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채 총장의 ‘번역서의 함정’ 기고문에 대한 반론

오피니언·칼럼

필자는 2025년 새해 첫 달에 대한제국 최초의 영문주간지 ‘코리안 리포지터리 1899’를 편역해 출간했다. 즉, 126년 전 대한제국 최초의 주간 신문을 번역해 엮어 출간한 것이다.

번역이 필자의 관심 분야라 그랬는지 기독일보를 보다가 ‘번역서의 함정’이라는 제목의 칼럼이 눈에 띄어 읽게 되었다. 기고자 서병채 목사(케냐 멜빈대학교 총장)는 기고 글에서 정확히 표현은 안 했지만, 그가 읽은 번역서의 내용 전달은 원문과 80% 이상과 다르다는 뉘앙스를 줬다. 그리고 그는 “웬만하면 역서보다는 원서를 그대로 보는 것이 낫다”라고 하며 마지막 부분에 “번역서는 한 번 펴내어 시중에 나가게 되면 다시 수정판을 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니 좀 더 사려 깊은 작업이 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번역자들에게 보내는 충고를 적었다.

2024년 한국 문학계는 그동안 고대해 왔던 노벨문학상을 작가 한강이 수상하게 되어 문학사의 한 획을 그었다. 한강이 수상한 작품 심사는 한글로 한 것이 아니고 번역서를 심사관들이 읽고 수상작으로 선정한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 작가들의 좋은 작품들이 이러한 세계적인 명성이 있는 상을 받지 못한 것은 좋은 한글 작품 번역서가 부족했다는 평도 나왔다.

“번역은 반역이다”라는 말이 있다. 번역은 외국 작품을 읽고 이해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외국어를 우리말로 풀어내야 하는 작업이다.

이러한 시기에 필자는 이렇게 번역서에 관해 개인 의견을 기고해 준 서병채 총장에게 한편으로는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다른 한편으로는 다음과 같은 반론을 제기하고 싶다.

1. 서 총장은 그가 기고한 ‘번역서의 함정’에서 기술한 “널리 알려진 영어책이며 한글로 번역된 책”의 제목과 출판사를 한국 독자를 위해 적시해야 했다고 본다. 그래야만 “제일 빠지기 쉬운 번역에서의 함정은 영어 원문의 뜻이 완전히 다르게 번역되어, 한국어 독자들이 거의 90퍼센트 다른 개념을 가질 수도 있겠구나”라는 서 총장의 말처럼, 교육자로서 다른 이들이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구체적인 실상을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 서 총장은 그의 기고 글에서 “출판을 위한 번역은 어떻게 되는지 나는 잘 모른다”라고 했는데, 필자가 교보문고에 검색을 해보니 두 권의 책의 역자로 소개되어 있었다. 필자는 서 총장이 이 기고 글에서 왜 출판을 위한 번역에 대해 모른다고 했는지 궁금하다. 20여 년 전 번역자 서병채로 발간된 책은 서 총장의 글에 있는 것처럼 “전문가들이 번역하고 역자는 주 번역자로 결정”되었다는 것인가?

3. 서 총장은 그의 글 말미에 “번역서는 한 번 펴내어 시중에 나가게 되면 다시 수정판을 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피력했는데 필자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기독인들이 매일 보는 성경 역시 번역서이지만 오랫동안 여러 차례 수정판을 내왔고, 또한 지금도 성경 번역자들이 수정본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말로 쓰인 많은 책도 수정판 증보판이 나오지 않는가?

4. 마지막으로 서 총장은 주위 사람들에게 “웬만하면 역서보다는 원서를 그대로 보는 것이 낫다”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얘기한다고 주장한다. 지당하신 말씀이다. 그렇다고 대부분의 목회자가 원서가 낫다고 성경 원전인 히브리어 성경을 읽을 수 있는가? 예수님이 말씀하신 아람어 성경을 보고 이해할 수 있는가?

이에 필자는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과 도구 능력, 그리고 시간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독서 방법을 택하는 게 중요하지 굳이 원서만 보는 것을 주장하다가는 오히려 자신의 독서 세계만 좁아지고 읽는 책도 현저히 줄어들어 결국 본인만 손해 보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리진만 인도네시아·우간다 선교사(‘코리안 리포지터리 1899’ 편역자)

#서병채총장 #번역서의함정 #케냐멜빈대학교 #리진만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