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가 본 동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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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이 본 섹슈얼리티(17)
민성길 명예교수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는 정신분석가들 중 동성애 존재를 인정한 최초의 인물이자, 동성애를 연구하고 치료하려 했던 사람이다. 그는 초기 1896년 Fleiss에게 보낸 편지에서부터 그의 사후 1940년에 출판된 The Outline of Psychoanalysis에 이르기까지, 동성애를 포함한 모든 성인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기본적인 이론의 틀을 끝까지 유지한다. 즉 동성애는 가장 초기의 어린 시절에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시작하고 성장함에 따라 발달하는 하나의 복잡한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동성애는 성적 본능이라기보다 ”성적 대상의 선택“의 문제라고 말하고, 그 선택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그러면서도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이 동성애 문제를 해결하는 입장에 있지 않다고 하며, 단지 성적 대상 선택의 메카니즘을 밝히고 본능적 소질(아마도 이성애)에 이끄는 길을 찾는 것이라 하였다.

프로이트는 첫째, 모든 사람은 동성애와 이성애를 모두 포함한 양성애(bisexuality)의 소질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하였다. 그러나 소아가 성장하면서, 생식과 인류 지속을 최우선시 하는 문명(civilization)의 압력을 받아, 동성애는 무의식에 억압되고, 대신 이성애가 강요되어 왔다고 보았다. (문명은 그 외에도 소아에게 근친간, 가학적 섹스, 등도 못하도록 압력을 가한다) 문명의 압력에 대해 후퇴 또는 반항하면 동성애가 표현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모든 사람에게 동성애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고 하였으며, 또한 그런 문명의 압력이 없었다면 동성애는 더 많을 것이라 하였다. (지금 성혁명-포괄적 성교육이 진행되면서 소아청소년들 사이에 동성애가 증가하고 있다.)

둘째, 프로이트는 특정한 ”동성애 본능“은 없다고 보았다. 그는 ”어린 Hans”의 증례를 통해, 인간 섹슈얼리티에 있어 그 본능 자체보다 “본능의 대상 선택”에 강조점을 두었다. 그는. 동성애자는 정상적 성 본능을 가졌을 수 있으나, 어떤 특정 요인 때문에 선택된 동성애 대상으로부터 해방되기가 어려워져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그는 동성애적 대상 선택은 원래 유아기 경험 때문이며, 이는 소아의 “자유”(child’s “freedom”)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그는 한 증례 연구에서, 동성애자의 대상 선택은 자신의 양성애적 속성을 반영하는 것이며, 그런 대상 선택에서 이성애의 요인도 발견될 수 있다 하였다. 그리하여 1920년 한 환자에서 동성애 대상의 “선택”을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언급하였다.

셋째, 프로이트는 동성 대상 선택에서 자기애(narcissism)가 역동적으로 작동한다고 보았다. 그는 레어나르드 다빈치의 동성애 분석으로부터, 남자 동성애자가 소아기 때는 어머니에 고착하지만, 이를 떠나면서 자신을 여성으로 동일시하고 자신을 성적 대상으로 생각한다는 결론을 이끌어 내었다. 이것이 동성애의 “자기애 이론”이다. 즉 자기애를 가지면서 자기와 닮은 젊은 남자를 찾고 어머니처럼 사랑한다는 것이다. 섹스 대상으로 동성의 성기를 원하는 것은, 발달적으로 이성애적 대상 선택보다 나르시시즘과 자기에로티즘(autoerotism. 자위)에 더 가깝게 된 상태라는 것이다. 동성애는 자기애로 무장되어 있어, 더 이상의 정신성 발달이 중단되어 최종 단계인 생산적 이성애가 실패한 것이다. (이로서 동성애자가 흔히 보이는 미숙성이나 자폐증적 경향을 이해할 수 있다)

넷째, 프로이트는 1920년 죽음의 본능 개념을 시작하면서, 후기 저술에서 성적 삶에서 공격성-증오-의 역할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였다. 즉 에로틱한 관계에 가학-피학적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동성애 관계에서도 파트너간 지배-피지배 내지 가학-피학의 현상이 관찰된다

동성애에서의 공격성은 “어머니 콤플렉스”에서 기원한 매우 강렬한 질투 때문이다. 그 질투의 대상은, 어머니가 더 좋아하는 다른 소년인데, 미래의 동성애자는 그 라이벌을 향해 강렬한 압도적인 죽음의 소원을 가진다, 즉 공격성(aggression)이다. 공격충동은 억압되어 무의식으로 가는데, 나중에 변형되어 공격성의 다른 표현(우울증, 강박증, 신체통증, 죽음)으로 나타날 수 있다.

