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각기 다른 정치·종교적 궤적의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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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식 교수, 29일 한국종교사회학회 정례발표회서 발제
한국종교사회학회 정례발표회가 29일 인덕대학교 세미나실에서 진행되고 있다. ©한국종교사회학회 제공

한국종교사회학회(회장 장형철)가 29일 오후 서울 노원구 소재 인덕대학교 중앙도서관 9층 세미나실에서 정례발표회를 가졌다. 이날 정태식 교수(경북대)가 ‘푸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관한 사회학적 일고찰: 우크라이나의 종교 다원주의와 러시아 정교회의 종교 전체주의의 대립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발제했다.

정 교수는 “2024년 2월 24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명령함으로써 2014년에 시작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최고조로 상승시켰다”며 “푸틴은 물론 침공을 지지한 러시아 정교회(Russian Orthodox Church, 이하 ROC) 모스크바 총대교구(Moscow Patriarchate)의 키릴 총대주교(Patriarch Kirill)도 침공의 여러 명분 중에서 점점 더 심각해지는 우크라이나를 통한 미국과 서유럽의 대(對)러시아 위협을 가장 중요한 명분으로 앞세웠다”고 했다.

이어 “푸틴은 서유럽에서 넘어온 신나치 세력들이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러시아어 구사 인민들을 공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열거했고, 키릴은 동성애자들의 사회적 권리 주장 운동인 프라이드 퍼레이드(Pride Parade) 등을 거론하면서 우크라이나가 서구의 영향을 받아 도덕적으로 타락하였기에 교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고 했다.

또한 “미국을 비롯한 서유럽 사회에서 횡행하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인종 차별과 LGBTQ(성소수자)의 도덕적 타락이 우크라이나를 통해 러시아와 동유럽으로 확산하는 것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두 사람이 제시한 가치 지향적 명분은 대중적 정서에 대한 호소였고, 이에 대중은 감성적으로, 때로는 열광하면서 호응한다”며 “적을 전제로 하는 명분은 우리네 집단의 결속(in-group solidarity)과 함께 타 집단에 대한 증오(out-group hostility)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 마디로 푸틴과 키릴 모두는 구체적이고 잔인한 전쟁을 추상적 가치로 환원하여 증발시키고 있다. 관념적(ideal) 명분은 실재하는(real) 비참함을 넘어서고 정당화해 줄 수 있기 때문”이라며 “흔히 정치 엘리트들은 추상적 가치와 실질적인 이해관계 사이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내는데, 그것이 바로 이데올로기다. 이해관계와 연루된 사상(interest-related idea)으로서의 이데올로기는 자신의 이익을 추상화된 가치의 언어적 표현 뒤에 감추고 있다”고 했다.

정태식 교수가 발제를 하고 있다. ©한국종교사회학회 제공

그는 “푸틴과 키릴의 이데올로기는 무엇이며 이해관계는 무엇인가”라며 “푸틴은 국가 안보(national security)를, 키릴은 영적 안보(spiritual security)를 이데올로기로 내세웠다. 푸틴의 이해관계는 러시아 국가 영역 확대, 구체적으로는 포스트 소비에트 공간 통합 욕구에 있었고, 키릴의 이해관계는 러시아 정교회의 교회법적 관할권과 지배권 확대를 통한 종교 전체주의의 공간적 확대 욕구에 있었다”고 했다.

이어 “중요한 것은 국가 안보와 영적 안보 두 이데올로기는 상보적이라는 사실”이라며 “국가 안보를 위해서는 종교적 정당성과 영적인 힘, 즉 soft power의 영향력이 필요했고, 교회법적 영역(canonical territory) 확보와 영적 안보를 위해서는 정치적 보호막이 필요했다. 결국 푸틴과 키릴은 공생적 상호 의존 관계(symbiotic interdependent relationship)에 놓여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소비에트 연방의 몰락에 대해서도 유감을 공유한 푸틴과 키릴이 시급한 책무로 여긴 것은 몰락으로 상실한 지정학적 영토와 교회법적 영토의 회복이었다”며 “푸틴은 러시아의 정치적 영향력을 러시아 제국과 소련 시절의 국경으로 되돌리고자 했고, 키릴은 주변 국가(near abroad)에 대한 모스크바 총대교구의 교회법적 관할권을 공고히 하거나 더욱 확대하고자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정치적, 종교적 야망 실현을 위한 첫 번째 단계가 2014년의 크림반도 병합 작전이었다면 두 번째 단계가 2022년 2월의 우크라이나 침공이었다”고 했다.

이어 “문제는 러시아와 역사와 문화의 상당 부분을 공유하는 우크라이나가 푸틴과 키릴의 이러한 야망에 동조하지 않았다는 데 있고, 결국 러시아의 침공을 불러왔을 정도로 두 나라 간의 적대적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렀다는 데에 있다”고 했다.

또한 “구체적으로 우크라이나의 젤린스키 대통령은 NATO 가입을 통해 친 서유럽과 탈 러시아 정책을 확대하려 했고, 우크라이나의 정교회는 2019년 콘스탄티노플 세계 총대교구로부터 ‘교회 자치권’을 부여받은 이후 모스크바 총대교구의 우크라이나 정교회 지배에서 완전히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다차원적인 대립 구조를 지닌다”면서 “그것은 △러시아 대 우크라이나 국가 간의 전쟁이면서 △러시아 대 서유럽(미국 포함) 간의 지정학적 패권 전쟁이기도 하다. 그리고 △모스크바 총대교구 대 우크라이나 독립 정교회의 갈등이기도 하며, △정교회 모스크바 총대교구 대 콘스탄티노플 세계 총대교구와의 힘겨루기이기도 하다”고 했다.

그는 “독립 국가로 우뚝 서고자 하는 우크라이나의 정치적 움직임과 함께 정치적 독립이 종교적 독립과 무관하지 않다는 우크라이나 종교인들의 판단 결과 러시아의 종교 전체주의와 우크라이나의 종교 다원주의 궤적 간 충돌은 불가피했다”며 “중요한 것은 궤적 충돌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요인으로 러시아에서는 ‘루스키 미르’ 프로젝트가 실행되었고, 우크라이나에서는 ‘마이단 혁명’이 발생하였다는 사실이다. 전자는 우크라이나의 궤적을 러시아 쪽으로 돌리려는 노력의 일환이었고, 후자는 러시아의 압박에 저항하면서 탈 러시아화를 꾀하고자 하는 움직임이었다”고 했다.

아울러 “마침내 2019년 우크라이나 정교회가 콘스탄티노플로부터 자율권을 부여받고 모스크바 총대교구로부터 교회법적인 독립을 쟁취하면서 종교적 탈러시아 의지를 다졌다”며 “우크라이나 정권은 NATO 가입 의사를 강하게 표명하면서 친서구적 태세를 더욱 진전시켰다. 이에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한 군사 작전을 감행했고, 키릴은 종교적 정당성을 제공하면서 푸틴을 지지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각기 다른 정치·종교적 궤적이 드디어 충돌한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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