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주의의 반기독교적 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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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모(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분자유전학-약리학교실 교수)
류현모 교수

해체주의(deconstructionism)는 1960년대 후반 ‘파리 고등사범’의 철학교수였던 자크 데리다가 제안한 이후 서구 사상계와 문화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이론이다. 현대의 대부분의 문학이나 철학 비평이론이 이에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해체주의가 특히 관심을 갖는 것은 ‘글쓰기’와 ‘글읽기’, 그리고 ‘해석’에 관한 것으로 이전 시대의 서구 형이상학 전통을 전반적으로 부정한다. 이러한 사조는 모더니즘의 이성적이며 틀에 짜인 모든 것에 대해 회의를 제기하며 탈 이성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의 중심적인 이론으로 자리 잡는다. 문학/철학비평에서 시작되어 건축, 미술, 음악 같은 문화예술 분야에 투영되어 기존의 효율과 명확성을 중요시하는 구조들을 해체하는 강한 영향력을 발휘했고 아직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전통적 서구 형이상학에서는 기본적으로 말(speech)을 글(writing)보다 중요시한다. 이것은 말하는 사람이 다른 매개체 없이 직접 전달하는 것이 그 의도를 가장 진실하게 전달한다는 ‘진리의 현존(presence of truth)’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글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시간적 차이를 두고 전달되는 이야기는 말로 전달되는 것과 비교할 때 그 진실성을 의심해 볼 여지가 있다. 이것은 요한복음 1장에 나오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그 말씀(logos)이 진리이심을 인정하는 기독교의 복음에서 유래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데리다는 말 중심의 서구 전통 형이상학이 잘못된 것이라는 전제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글’뿐 아니라 ‘말’에도 기표(표시 하는 바)와 기의(뜻 하는 바) 사이에 다른 점이 있다고 주장하며 ‘차연, differance’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내었다. 이 단어는 데리다 해체주의의 중심적 개념으로 ‘공간적 차이와 시간적 지연을 합친 다름’으로 정의하였다. 이것은 ‘difference’와 같은 발음이지만 뜻은 다르며 글에서는 둘의 다름을 구분할 수 있지만 말에서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말이 글보다 의미를 더 진실하게 전달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말 중심주의'에 대한 데리다의 도전은 전통 서구사상에 존재하던 이분법적 서열계층구조의 기반을 흔들게 된다. 전통적 형이상학에서는 말과 글, 기표와 기의 등의 이분법적 계층구조를 설정하여 전자를 중심에 놓고 후자는 전자에서 파생되어 그 의미를 보충하는 것으로 해석해 왔다. 데리다는 전자가 후자를 억압하는 이런 상하구조를 해체한다. “말과 글은 상호보완적이지 어느 것이 다른 것보다 더 중심적이지 않다. 모든 말과 글은 은유적이며, 기표와 기의를 구분할 수 없다. 또 어떤 단어는 잘못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해석하는 과정에 삭제하거나 다른 단어로 대체할 수도 있다.”라고까지 주장하면서 해체주의를 이끈다.

롤랑 바르트는 1967년 그의 에세이 <작가의 죽음>에서 문학에서의 해체주의를 주장한다. 전통적 독서에서는 작가가 자신이 의도하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글을 쓰지만, 출판과 동시에 작가의 의도는 사라지고 모든 권한은 그 책을 읽는 독자의 손에 넘어간다. 즉 독자는 저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자신만의 생각으로 작품을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말과 글의 해체가 문학에서 이루어지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법의 해석이나 경전의 해석으로까지 연결되면 더욱 심각한 사회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그리스도인이 해체주의를 이해해야 하는 이유는 해체주의가 서구문화에 전반에 끼친 강력한 영향 때문만이 아니라, 그것이 가지는 반기독교적인 속성 때문이다. 해체주의는 절대 진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진리를 어떻게 규정하든 간에 그것은 절대적이지도 최종적이지도 않다. 진리는 항상 상대적이며, ‘타자’인 ‘거짓’을 억압해서 얻은 상대적이고 일시적인 것일 뿐이다”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성경이 말하는 유일한 길, 진리,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성을 부정하게 만든다. 또한 문장은 수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은유의 덩어리이며 자유롭게 단어들을 대체할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진다. 문장에는 절대 진리도 없고 절대적인 의미도 없다. 따라서 성경의 모든 문장은 항상 확정적이지 않으며 열린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이런 배경하에 성경을 의도적으로 오역하는 퀴어 신학이 태어났다.

문학적 해체주의가 정치적 마르크스주의와 결합하여 사회의 이분법적 대립구조(자본가/노동자, 강자/약자)에 대해서도 전자에 의한 후자의 억압구조를 비판하고 타파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해체주의적 비판은 대안이 없으면서 파괴적이기 때문에 사회를 결코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없다. 결국 자신을 포함한 사회 전체를 무정부 상태의 파멸로 몰아넣게 되는 치명적 결함을 가지고 있다.

#류현모