과거 경쟁자를 파괴하고자 하는 공격성이 실패하면, 그에 대한 필요한 확인으로 초기 경쟁자를 사랑하게 된다. 이처럼 삼각관계에서 증오가 사랑으로 변화하는 것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상황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동성을 선택하고 사랑함으로 라이벌인 모성적 대상에 대한 경쟁의 강력함이 극복되는 것이다. 또한 동성애 대상을 선택하는 것은 과도한 사랑 또는 과도한 증오에 대한 해결이다. 이로서 아버지와 관련된 거세공포도 해소하고, 남성 성기에 주어진 강함의 가치로부터 유래한 자기애적 약점(narcissistic vulnerability)도 해소한다. 프로이트는, 성적 개인화를 향하는 모든 발달단계에서 에로틱한 애착 등 많은 요구를 포기함에 따라 공격성의 일정량이 해방된 상태(free aggression)로 남겨진다고 하였다.

끝으로, 동성애가 병적인가 정상인가 하는 논쟁에서 프로이트의 태도는 애매하다. 그는 동성애를 흑백논리로 접근하지 않았다. 그는 당대의 여러 다양한 주장들을 고려하였고, 논쟁에 한쪽 편을 들기보다, 동성애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는 성장과정에 대한 (초자아와는 다른) 사회문화의 영향을 고려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는 1935년 한 사적 “편지”에서(논문이 아니다), 동성애를 애매하게 “정상적 변이”(normal variation)라고 불렀다. 변이라는 용어에는 병적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어 정상적이라는 말과 모순된다. 그러나 동성애 옹호자들은 “정상적”이라는 말에 집착한다.

동성애를 도착으로 혐오하는 이유에 대해 프로이트는, (그 자체 혐오스러운) 배설기능하는 항문을 성교에 사용함으로 배설물과 접촉하기 때문으로 설명한다. 이는 마치 히스테리 소녀가 남성 성기를 소변하는 기관으로 혐오스럽게 보는 것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말년에 이르러 프로이트는 동성애에 대한 전통적 사회적 태도에 긍정적이 되었다. 그는 소아성애, 시체성애, 가학-피학증 등 도착의 근본 기준이 생식과 사회적 선(social good)에 기초한다면, 동성애는 그런 사회적 선보다 쾌락을 우선시 하고 생식목적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에 위협이 된다 하였다. 프로이트는 말년에 경고하기를, ”한 인간의 잠재적 동성애에 의해 방해받는 것 만큼 한 사람의 이성애에 위험한 것은 없다.“ (그러면서 프로이트는 역사적으로 많은 동성애자들이 사회에 공헌했다는 것을 지적한다)

프로이트의 양성애 가설은 본능이론-생식을 위한 본능-과의 연결이 되지 않아 비판의 대상이 된다. 그의 양성애 가설-이론은 여전히 모호/불투명하며, 과학적으로 추론적이지만, 이론적으로는 유용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 인간이 성에서 양성적 욕구를 가지고 있다 해도, 한 대상에서 두 셋트의 욕구를 모두 다 성취할 수는 없다.

필자는, 어린 아이는 양성애적이라기보다 무성애적(asexual)라고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아성욕설(theory of infantile sexuality)은, 비록 섹슈얼리티라는 말을 사용함으로 인해 오해를 불러 일으키지만, 아이의 욕구는 성인이 가지는 성욕의 의미가 아니다. 성호르몬이 분비되는 사춘기에 이르러야 진정한 성기적 성적 쾌락이 가능해 진다. 소아가 젖을 빠는 즐거움(구강기적 쾌락), 배변의 즐거움(항문기적 쾌락), 성기를 보거나 만지는 즐거움(남근기적 즐거움) 등등을 가지는 것은 전성기적(pre-genital)이라 하며, 진정한 성기적(true genital)인 것이 아니다. 따라서 범성애적(pansexual)이라는 말도 무리가 있다. 또한 사회가 동성애를 억압하는 것은 문명의 압력이라기보다 이성애적 성 본능의 압력으로 본다. 즉 인간의 성 본능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바, 이성애와 생식으로 향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민성길(연세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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