웨슬리신학과 함께 해야 된다. 밖의 신학세계에 알려 지지 않은 사중복음을 성결교단만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으면 세계적 교단이나 신학이 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사중복음과 연관한 복음주의에 대한 서울신학대학교 신학 교육이다. 미국에서 신학교육은 서서히 홀대를 받고 있다. 이는 대학세계에서 목회학적 교육을 배제하기 때문이다. 미국 명문대학교와 연관 되어 있는 신학부에 목회학 박사과정을 거의 없애버린 것이 한 예가 된다. 목회학은 신학교(Seminary)에서만 하라는 것이다. 아카데믹한 학풍의 학교에서 목회학을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으로 이성중심의 교육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학문의 자유성도 한몫 하는 원인으로 나타난다. 학문의 자유는 다양한 이론에 대한 관심의 도를 높인다는 것으로 신학도 복음주의 노선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닌 자유스럽게 아무 주제나 아무 논제도 다 공평하게 다루는 것을 지향하고 있는 시대 사조적 환경에 바탕을 두고 있다.
서울신학대학교도 이러한 풍조에 영향을 받고 있다. 신학부에도 이러한 철학중심의 학풍을 유지하고 있는데, 금번 유신진화론 강의도 이러한 풍조 아래서 나오게 된 것이다. 유신진화론은 학교건립 이념이나 성결교단의 교리장정에 베치되는 강의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할 수 있다. 그가 유신진화론적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은 본인이 가지고 있는 학문연구의 자유 때문에 뭐라 할 수 없다. 문제는 유신진화론적 신학노선을 학교는 가지고 있지 않는데 이를 가르치는 것이다. 유신진화론을 이해하는 학교에서 강의하면 아무 문제가 될 수 없는 일인데, 복음주의적 입장, 즉 학교 이념이나 및 건립목표에 반대되는 교육을 하니까 그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어쨌든, 교단이 사중복음을 그렇게 소중한 교단이념으로 유지하고자 하면, 이에 대한 대대적인 연구를 서울신학대학교가 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보며, 성결교회와 대학교가 계속 성장하거나 세계적 교단과 학교가 되고자 하면, 사중복음을 웨슬리신학과 함께 해야 가능하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양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