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거룩한 방파제’로 동성애 ‘쓰나미’ 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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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 동성애 확산을 막기 위한 교계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성 소수자 단체가 개최하는 서울 퀴어축제가 6월 1일로 예정된 가운데 교계는 20만 명이 참가하는 ‘거룩한 방파제’ 통합국민대회로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거룩한 방파제‘ 측은 지난 12일 오후 서울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에서 실행위원회를 열고 올해 국민대회와 관련해 개요를 밝혔다. 앞서 지난 5일 경기도 파주 오산리 최자실기도원에서 밤 10시부터 다음 날 새벽 5시까지 금요철야기도회를 갖고 학생인권조례와 차별금지법, 동성결혼 합법화 시도 무산을 위해 간구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이 한국교회를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가슴 한복판에 새기는 시간이 됐다.

‘거룩한 방파제’란 우리 사회와 가정에 쓰나미처럼 밀어닥친 동성애를 한국교회가 막아내겠다는 의지가 담긴 용어다. ‘차별금지법’과 동성결혼 합법화를 막아내 우리 사회와 다음 세대를 지키겠다는 뜻으로 하나님이 한국교회에 이를 막아내는 ‘방파제’의 사명을 주셨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거룩한 방파제’ 통합국민대회는 매년 서울에서 퀴어축제가 열리는 날, 같은 시간에 장소 인근에서 열려왔다. 두 집회의 성격이 극과 극이고 참가자의 수가 수만 명이나 돼 자칫 예기치 못한 충돌이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따라다닌다. 만약 물리적 충돌로 불상사가 발생할 경우 ‘거룩한 방파제’라는 의미가 상대에게 호도의 수단이 될 수도 있어서다.

올해 퀴어축제는 서울 어느 장소에서 열리게 될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퀴어축제 측이 올해 5월 31일과 6월 1일 서울광장을 쓰겠다며 서울시에 사용신청을 냈으나 최종 불허됐다. 서울광장 사용 여부를 결정하는 서울시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가 올해는 같은 날 ‘책 읽는 서울광장’ 행사가 예정돼 있어 행사의 연속성을 이유로 불허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시가 퀴어축제의 서울광장 개최를 불허한 것은 작년에 이어 두 번째다. 퀴어축제 측은 보수 기독교계의 압력이 이런 결정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오세훈 서울시장을 의심하는 눈초리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 오세훈 시장 때인 지난 2022년에 퀴어축제는 코로나19 확산의 우려가 채 가지시 않은 상태에서도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오 시장은 비판과 반발 여론이 거세자 음란물을 판매하는 등 서울광장 사용 조례에 어긋나는 행위를 해선 안 된다는 단서를 달고도 최종 인가했었다. 그런데도 퀴어 주최 측은 음란물 판매 영업행위를 버젓이 했다. 이런 점에서 문제는 서울시가 아닌 주최 측에 있다.

지난해 퀴어축제 측이 신청한 서울광장 사용 승인이 불허된 데 이어 올해 다시 불허된 것에 외부의 입김이 작용할 여지는 없다. 퀴어측은 열린광장운영시민위가 오시장 부임 이후 보수적인 색채로 바뀐 탓을 하고 있는데 이는 보수·진보 편 가르기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시민위가 서울광장 사용 목적을 검토는 할 수 있으나 특정한 단체를 막거나 다른 쪽에 유리한 결정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퀴어축제 측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또다시 서울광장 사용신청을 하는 등 유독 서울광장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건 아무래도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중심이라는 상징성 때문일 것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축제를 개최함으로써 동성애를 널리 확산시키고 나아가 동성혼 합법화 등 젠더 이념을 전파하는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2000년대 들어 서울 대학로, 신촌 등지에서 행해지던 퀴어축제는 참가자가 수백명에서 천명대에 불과해 크게 주목을 끌지 못했다. 그러다 고 박원순 서울시장 때인 지난 2015년 서울시가 서울광장을 집회 장소로 내주면서부터 참가자가 급증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성 소수자들의 분출 무대인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것에 대해 일각에선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개인의 성적 취향을 억지로 찾아내 망신주고 벌을 주자는 게 아니지 않나. 백주에 서울 한복판에서 벌거벗고 음란한 행위를 하는 게 표현의 자유고 권리라면 이를 거부할 자유와 권리 또한 시민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더구나 성 의식에 있어 미완인 청소년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해악을 끼치는 행위를 부모가 모른 체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그런데 교계가 우려하는 건 단지 서울 시내에서 하루 또는 이틀간 벌어지는 기괴한 행위 그 자체가 아니다. 그 뒤에 숨은 의도를 간파하지 못하면 우리 사회와 한국교회가 무너지고 말 것이라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동성애자들과 이들을 옹호하는 진영에선 퀴어축제를 동성애 합법화를 위한 수단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 전 세계 20여 국이 이런 수순으로 동성혼 합법화라는 최종 목표를 이뤘다는 게 그 증거다. 이들은 이런 분위기를 조성해 국회에서 ‘차별금지법’과 ‘생활동반자법’ 등을 통과시키는 압력수단으로 활용할 게 뻔하다.

그런 점에서 ‘거룩한 방파제’는 그 말에 담긴 의미대로 한국교회의 시대적 소명일 수 있다. 그런 사명이라면 방향성 못지않게 한국교회 전체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 게 중요하다. 22대 국회에서 압도적인 다수당이 된 민주당이 국회에서 진보세력과 결탁해 무슨 일을 벌일지 알 수 없다. 이럴 때일수록 한국교회의 단합된 힘과 의지를 선명하게 드러내 보여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